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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로벌 시골 트레커 정수기입니다.
한 달 간 요트를 타고 인천~코타키나발루까지 항해를 했습니다.
'낭만'을 꿈꾼 요트 여행…하지만 현실은 '극한 모험'이었죠. ㅎ
망망대해에서의 '자유'는 무엇과도 비교불가한 경험이었고요.
자~이제 시작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요트를 타고 한 달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목적지는 인천에서 2,300마일(3,700km) 떨어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우리나라 최초로 '무기항·무원조·무동력 요트 세계일주'라는 대기록을 세운 김승진 선장의 항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요트 세계일주 기록 보유자인 윤성기 선장도 합류해 2대의 요트에 11명의 크루가 함께 했다.
요트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던 나는 막연히 '낭만'을 꿈꿨다. 망망대해 선상에서 기울이는 한 잔의 와인과 맛있는 음식, 달달한 음악까지…. 하지만, 완벽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느리지만 거친 요트 항해
2018년 12월 10일 오전 7시, 만조 시간에 맞춰 '타노아', '아라파니2' 두 대의 요트가 인천 왕산 마리나를 출발한다. 바람이 약해 메인 돛을 절반 정도 펴고 엔진도 가동한다. 첫 번째 기항지인 목포 마리나까지 거리는 186마일(300km), 요트의 평균 속도는 시속 6노트(11km/h)에 불과해 27시간이나 걸린다(성격 급한 사람은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요트 여행의 설렘도 잠시, 겨울 바다는 역시 춥다. 하지만 따뜻한 선실에 있을 수가 없다. 배멀미 때문이다. 그리 높지 않은 파도에도 작은 돛단배는 사정없이 흔들렸고 내 위장도 덩달아 춤을 췄다.
배멀미에도 배꼽시계는 정확히 울려댄다. 드디어 선상에서의 첫 식사시간. 흔들리는 요트에서 어떻게 밥을 해먹는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중심을 잡는 가스 버너에서 찌개나 국을 끓인 뒤 1인용 냄비에 밥과 섞어 마구 퍼먹으면 된다. 흔히 생각하는 요트의 우아함과는 딴판이지만, 흔들리는 배에선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건 아니다.
활동량이 많지 않은 선상에서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아점과 저녁인데, 해가 지기 전에 설거지까지 끝내야 돼 늦어도 오후 7시 전에는 저녁식사를 마쳐야 한다.
설거지도 의외로 간단하다. 음식물을 닦은 휴지와 잔반은 물고기밥으로 주면 된다. 마무리용인 물티슈는 물에서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물(청수)을 아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흔들리는 선실에서 설거지를 하려면 방금 먹은 음식물을 확인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해가 지면 할 일이 또 있다. 바로 야간견시(불침번)다. 만약 어떤 물체와 충돌해 배가 파손되면 그대로 황천길이다. 사고예방을 위해 레이더가 있긴 하지만, 작은 어선이나 그물 등은 탐지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선장을 제외한 크루들이 2~3시간씩 교대로 선상에서 춥고 외로운 밤바다와 마주해야 한다.
새벽 3시, 진도 앞바다를 지날 즈음 갑판으로 나왔다. 춥다. 그리고 무섭다. 저 어두운 바다 속에 뭐가 있을지 몰라 두렵다. 갑자기 가슴이 아려온다. 저 지옥 같은 곳에서 세월호의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꿈꿔왔던 미래가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절망감은 어땠을까.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45피트(14m) 크기의 요트에는 2명씩 잘 수 있는 선실 3~4개가 있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에서는 자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도 요령이 있다. 먼저 배가 일정한 바람을 받아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항해할 경우에는 기울어진 쪽 벽면에 몸을 붙이고 자면 편하다. 만약 뒷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받아 양쪽으로 흔들릴 땐 대각선으로(침대 모서리 쪽으로 머리와 다리가 가도록) 누워 팔을 벌리고 자야 그나마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신호가 온다. 가장 원초적인 의식, 바로 배설이다. 각 선실에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이 딸려 있어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다만 약간의 주의사항이 있다. 먼저 사용한 휴지를 너무 많이 변기에 넣으면 안 된다. 하수관이 좁아 막히기 십상이다. 또 심하게 흔들릴 땐 일(?)을 치루다 넘어져 변(?)을 당할 수 있으므로 늘 어딘가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오수 배출은 펌프로 하는 수동식과 모터를 이용한 자동식이 있는데 각기 장단점이 있다. 수동식은 매번 20여 차례 펌핑을 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고장 날 확률이 적다. 반면 자동식은 고장이 날 경우 수리가 힘들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단점이 있다.
느리디 느린 요트는 이틀 만에 목포 마리나에 입항했다. 이 곳에서 출국심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느리다. 공항에선 30분이면 될 출국심사에 꼬박 하루가 걸린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했던가. 덕분에 맛있는 남도 음식들을 만나본다.
*본격적인 겨울 동중국해 항해
드디어 목포항을 떠나 동중국해에 들어섰다. 여전히 파도는 거세지만, 바람은 덜 차갑다. 다음 기항지인 일본 나가사키까지는 이틀거리인 260마일(480km). 적당한 바람에 순항을 이어간다. 갑자기 낚싯대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 고기가 잡힌 것이다. 배의 속도를 늦추고 끌어올려 보니 50cm 크기의 참치가 잡혔다. 가츠오부시의 재료가 되는 가다랑어다. 참다랑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맛이 덜하지만, 금방 떠낸 살점은 싱싱하기만 하다.
나가사키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빨래를 맡기고 온천으로 향한다. 뜨끈한 물에 온몸을 담그니 그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풀린다. 유명하다는 나가사키 짬뽕도 먹고(면발이 느끼해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원한 생맥주도 들이키며 포근한 이국의 정취를 즐긴다.
꿀 같은 휴식을 마치고 나가사키를 떠나 600마일(966km) 떨어진 이시가키로 향한다. 대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섬으로 6일 정도가 걸린다. 한가로운 오후, 선실에서 쉬고 있는데 밖이 시끌벅적하다. 카메라를 들쳐 메고 나가봤더니 수십 마리의 돌고래떼가 점프쇼를 펼치고 있다. 호기심이 많은 돌고래는 지나가는 배를 보면 종종 가까이 다가와 재롱을 부린다고 한다. 야생 돌고래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 귀여움이 가히 역대급이다.
출발 때보다 달이 많이 차올라 이젠 랜턴 없이도 갑판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달빛이 아름다운 밤, 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며 야간견시를 서는 2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오키나와에 가까워지니 날씨도 꽤 따뜻하다. 파도도 잔잔해 처음으로 바다 수영에 나선다. 수심 1천m 망망대해에서의 유영. 태양을 바라보며 둥둥 떠 있자니 '그래, 자유가 이런 것이었지'라는 구체적 경험치도 쌓인다.
*집채만 한 파도...거친 동중국해에서의 사투
이시가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마치고 다시 항해에 나선다. 다음 기항지는 600마일 떨어진 필리핀 수빅으로 역시 6일이 걸린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인근 해역에 태풍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먼 바다로 나가자 예보대로 바람이 거세다. 높은 파도는 쉴 새 없이 배를 흔들어댄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급기야 4m 높이의 파도와 시속 45노트(83km)의 강풍이 작은 돛단배를 집어삼킬 듯 위협한다. 이 와중에 자동 운항 장치가 말썽이다. 꼼짝없이 키를 잡고 수동으로 운항해야 한다. 다행히 경험 많은 윤성기 선장이 온몸으로 파도를 뒤집어쓰며 우리 목숨줄을 붙잡고 있다. 설상가상, 태양열 충전 패널이 덜렁거린다. 강한 바람에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새벽녘에는 메인 돛 일부까지 찢어졌다. 하~누가 요트를 '낭만'이라고 했는가. 이건 목숨을 건 '모험'이다. 말 그대로 죽음과의 사투가 이틀 내내 이어졌다.
필리핀 본섬 옆으로 들어가니 다행히 바람이 잔잔해진다. 사선을 넘어 온 전우애가 이런 것일까. 검게 그을린 5명은 서로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손발이 오그라들어 말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고맙다고. 여러분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남국에서 한 해를 보내며
무사히 필리핀 수빅 마리나에 도착해 여기저기 고장 난 배를 고치며 나흘간 꿈결 같은 휴식을 취한다. 각종 해산물 요리와 시원한 맥주, 저녁에는 마사지까지. 복장도 반팔 차림에 슬리퍼로 단출하다. 한국은 영하의 날씨지만, 이 곳은 낮 기온이 영상 30도까지 올라간다.
12월 31일 밤, 바다 위에서 새해 불꽃놀이를 보러 13명의 크루가 오랜만에 한 배에 올랐다. 2019년 1월 1일 0시 정각이 되자 수백 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하늘의 불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반영이 바다 위에도 펼쳐진다. 안 그래도 황홀한 광경을 두 배로 즐긴 셈이다.
연초부터 밤새 술판을 벌리고, 하루 늦은 새해 떡국도 만들어 먹으며 수빅에서의 일탈적인 일상을 이어간다.
*마지막 항해…인간과의 싸움, 더위와의 싸움
필리핀 수빅을 떠나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까지 마지막 항해에 나선다. 역시 600마일, 엿새 거리다. 필리핀 남서부의 팔라완 섬을 따라 뒷바람을 받으며 순항한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야간견시는 더 강화됐다. 바로 해적 때문이다. 필리핀 해상에는 종종 해적이 출몰하는데, 속도가 느리고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요트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이라고 한다. 그런데 해적질이 이들의 본업은 아니란다. 평소엔 선량한 어부지만, 돈에 눈이 멀어 가끔씩 부업으로 해적질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도 무섭지만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떠올라 입맛이 씁쓸하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람이 잔잔해진다. 배가 덜 흔들려 좋긴 한데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바로 더위와의 싸움이다. 바람이 안 통해 눅눅한 선실에선 당최 잠을 잘 수가 없다. 작은 창문이 있긴 하지만, 간간이 때리는 파도에 물벼락을 맞지 않으려면 꼭꼭 닫아놔야 한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닷물로 샤워를 한다. 먼저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 온몸에 뿌린 후 비누칠을 하고 나서 다시 바닷물로 거품을 씻어낸다. 여기에서 끝내면 온몸에 소금기가 남기 때문에 청수로 마무리한다. 산에서는 자연보호를 위해 치약도 안 묻힌 채 양치를 하는데, 넓디넓은 바다에서는 워낙 자연정화가 잘 돼 걱정이 없다.
항해 한 달 만에 드디어 목적지인 코타키나발루 수트라 하버 마리나에 입항한다. 긴 시간,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 온 선장과 크루들의 모습이 듬직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맑게 빛나는 눈동자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를 지켜 준 타노아와 아라파니2 역시 늠름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때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른다. 눈가는 이미 촉촉해졌지만 괜히 창피해 선글라스로 감추고 먼 바다만 바라본다. 다른 이들도 그랬던 걸까? 시끌벅적하던 선상에 꽤 오래도록 정적이 흘렀다.
평균 시속 11km, 인간이 만든 이동수단 중 가장 느리다는 요트. 하지만 지구별을 여행하는 데 가장 최적화 된 것 또한 요트다. 왜일까? 크루 중 누군가 말했다. "바다에 나와 보니 알겠어요. 지구는 거대한 하나의 물방울이었네요."
*요트 Tip
-요트는 좌측, 우측이라 하지 않는다. 대신 좌현을 포트(Port), 우현을 스타 보드(Star Board)라 한다.
-뒷바람이 불 때 배가 가장 빠르게 나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옆쪽에서 바람이 불 때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전방 45도부터 후방 45도까지 크로스 홀드, 크로스 리치, 빔 리치, 브로드 리치로 구분한다).
-정면에서 바람이 불 때는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노고존, No Go Zone). 이때는 지그재그로 진행해야 한다. 과거 대항해시대, 가로 형태의 돛만 있던 범선 시절에는 불가능했지만 삼각돛 발명 이후 맞바람을 타고 가는 항해가 가능해졌다.
-대부분의 요트 사고는 항구나 마리나 안에서 발생한다.
특히, 정박 로프가 클리트(cleat)에 묶인 상태에서 엔진 가동 시 쇠로 된 클리트가 뽑히면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차량과 달리 배는 뒷부분이 움직이면서 방향을 전환하기 때문에 좁은 곳에서 커브를 틀 때 배의 뒷부분까지 완전히 진행한 뒤 방향을 돌려야 한다.
-바람이 불 때도 조심해야 한다. 바람에 의해 배가 옆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에 정박 시 이 점도 신경 써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충돌하게 될 경우엔 속도를 완전히 줄이고 충돌 부위에 펜더(Fender)를 갖다 대 파손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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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고생은 되셨겠지만 부럽습니다.....
중간 기착지들을 업무상으로 다녀봤던 곳들이라 그런지.....그 느낌 아니깐...ㅎㅎ
새로운 여행과 모험...부럽네요...
네~한국은 한참 추울 때 따뜻한 데 있으니까 좋더라구요 ㅎ
흠흠ㅡㅡㅡ쥐기네윰
그저 생각나는 단어가 쥐기네 이것뿐이네요.
죽기전에 기회가온다면 노가다 점빵문닫고 가고잡군요.
즐감하고 갑니다.
무주님~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강추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