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山心) 수심(修心)
이재부
매일 하는 세수가 귀찮을 때도 있다 씻어내어도 먼지가 끼어 때가 되고 또 씻
어내고……… 씻어 낸 곳을 비워두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 함께 살아간다 때가 된
사랑도 있고, 원망 섞인 구업(口業)도 쌓이며, 땟국같이 씻겨 내리는 슬픔도 있다.
끝없이 씻어 주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속에 푸른 산 하나 넣어 두면 행복
할 텐데. 산이 좋아 산에 간다.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유람의 고장 단양을 찾아간다. 단양은 군 전체가 기암괴
석이요, 청계옥류(淸溪玉流)이며, 지하보고라고 한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구담봉과
옥순붕은 옥중 옥이요, 별유천지(別有天地)이라 고금의 명인들이 자주 찾는 명승지
란다 몇 번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보았지만 한가롭게 관광하지 못한 곳이다. 봄이
무르익는 경치가 특히 아름답다 하여 벼르고, 별러서 찾아 온 것이다.
소문 대로다 상춘관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시장같이 빈번하다. 그 많은 군중들
이 구담봉에 초점을 맞추며 환호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무아의 경
지! 그것은 삶의 큰 즐거움이요, 마음을 비워내고, 씻어내는 청량제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환호하며 자연의 품으로 뛰어든다. 산으로 오
르는 사람, 유람선 타는 곳으로 몰려가는 사람 전망대, 가게, 식당으로 찾아드는
사람이 온통 가슴을 벌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퍼 가려는 듯 분주하다. 사람이나 산
천이나 잘 생기고 볼일이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몰려온 것인가. 사춘기 청소년
들이 연예인 반기듯 눈부신 경치에 매혹되어 발길을 재촉한다.
산에서 한적함을 즐기고 싶었는데, 대중의 초점이 한곳에 모이니 산중 인파가 오
히려 장관이다. 한적하게 자연을 예찬하며 시흥(詩興과 주흥(酒興)을 함께 즐겼다
는 고인이 부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뛰고 흔드는 춤판이 광인의 경지에 이르더
니 이곳 가까이 오자마자 명령 없이 뚝 끝이는 것이다.
아 아름답다 장관이다,……… 끝없는 감탄사가 쏟아지고 입이 벌어져 다물 줄을 모
른다 선경을 바라보고 시흥을 즐기며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에 담아내던 선인들의
혜안이 부럽다. 풍류를 즐기며 마음을 씻는 선비의 수신 방법을 닮을 수는 없을까.
구담봉과 옥순봉에 걸쳐진 봄빛, 물빛은 밝기도하고 또 맑기도 하다 새싹을 감
싸 안은 봄은 산 가득히 피어나는 붉은 꽃을 끄러 안고 노송그늘에 쉬어 오르는지
꽃들의 미소가 이제 잠에서 깨어난 아기 볼 같이 귀엽다. 물에 잠긴 그 빛 또
한 장관이다. 선유객(船遊客)들의 환호성과 유람선이 헤치는 물 가르마는 춘색(春
色)만 흔들어 대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는 마음까지 출렁거리게 한다 호수
연변에 서있는 바위들 노송을 품어 안은 구담봉 옥순봉, 말목산은 물에 비친 자
화상을 바라보며 물결 따라 흔들리면서도 천연스럽게 자리를 지킨다.
고인(古人)들은 인근 정자 에 앉아 바라보거나 배를 타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고요한 신선의 마음으로 은근히 자연을 녹여내어 마음에 담았지만,
현대인은 역동적 환호로 공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과학의 힘을 빌어 높게 오르고, 시야를 넓히어 기세가 당당해진 탓이리라. 욕망
앞에 불가능이 없다고 호언하는 현대인답게 옛 사람들이 엄두도 못 내던 산에 오
르고 나르는 관광까지 즐기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돈 앞에 무력해지는 세상에
는 자연도 놔두지 않는다. 돈이 된다면 석벽(石壁)에도 천교(天橋)를 놓는다. 자연
의 동맥을 끊고 피를 뽑는 일이 아닐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 또한 예외를
두지 않았다. 철 계단을 길게 곧추세워 놓고 산을 오르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가파른 철 계단을 올라가 뒤돌아보니 천상의 비경인 듯 신비한 명화 속에 내가
서 있다. 좋은 세상이다. 내 어찌 이곳에 왔는고. 속세를 떠나 운향에 오른 듯 아찔
한 스릴이 짜릿한 절정으로 몰아간다. 고인들이 처다 본다면 부러워할까, 근심스러
워 나무랄까? 석산 난간을 지키는 천년 노송이 반기는 듯 산객을 마지 한다. 저 장
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오르리라. 강인 듯 호수인 듯 멈춤도 흐름도 내 마음속에
가득하다. 호심(湖心)에 떠있는 배들이 한가롭다 관광 유람선에 노를 젖는 옛 선비
의 모습이 포개진다. 고금(古今)의 정경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세월이 멈춰선 듯
산천은 유구한데 물굽이 따라 내 마음은 인생여로에 찌든 때를 씻고 있나보다.
선경에 도취되면 운무에 날개 단 듯 마음이 가볍다. 욕심까지 털어 내면 천상의
신선으로 돌아갈까. 행복의 날개 활짝 펴고 바람길 따라 저 푸른 강상(江上)을 훨
훨 날고 있지 않는가. 곡예를 펼치는 기인이 된 듯 내 마음은 중천에서 때묻지 않
은 산 공기를 마음껏 퍼 마시며 찌든 오물을 쏟아내리. 심장을 씻어내는 쾌감
이여! 산해(山海)와 어우러진 영혼이여! 청 녹색 충주호에서 자맥질치는 인생 여로
여! 제비봉에 오르면 자연과 염문을 풍기지만 타락하지 않는 천복을 받으리. 가슴
에 푸른 산 넣을 만큼 비워주면서 산심(山心)이 수심(修心)이라고 속삭여주리.
2006/24집
첫댓글 석산 난간을 지키는 천년 노송이 반기는 듯 산객을 마지 한다. 저 장
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오르리라. 강인 듯 호수인 듯 멈춤도 흐름도 내 마음속에
가득하다. 호심(湖心)에 떠있는 배들이 한가롭다 관광 유람선에 노를 젖는 옛 선비
의 모습이 포개진다.
행복의 날개 활짝 펴고 바람길 따라 저 푸른 강상(江上)을 훨
훨 날고 있지 않는가. 곡예를 펼치는 기인이 된 듯 내 마음은 중천에서 때묻지 않
은 산 공기를 마음껏 퍼 마시며 찌든 오물을 쏟아내리. 심장을 씻어내는 쾌감
이여! 산해(山海)와 어우러진 영혼이여! 청 녹색 충주호에서 자맥질치는 인생 여로
여! 제비봉에 오르면 자연과 염문을 풍기지만 타락하지 않는 천복을 받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