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출석부 올려놓고 나들이 갔습니다.
가까운 동해시 차로 가면 35분 걸리는 곳
같은 학교 다니는 이웃집 친구와 둘이
버스를 타고 천천히 가려 했는데 아들이 굳이
태워 주겠다고 해서 억지로? 탔지요.
먼저 동해 논골로 해서 등대까지
그리고 주변 경관을 둘러 봤지요
그날따라 바다는 다 받아 주겠다는 듯
너무 평온하더이다.
논골,산지 골,
도째비골,개구석 언덕 골목 등
경북 대구서 10살 적에
이곳 강원도 묵호에 온 제가 자랐던 곳입니다.
근 60여 년을 살았던 동네지만 개발 붐으로
많이 바뀌었지요 만
그래도 옛길 옛집은 몇 군데 남아 있어요
그때 저는 지금의 등대 맞은편에 살았는데
당시 등대 주변 땅은 거의 공동묘지 용도로
사용되었지요.
얹혀살던 이모 집 마당에서 보면 등대 주변이
온통 올록볼록 봉분들로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데
그 앞으로 길이 나 있어서 오징어 이고 오거나
어부들이 밤새 지친 몸으로 긴 장화를 신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밤이면 될수록 어판장 밑으로 난 길을 돌아
다시 올라오더라도 그 길은 이용하지 않았지요
묘지 천지라 무섭기도 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때가 밤이라
등대 울음소리도 귀신 소리 같아서 한몫하니까요
그랬던 주변이 이렇게 변할 줄은
화려하게 관광지로 변신해서 토박이?인 저조차
관광객으로 찾게 될 줄은 몰랐지요
아직 등대 건너편
이모 집은 건재 합니다.
다만 곱던 이모님은 돌아가시고
타지에서 사업이 망한 이종사촌 여동생이
돌아와 살고 있지요.
내 아버지가 굶주리며 눈칫밥 자시던 이모집 앞
보리밭도 그대로 있고요.
그 넓은 보리밭
(지금은 시 땅으로 매입됨)은 잊히지 않지요
보리타작할 때 11살 어린 내가 들 밥을 했는데
보리 짚 땔감 덕에 얼굴이 검뎅이 칠갑한 줄도 모르고
오직 울 아부지 밥 많이 퍼줄 생각에 가슴이 뛰던
그날을 어찌 잊겠나요.
마흔 살 한창 장정이 겨우내 눈칫밥으로
지내는 걸 곁에서 봤던 제가
모처럼 밥 많이 퍼줄 기회였으니까요
그날 찬 없는 뜨거운 보리밥을
작은 대야 같은 양재기에 꾹꾹 눌러 퍼준
어린 딸의 정성도 아랑곳 앉고 이모네 식구 오기 전에
그 밥 반은 없애려고 정신없이 드시던 울아부지
게을러서 불쌍하고
의지박약이라 한숨 나오던 울아부지
운명이, 팔자가
어째 그리 빈한한 곳으로만 향했던지
제비의 보은조차 거절당한 세월을 사셨던
흥부보다 더 못한 흥부 같은 세월 사신 울아부지
등대 논골 길
아름답고 기이한 꽃들로 장식되고
멋진 관광지로 손질된 곳
젊음이 지난 내가 이젠 편하게 관광객으로
찾아와서 옛 얘기 하며 유유자적 노닙니다
좋은 세월 덕을 톡톡히 봅니다
학교를 못 다녔는데 이모네 둘째 오빠가
돌리고 남은 신문을 뒤적거린다고 이모부에게
밥을 굶길 정도로 호되게 야단맞고 나가서 울던
계집아이가 공부도 다 마쳤고요
지금 논골집에 내려와 지내고 있는
막내 사촌 여동생을 업고 키우느라
제 단벌 난닝구 등짝은 지린내로 삭아 너덜거렸는데
그 애는 전혀 고마워하지 않지요
모르기도 하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까요
그날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이렇게 이쁜 뒤태를 아니 찍을 수 없다며
친구가 찍어 줬지요.
바다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 묵호라면 오징어지요
이까라고 불렀는데
새벽이면 이까 배 들어온다고 등대가 부웅부웅 울면
우리 같은 어린아이까지 작은 칼을 들고
논골 비탈길을 달려내려 갑니다.
한 두름 따면 1원 오십 전
할복할 사람 적으면 2원까지
장갑도 없이
미끈거리는 오징어 몸통을 잡고 배를 가릅니다.
유일하게 돈을 만져본 그때
제 생애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5원이나 8원
그 돈으로 월남 방망이라는 사탕도 사 먹고
왈순마 라면도 사다 국수와 섞어 끓여 먹었지요.
2023년 7월 4일
묵호 아닌 동해시 논골 등대길
저는 오늘 이쁘게 차려입고 놀러 왔습니다.
살아보니
먼 후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알게 됩디다
그건 그때 가서 맞이하고 해결하면 되고요
오늘 하루 제 마음 가는 대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요
내일 돌아보면 어제가 젊었고 건강해 보이고
내년에 돌아보면 저 때가 좋았지하게 되더이다
암으로 죽다 살아 나보니
더 그렇게 여겨집디다
오늘 그리고 내일 최선을 다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나쁘고 불쾌한 것 힘들고 슬픈 것들
오래 안고 가지 말자 주의입니다
저는 글을 사랑하니 글로 인해
옛 기억에 매달리지만
그 기억으로 저 자신을 약하게 만들거나
울화로 키우거나 비뚤어지는 심성을 변명하거나
결핍의 성정을 핑계로 삼지 않습니다.
세상천지 악하고 천하고 불쌍하고 처참한 거
다 보며 겪으며 살다 보면 명배우 연기력
자랑하는 거 우스워 보입니다
실전은 겪을수록 지혜가 쌓이지
버려지는 게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사진 몇 컷으로 남겼습니다
돌아와 딸애에게 보였더니 딸애 하는 말이
“어이구 아가씨여!
”여대생 패션도 소화 시키는 울 엄마 멋쟁이!
덧붙여
“패셔니스타여~오늘 출석부도 잘 읽었어요
마이 속상했겠어~라며 위로 멘트도 날리네요
이날 사진 많이 찍었습니다.
ㅎㅎ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님도 행복한 일상에 힘쓰시고 계시는 거 맞지요 우리 같이 좋은 날 영위합시다.
와
울운선님 이렇게 고운 분 이셨었군요.
젊은 대학생 들과 어울려 공부하시니 회춘 하셨나 봅니다. ^^♡
와! 이제사 아시다니 ㅎㅎ 전 이렇게 산답니다 수피님도 못지 않으시겠지요 꼭 저 보다 더 이쁘게 사시길 바랄께요~
( 오직 울 아부지 밥 많이 퍼줄 생각에
가슴이 뛰던 그날을 어찌 잊겠나요 )
여기에서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얼굴에 검정물들였던 고단했던 소녀가
이리 이쁘고 늘씬하신
여대생이 되시어, 보기만해도
저희를 심쿵 설레게하시는지요?..
운선님의 행복하신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행복하고
행복하시고
또 행복하십시오 ~
운선님..항상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오호라! 드디어 고운 님 울 사강님
오셨네요 반가워요 그간 잘계셨나요 늘 잊지 않고 있답니다 이렇게 반가운 이 글로서 만나는 이 세월에 제가 있다는 것만도 축복이라 여깁니다
사강님 늘 제 주변에 계셔주시어요 댓글 안해주셔도..
반가웠어요~❤❤❤
@운선
운선님 고우신 답글에 다시 울컥 ...
오늘 오후는
눈이 계속 찌리릿합니다 ~~~
아주 오래전,
제가 카페사람이 아닐때에
울언니가 제게 운선님글을
보내주셨었답니다...근데 어느날인가부터
회원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표시에,
운선님 글 볼 욕심으로 카페가입을 했었답니다..ㅎ
어디가서
오감이 다 녹아있는 이리 풍성하고
아름다운 글을 볼 수 있을른지요?..
운선님이 삶방을 든든히 지켜주시고
상상도할 수 없는 멋진 글들을 보여주시니,
당연히 삶방을 아끼고 지지합니다 ~~
여대생 운선님모습
넘 보구싶구요, 캠퍼스도 같이
함 걸어보고싶습니다..학교앞 분식가게도
함께가서 맛난 것도 먹고, 찻집에 가서
팥빙수도 먹고했음 좋겠어요..희망사항..ㅎ
이제 남은 건 건강이예요..몸 아끼고
잘 챙기셔서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해요..
항상 좋은 글 보여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름내내
건강하시고 기쁜 일 많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는 무한대로
보내옵니다 ~~^^
@사강이 눈이 왜 탈이 나셨남 그저 무탈하셔야 하는데
감사와 사랑은 제게 더 많은 기회 주시어요 사강님 💜사랑합니다.
@운선
눈은 운선님이 탈을 내셨지요..ㅎ
울컥 또 울컥하게 만드셔서
눈물참다 찌르르했다는 뜻이었어요 ~
자상하게 주신 답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신 하루되세요..
삶방의 수호여신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운선씨~~~
시간있으면 우리 커피 한잔 합시다! ㅎ
그러하지요 데이트 신청인가요?
ㅋㅋ
3040대 같아요
내가 신사라면 손 내밀고
싶은 멋진여사님~
내밀어봤자 내공이 깊으셔
차이겠지만~^^♡
우리 한번 만날까용?
얼마든지 받습니다 ㅎ
육아 바라지 수고 많으시죠 평화님
가난했던 그 시절, 생각하면 할수록 한 세대 앞서 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집니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요롭고 살기도 편한 세상을 못 살고 가신 내 어머니.
운선 누님의 그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와의 따스한 보리밥 한 사발의 사연들을 들으니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11남매를 낳고 보리밥도 없어서 쑥버무리나 산나물로 배를 채우신 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보리쌀도 떨어져가는(그래서 보릿고개라고 했지요) 이 더운 여름날, 날 막내로 낳으신 어머니.
어머니! 이 불효자 용서해 주세요.
에구 공연히 박시인 울렸네 오늘 생일이라 더 엄마 생각에 울적했을텐데 이 더운 날 몸 풀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셨거야
그땐 그랬지 그래도 고마 울어 뚝!
글에 눈을 땔 수가 없네요.
묵호 이야기..
마치 제 이야기 같아서 옛 기억이 나곤 하네요.
개구석..
제가 태어 난 곳이죠.
산 넘어 창호 국민학교를 몇 년 전 바로 윗 누나와 함께 가봤습니다.
여전히..굳건하게 제 자리 지키고 있더군요.
비릿한 부둣가의 냄새도..
허름한 동네 어귀의 자그마한 언덕도..
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입니다.
나이가 있으신데 참 곱습니다.
아 그러셨지요 그러셨구나 개구석에서 학교 쪽으로 올라가면 이발소 하나 있고 점방도 있고 ㅎ
길 가에 덕장도 즐비하고 노가리 덕장 이까 바리 덕장
정말 뒤태가 연에인 뺨 치시겠습니다
저는 언젠가 읽었던 운선님 아버님의 이야기가 생각나
참 마음이 아려 옵니다~~~
제 소년시절 생각도 나고......
그어른..... 지금은 마음고생 하시지 않으시겠지요 ?
68세에 돌아가셨지요
평생 힘들고 외롭게 사시다가
운선 작가님~!!
어머나 삼족오님 어떻게
그간 어떻게 그리 소원 하셨나요
반가워요 ㅎ
이렇게 뵙게되어서 자주 좀 볼 수 없나요 삼족오님~^^
@운선 작가님,
무척, 일이 한꺼번에 여기저기....
이리저리 왔다갔다 이제서야 한숨 돌려서
이렇듯 작가님꼐 안부인사 드립니다.
아직은 바쁜지라, 시간이 나면 그때 차분히요, 하하
참, 깜빡 추천을.., 5번째로 꾸욱~!!., ^&^
@삼족오 그러셨군요 전 이렇게 뵌 것만도 기쁩니다
그저 탈없이 가족 모두 평안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요 일 차분해지면 꼭 만나길 기다릴께요 ㅎ~^^
전에 뵐때 보다 더 젊어지시고
더 이뻐보이십니다.
아마도 젊은피들과 같이
수업 하시고 생활하셔서
그런 모양입니다.
살다보면 과거로 돌아가
가슴 아린 추억들을 보게
되지마는 세월이 흘러 인제는
덤덤하게 관조할 정도로
삶의 내공이 쌓여 지신듯
합니다ㅡ
그려 살이 좀 빠져서 그래 보이지 싶네 나이가 어디 가는가
과거 일은 다 덤덤하지 이제 와선 그래도 그 살던 곳에 가면 가슴은 아파온다 늘 그곳만 가면 그리고 돌아오면 다 잊지 잊어야 살지
피케티 언니가 좋아 하시는 운선님 모습을 첨 뵙습니다
아니~~이럴수도 있는건가요 ~ㅎ
날씬하시고
이쁘시고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그런 걸까요...
운선님 고운 모습을
보게 되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ㅎ
천년홍님 요즘 바쁘신가봐요 자주 계시판에서 뵈었음해요 ~^^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천8
사족을 달기가...
어머 흑장미님 추천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고마운 마음 전해드립니다ㆍ
사진으로 나마 이렇게 뵈니
운선님 넘 ~곱고 이쁘시네요
40대여인 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이뽀요 이뽀~ㅎㅎ
하고 싶은건 미루지말고
직진 하는게 좋겠지요? ㅎ
더위 조심 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지호씨 잘지내고 있죠
늘 잘지내고 잘 살아가길 언제나 항상 바라는 마음이예요 더운데 일 무리 안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지호씨에게 늘 행운이 맴돌기를~~❤❤❤
운선 작가님의 어려웠던 시절의 한편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숙연해 짐니다
그런데 패션과 젊음은 여대생보다 더 예쁘고 젊습니다
ㅎㅎ고맙습니다
저희 세대는 지난 일이 모두 힘들었던 시기였지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시대 살아 온 몇몇은 제외하고 그 누구라도
고생이라고 합니다 더 심했냐 덜 했냐 차이만 존재할 뿐 이지요 만장봉님도 고생 많이 하셨잖습니까 이쁘다 해주시니 좋아 죽겠습니다 여자는 늙어도 여자인 가 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