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모임득
이 세상에 눈먼 돈이 있을까?
어느 날 은행에 들러 현금. 수표 자동지급기에서 카드로 140만원을 찾는다. 그런
데 만 원권 140장이 나와야 되는 지급기에서 현금이 아닌 십만 원짜리 수표가 나
와 1260만원의 눈먼 돈(?)이 생겼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뜻밖의 횡재에 그동안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면서 쓸까. 자선단체에 기부를 할까
아니면 노동의 대가 없는 공돈이라 은행에 사실을 말하고 되돌려 줄까. 이런 경우
눈먼 돈으로 인해 갈등을 겪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자동지급기에
서 현금과 지폐의 지질을 구별하지 못하고 수량만 헤아리다 보니 은행 직원이 CD
기의 현금 위치에 수표 통을 넣었어도 발견 못하고 빚어진 일이다.
나중에 시재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수표 추적으로 찾으면 되지만 현대인들이
편하게 사용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컴퓨터, 자동기계 등에도 허점은 많다 돈은 나
오지 않았는데 은행 계좌에서는 빠져 나가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계좌로 돈이 입
금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물질문명의 세계에서 손쉽고 편한
것을 찾다 보니 발전도 되고 동시에 폐단도 있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 마감 후 시재를 맞추어보니 돈이 900만원이나 모자란 적이
있었다. 다른 직원이었다면 몇 번 훑어보아 틀린 곳을 지적하던 나였지만 막상 내
가 틀리니까 눈앞은 캄캄하고 바들바들 떨리면서 어디서부터 맞추어야 할지 막막
하였다. 다행이 수표가 틀리어 번호로 맞추어 보니 1000만 원짜리 수표가 100만
원짜리로 잘못 지급되었다.
수표를 찾으러 가는 차 안에서 대범하게 행동하려고 해도 안절부절 되었다. 만
약 그런 일 없다고 시침 뗀다면? 은행에서 돈이 모자라면 그 날짜로 본인이 물어
내게끔 되어 있다. 9만원 90만원이라면 몰라도 900만원이나 되는 큰 돈이 내겐 없
었다 설령 있다고 하여도 한 순간의 실수로 몇 달치의 월급이 사라진다면 일할
맛이 나겠는가. 고참으로서의 체면도 말이 아닐 것이다. 돈보다도 평생 동안 큰돈
물어 낸 은행원의 딱지! 몸이 으스스 떨리었다.
고액의 돈을 여러 장의 수표로 찾아간 고객은 모른다고 하였다. 순순히 돌려줄
사람이었다면 은행에서 돌려주었던가 전화로 연락을 하였을 것이다. 오리발 내밀
것을 예상은 하였지만 난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이 간 책임자
가 사정사정하다 안 되니까 수표는 지급정지를 해 놓아 쓸 수도 없는 종이 조각
에 불과하다며 협박(?)도 하면서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간 은행에 남아있
는 직원들은 퇴근도 못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
난 인간적으로 호소하기로 하였다. 큰돈을 가지고 사업하는 분에게 900만원은
별거 아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큰돈이다. 선생님의 인품으로 보아 알고서 안
주실 분은 아니고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수표를 확인해 달라고
하였다. 그제야 수표를 건네주는 그 분을 난 탓하고 싶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일
처리를 잘못한 나에게 책임이 있고 입장을 바꿔서 내가 현금으로 인출하는데 은행
직원의 실수로 돈을 더 받았다면, 나 자신도 눈먼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장담
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서 사업상 돈을 건네받았는데 만 원권 다발 속에
천원권이 끼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천원권이 끼어 돈이 모자란다고 솔직히
이야기할 것인가 아니면 괘씸해서 거래를 못하겠다고 생각만 할 것인가. 그런 경
우는 나쁜 마음으로 일부러 하였거나 모르는 경우겠지만 십중팔구는 은행의 현금
계수기 때문이다. 은행원들이 손으로 세지 않고 기계로 세어 주는 계수기도 돈의
권종은 구별하지 못하고 수량만 헤아린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렇다고 돈
좀 벌어 보겠다고 몰래 천원 권을 집어넣으면 곤란하다. 손으로 넘겨서 세거나 펴
서 세면 바로 발견이 되고 숙련가인 은행원을 만나면 계수기로 세어도 발견되니까
말이다.
신권 또한 두장이 넘어가기도 하며 잘 세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기계인 계
수기도 땀 흘린 돈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한국은행에서 갓 나온 새 돈은 잘 안 세
어져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돌고 돌아 지문이 묻은 돈은
알아보는지 어느 정도 바랜 돈은 정확히 센다. 그러나 돈을 소중히 하지 않고 함
부로 쓴 너절너절 하고 찢어진 돈은 거부한다.
어떻게 하면 손쉽게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까 더 편하고 빠른 길은 없는가.
눈먼 돈이 어디서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노동의 대가 없이 편하게 눈먼 돈을 벌어 보겠다고 만든 위조지폐가 있다면 어
떻게 하겠는가. 아마 신기해서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하자고 돌려가며 볼 위조지폐
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때 돈의 발행은 오늘날처럼 조
폐창 같은데서 일관 주조한 것이 아니고 각 관청에서 맡아 하였다고 한다. 인조
때 상평통보를 만들자 민간에서 이를 본 뜬 위조동전을 발행해 물가를 폭등시켰
고, 고종 때의 백동화는 일본인들이 위조 백동화를 대량으로 유포시켰던 역사도
있다.
그러고 보면 눈먼 돈에 대한 욕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 보다. 위
조지폐 발견 시 조치 사항에 보면 절대로 복사하지 말 것이며 장갑을 끼고 만지어
지문이 묻지 않게 보관하고 경찰서로 신고하게끔 되어 있다.
2006/ 24집
첫댓글 오랫동안 땀흘려 노력해서 돈을 모은 사람들 돈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을 위해 쓰기 보다는
남을 위해 쓰거나 사회에 기증하는 사람들의 돈이 진정으로 주인 있는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