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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1950년대의 불씨
최윤환 추천 2 조회 144 23.07.07 11:56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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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7.07 12:04

    첫댓글 그야말로 호랑이 댐배 피던 시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네요.
    저의 어린시절을 보는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예전엔 다들 환경에 적응하며 그렇게들 살았지요.

    지금이야 첨단 21세기, 편리한 시대, 도깨비와 귀신, 문딩이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죠.

  • 작성자 23.07.07 19:58

    댓글 고맙습니다.
    월간문학지에 낼 글(산문일기)을 뒤적거리다가 위 글을 보았기에 복사해서 여기 올립니다.
    문학지에 낼 글은 더 골라야겠지요.

    저는 1950년대의 산골마을 풍경이 지금도 어렴프시 기억이 납니다.
    세상은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많이도 변하대요.
    특히나 21세기인 지금에는... 저는 컴퓨터 관련사업 팀장을 세 차례나 역임했는데도 지금의 전는 컴맹수준처럼 빌빌거리지요.
    박 선생의 댓글에서 도깨비, 귀신, 문둥이들이 나오는군요. 특이한 종교를 믿으면 도깨비 귀신 등이 즐비하게 나오겠지요.
    문둥이... 끔찍한 나병환자.... 예전에는 왜그리 문둥이가 많았는지....
    문둥이들은 동냥하러 다녔지요. 겁이 나서 얼른 한 됫박 퍼주어야 하고...

  • 23.07.07 14:10

    아 옛날 이야가 나옵니다.

  • 작성자 23.07.07 19:50

    댓글 고맙습니다.

    저보다 한 세대 이전인 부모님의 세상에는 어떠했을까요?
    산골마을 태생인 저한테는 이런 경험이 제법 있지요.
    제 자식들은 서울 특별시 송파구 잠실에서 태어났고, 자랐기에 이런 산골 이야기는 전혀 모르겠지요.
    불과 한 세대 차이인데도 사회현상은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많이도 변했지요.
    지금도 엄청난 변화가 계속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요.


















  • 23.07.07 16:22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 그 중 하나라도 가졌다면 뛸 듯이 좋아했던 시절이지요 물건 귀한 걸 알던시절이 그리워요.

  • 작성자 23.07.07 19:57

    댓글 고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산골마을의 실상은 정말로 가난했고, 무지했고, 힘이 들었지요.
    저는 시골에서 도회지인 대전으로 전학을 갔지요. 1960년부터 살기 시작한 대전 중심지 생활....
    대전 중심지에서도 아침마다 밥 얻어먹으려 다닌 거지들이 있었지요.
    대전시내에서돋 구루마(달구지)에 솔가루 잎사귀 장작 등을 실어서 소나 말로 운반했고, 훗날 연탄이 등장하고...
    2023년인 지금(현대)에는 천지가 변한 것처럼 많이도 발전했지요. 과거의 것들은 사라지고....

    저는 궁벽한 산골마을 태생이라서 그럴까요?
    헌 물건, 폐물품 하나라도 정말로 소중히 여겨서 재활용하려고 하지요.
    많은 기억들이 떠오를 것 같군요.
    이쯤에서 댓글 줄입니다.

  • 23.07.07 20:14

    산골마을은 아니어도
    등잔불 남포불 모다
    사용해봤어요
    남포 유리가 딱기 싫었던 기억이 있어요

  • 작성자 23.07.07 21:01

    댓글 고맙습니다.
    큰언니님은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훤히 아시겠군요.
    등잔불, 남포불....
    이외에 호야등도 있고...

    제 시골마을에서는 1974년 여름에서야 전기불이 들어왔지요.
    집집마다 전구 3개...
    전기불이 처음 켜지는 날에 마을사람들은 동구밖에 나와서 두 손을 높이 쳐들고는 '만세' 삼창을 했지요.
    어둠을 밀어내는 순간이었지요.

  • 23.07.07 22:15

    @최윤환 우와 ~ 만세삼창 ㅎ 할만하지예

  • 작성자 23.07.07 22:52

    @큰언니 1

    댓글 감사....
    전보대를 세우려 하던 때에는 겨울이 막 끝날 무렵.
    토지측량 기사가 전봇대를 세울 곳을 찾아내려고 토지특량하대요.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다는데야... 그 기사님들을 물논에 들어가서 발목을 적실 수는 없을 터.
    마을 청년이었던 저는 자청해서 차가운 물에 들어가서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깃대를 꽂았지요.
    맨발... 발목이 잘라질 것 같은 추위.....
    수고했다고 하면서 갯바다ㅑ서해안 충남 무창포해수욕장)로 저를 차 태워서 가서 저녁밥을 사 주대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 23.07.08 10:13

    정겨운 단어 들이 많이 등장 해 유년기를 천둥벌거숭이 처럼 행복하게 뛰놀았던 제 고향 공주를 떠올려 봅니다.
    버스가 지나가게 되면 흙먼지 폴폴 풍기던 신작로 십리 길을 울부모님 따라 걸어 유구장에 다니던 60년 전 생각도 나서 최윤환님 글 추천하고 갑니다. ^^~

  • 작성자 23.07.08 14:03

    댓글 고맙습니다.
    님은 충남 공주 태생이군요.
    제 고향인 보령 웅천(熊川)은 예전부터 곰내로 불렀지요. 내륙지방에는 산이 제법 높아서 곰이 산다는 뜻이지요.
    공주 또한 그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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