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다방과 카페>/구연식
다방(茶房)과 카페(cafe)는 개념상 시대적 연령적 문화적 등으로 많은 차이점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꼰대와 신세대를 구분하는 가늠자인지도 모른다. 다방은 1960년대에 대표적인 사교적 장소로서 시골 면 소재지에도 두서너 군데는 있었다. 무쇠 화목난로 위에 엉덩이가 큼직한 노란 양은 주전자에는 보리차 물을 펄펄 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는커녕 개인 집 전화도 넉넉지 않은 시절이라 다방 입구 벽에 설치한 쪽지 판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유일한 약속 장소였다.
마담 안주인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단골손님 관리에 여념이 없다. 영업사원 격인 레지는 젊은 아가씨들로 양장차림을 하고 차(茶) 주문과 배달 등 홀 서비스에 분주했다. 주로 오전에는 지역 유지급 꼰대들은 마담과 로맨스 작업용으로 옴팍하고 보온이 잘되는 청자(靑瓷) 찻잔에 계란 노른자위를 동동 띄운 쌍화차 2잔을 주문하기도 했다. 금연 시대가 아니어서 차 테이블 위에는 통 성냥과 재떨이가 있었다. 그래서 다방 안은 너구리 사냥이라도 하는지 언제나 연기가 자욱했다. 오후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 심각하고 은밀한 내용의 대화는 다방 코너에 마련한 칸막이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은 약속 시간을 기다리다가 바람을 맞았는지, 성냥개비로 우물 정(井)자 탑 쌓기만 계속하고 있으면, 레지가 다가가서 환기를 시킨다며 손님 옆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차 주문을 요청하면, 화가 났는지 마시지도 않은 찻값만 치르고 휭 나가버렸다. 그 시절 도시에는 꼰대와 젊은이들의 다방이 구분된 곳도 있었으나, 시골은 혼합형이 대부분이어서 꼰대의 자리에는 마담이, 젊은이 자리에는 레지가 다른 손님들의 자리로 옮겨가며 매상과 시간 끌기에 분위기를 맞춰 고객관리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방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목 좋고 뷰(view) 좋은 곳은 도시 시골 구분 없이 카페가 하루가 멀다 않고 우후죽순처럼 등장한다. 우리나라 식후 문화도 서구식으로 급변해지고 있다. 옛날 농촌에서 새참은 밥 대신 군것질 정도의 간단한 음식이었으며, 식사 후에는 구수한 숭늉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새참도 자장면이나 빵 아니면, 햄버거나 피자로 변했다. 그리고 식후 음료로는 거의 커피가 지배적이다. 참으로 뽕 밭이 바다로 변한 세상을 실감한다.
세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 10위인 캐나다는 6.35kg이다. 대부분 순위 안에 있는 나라들은 북유럽 국가들로 날씨가 추운 지역에서 커피로 추위를 녹이는 이유가 많다. 우리나라는 날씨도 온대지역이고 가마솥 쌀밥과 연결된 구수한 숭늉이 있는데, 한국은 1인당 커피 연간 소비량이 3kg 정도로 해마다 증가 추세이니 머지않아 세계 10위권 진입도 시간문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 오면 꼭 사가는 제품 BEST8 중에 6위가 한국산 커피믹스이다. 봉지만 뜯으면 되는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에 놀랍단다. 우리 민족의 성급함인 빨리빨리 문화가 만들어 낸 제품이다. 커피 산업을 발전시켜 국내 소비 경제를 촉진하고 수출을 장려하여 국익을 도모하는 것은 찬성한다. 카페 메뉴판 음료 품목은 커피 대신 라테(latte)가 붙는다. 모두 다 셀프서비스다. 주문은 자동 터치패드로 해야 하며, 배달은 무선 자동 벨이 알려준다.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는 산업분류에서 우선순위가 멀어질수록 선진국으로 분류했는데, 순수한 인간 삶을 중시하는 휴머니즘과는 반비례적이다. 카페에 들어가고 싶어도 꼰대 전용 카페는 없고 카페 매너도 서툴러서 젊은이를 앞세우지 않으면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난생처음 다방에 들어갔을 때 종갓집 종부(宗婦) 같은 덕스러운 마담 아줌마, 싹싹하고 부모님의 꾸지람을 막아줄 것 같은 큰 누나 분위기의 레지, 8각형 주황색 찻잔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구수한 보리차 냄새,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잔잔한 호수에 물수제비 퍼져나가듯 LP 레코드음악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때로는 방황하던 풋내기 청춘을 안정시키고 안아주었던 장소로 지워지지 않는다.
카페에는 어머니와 누나 같은 사람은 없다. 점장(店長)이든 사원이든 동일한 유니폼에 모든 것이 표정과 음성이 다르게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감정을 부추기거나 가라앉히는 음악도 없다. 무미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내가 지불한 가성비를 챙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문화는 문명의 발전 속도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카페 시대에 다방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신세대들에게 따돌림을 당해도 싼 꼰대일지도 모른다.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커피 마시러 가는 시대에 공자가 수레를 타고 주유천하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방은 마음일 뿐 색동옷 시절의 전설이다. 어느새 고향하늘이 보이는 누각 같은 2층 카페에 앉아 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솜털 구름 위에 손 편지를 꼭꼭 눌러써서 이제는 종부 집 아줌마에서 지팡이에 겨우 몸을 의지하고 뜨락에서 햇볕에 추억을 말리는 다방 마담 할머니에게 안부 소식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