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지속여부 사례 - 대천덕 신부의 성령세례 - 노우호 목사의 주장, 무엇이 문제이고 다른가?
김동찬 목사 / 천안 주함께교회
| | | ▲ 김동찬 목사 |
한국에서 우리 동시대(同時代)에 일어난 방언의 첫 번째 예로 태백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을 들어봅니다.
대천덕 신부님(1918-2002)에 대해서는 굳이 제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가 다 잘 알고 계시는 개신교 영성운동의 큰 인물이셨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과 삶은 한국교회 많은 성도들에게 귀감이셨고 교파를 초월하여 남녀노소 많은 분들의 삶에 큰 영향력을 끼치셨습니다. 이 분이 1965년 강원도 태백 하사미에 예수원(Jesus Abbey)을 설립한 이 후 한국교회에 끼치셨던 모든 아름다운 영향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분이 쓰신 성령세례에 관한 글에 방언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인용해봅니다. “(중략) 20년이 지난 후 제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했을 때 저의 아내 역시 성령세례를 구하는 기도를 하였고, 그때 그녀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아내가 제게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얘기해 주었을 때 저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만일 제가 받은 것이 성령세례가 아니었다면 지금 제게 성령세례를 주시고, 만일 제가 받은 것이 성령세례가 맞다면 제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일이 있은 직후 성령세례를 위해 순복음(오순절) 교단의 목사님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안수기도를 받았지만 방언의 은사는 없었습니다. 그때 오순절 교회의 한 목사님이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너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으니 가서 목회에 전념하라. 적합한 때에 방언의 은사도 주리라.’
저는 이것을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받아 들였고, 얼마 후 개인기도 중에 조심스럽게 방언기도를 시도하였는데, 저는 그것이 아주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잔잔한 기쁨가운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방언이라면 20년 전에도 할 수 있었을 것을…….’ 이후로 개인기도 시간에는 계속해서 방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중략)”
이 글을 보면 대천덕 신부님도 처음에는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분에게는 이미 성령세례가 임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오순절 교단의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노우호 목사님께서는 <방검 230-231>에 “은사주의자들과 방언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방언이 나타나는 것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오순절 신비은사주의자들이 하는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라고 하시어 오순절 교단이나 방언을 옹호하는 많은 분들을 한꺼번에 비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초기 오순절 운동가들에게 “방언은 성령세례의 첫 번째 증거이다.”(Glossolalia is the initial evidence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라는 오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미국 캔사스 주 토페카에서 사역했던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 1873-1929) 목사에 의해 강조되었던 초기 오순절교리입니다. 하지만 이 후 이러한 교리를 주장하는 오순절교단은 현재는 거의 없습니다.
파함 목사가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은 오순절 신학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던 시기에 개인적으로 강조했던 초기 오순절 교리이었을 뿐입니다.
그가 잠시 부흥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떠나면서 자신이 운영했던 벧엘성경학교의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는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성령 받은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 성경학교학생들은 며칠 동안 함께 성경을 읽고서 여행에서 돌아온 파함 목사에게 “성령세례를 받은 분명한 증거는 방언입니다.”라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을 토대로 파함 목사는 “방언은 성령세례를 받은 최초의 외적증거이다.”라는 교리를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부분적으로 읽고서 깊은 연구 없이 단순하게 결론 내렸던 지극히 단순하고 순진한(Naive) 결론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결론이고 또한 깊은 숙고 없이 방언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교리화 하고 주장한 파함 목사의 책임도 있고 잘못된 것이지요.
사실 사도행전에는 성령세례와 관련된 구절이 여섯 군데 나오는데 초기 오순절 교리를 주장했던 이들은 그 중 성령님의 임재와 방언이 관련된 세 구절만을 인용하여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다음은 성령의 임재시 방언이 일어났던 성경의 사례입니다. 1. 행 2:1-4 : 오순절 날 2. 행 10:44-48 : 고넬료의 집 3. 행 19:1-6 : 12명의 에베소인들이 바울의 세례를 받았을 때(그러나 나머지 다른 세 구절에서는 성령세례가 방언이 없이 일어났던 것을 보여줍니다.) 4. 행 4:31 : 제자들이 박해를 받아서 기도하고 있을 때 5. 행 8:15-24 :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 선교할 때 6. 행 9:17-18 : 바울의 회심
따라서 성경의 일부만 강조하여 가르치거나 이러한 결론에 근거하여 교리를 세우다보면 무리가 따르고 잘못되게 되는데 이 경우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고 그 가르침을 통전적으로 바르게 살펴 볼 때에야 방언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가능해집니다. 정리하자면 초기 오순절 교리였던 방언만이 성령세례의 외적(External)인 최초 증거(Initial evidence)라고 주장하는 오순절 운동가는 현재는 거의 없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방언을 받지 못했던 대천덕 신부님에게 오순절교단의 목회자가 “당신은 방언을 못하니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대천덕 신부에게 ‘방언을 받지 못한 것과 상관없이 당신은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소.’라고 말했던 것을 볼 때 그 오순절 목사님은 방언이 있어야만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는 초기 오순절교리를 따르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노우호 목사님께서 본인의 신앙양심대로 열심히 방언을 반대하시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겠지만 자칫 조심하여 말씀하시지 않으면 주안에서 다른 형제를 함부로 정죄하는 큰 허물을 짓게 된다고 봅니다.
대천덕 신부님의 글을 계속 발췌해봅시다. “(중략) 한번은 어느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성령님은 갑자기 제가 그것을 통역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방언 통역의 은사를 구한 적이 없었고, 통역할 내용 또한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했지만, 주님께서는 강권하셨고 마침내 그것을 통역하였을 때,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천덕(토레이), <대천덕 신부의 성령론>, 예수원)
이 글에서 보듯이 오늘날도 방언과 통역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노우호 목사님의 주장처럼 방언과 통역이 가짜이고 귀신의 속임수라면 그 귀신은 왜 사람들의 회개를 유도했을까요? 그것은 귀신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귀신은 하려하지도 또한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노우호 목사님은 <방검 283-291>에 방언 통역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결론으로는 <방검 290>에 “방언도 가짜고 통역도 가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검 289>에 ‘통역이 되지 않는 현대교회의 방언’이라고 타이틀을 뽑으셨습니다. 물론 이 분의 말 한 구절만 가지고서 문제를 삼는다면 편협한 인용이 되겠지요. 그래서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일단 이번 편에는 대천덕 신부님의 방언체험에 대한 사례를 들고 마치겠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도들에게 기도 중 방언을 할 것을 권하시면서 ‘당신의 방언(새 언어)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용도’를 말씀하셨는데 그 방언의 세 가지 중요한 용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정결케 함-Cleansing 최소한 하루에 한번 홀로 있을 때 당신의 새 언어로 크게 기도하십시오. 차 안에서나 샤워를 하면서 그밖에 어떤 장소에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는 동안 당신이 하나님과 갖는 교제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을 가로막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참으로 정결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치 며칠 동안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 방치된 정원호수처럼 우리는 의심과 두려움과 불확실함과 같은 불유쾌하게 되는 것들로 꽉 막혀 버릴 것입니다. 당신이 호스를 사용하게 될 때 물은 곧 맑고 상쾌하게 되듯이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당신의 불유쾌한 요소들은 사라져버리고 항상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2) 중보기도 주님께서 때때로 당신이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에 대해 생각나게 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된 주된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이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된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 사람을 위하여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순종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3) 찬양 하나님께서 당신의 찬양을 원하십니다. 이제 성령 충만한 신자로서 당신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 아니면 어떠한 일도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예외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역사하도록 허락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상황이 아무리 나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감사를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찬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 안에서 당신의 방언을 자주 사용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언어로 그분께 찬양 돌리는 것을 계속하노라면 당신은 성령의 은혜로 인하여 당신의 믿음이 보다 더 견고하게 건축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인용, 대천덕(토레이), After you have received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성령 세례를 받고 난 후)에서
매일 방언을 사용하셨고 또한 방언기도로 인해 개인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고 또한 나아가 예수원 공동체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영성증진에 많은 아름다운 영향을 끼치셨던 대천덕 신부님의 증언은 우리에게 방언의 유익성에 대해 많은 점을 증명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계속 > ⓒ 교회와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