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와 팬티 / 이수종
- 문정희 시인의 <치마>와 임보 시인의 <팬티>를 읽다가
치마속 신전에는 달을 가리고
숨겨주는 창이 있다
바람을 빨아들이는 들창 주위를 서성거리며
은밀히 숨겨진 비밀을 열고 싶어
사내들은 신전가는 길목에서
치마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영역싸움을 벌인다
거기서 이기면 다 되는가
그건 일차 관문에 지나지 않는
창들끼리의 다툼일뿐
방패를 뚫고 침입하는
선택받은 승자의 개선을 위해서는
목숨을 건 더 큰 한판 승부가 남아 있다
사내의 완력만으로는 성문을 열 수 없다
문열려라 참깨하고
주문을 외우며
사내들은 치마앞에서
치마성의 주인과 내통하는
카드 비밀번호를 맞춰 보아야 한다
성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구도자의 인내도 필요하고
계관시인의 음유도 필요하고
말 탄 백기사의 용맹도 있어야 되지만
힘하나 안들이고 성문을 열고 맞아들이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더러는 있어
치마앞에서는 여간 근신하며 공을 드려야 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치마는 딱 한번 열렸다 닫히고
더 이상 끄떡도 하지 않은 채
폐쇄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창은 방패를 이길 수 없고
방패는 창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힘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수종 시집 <시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