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현 박사는 언제나 선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스포츠 심리 주치의다. 의학에 여러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포츠 심리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는 굉장히 남자다운 분이에요. 유도 4단일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을 잘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한번 덤벼보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는데 아버지에게 도전해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쾌감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식이 솟아나는 것이죠." 그에게 아버지는 또 다른 의미로 롤모델이 아니었을까?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정신과 의사신데 아버지 때만 하더라도 스포츠 정신의학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기 전이라 생각할 수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건 운동도 안되고 정신과 의사로도 안되니 스포츠 정신의학자가 되면 차별화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웃음)
한덕현 박사는 체육계에 몸담고 싶은 열망이 누구보다 컸지만 여러 분위기상 어려웠다. 다른 이라면 현실에 순응했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 공부밖에 할 수 없는 의사임을 만족했어야 했는데 타협하지 않고 이리저리 부딪힌 거죠. 그러면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그?부터 정말 신나게 공부했어요. 정형외과 의사로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너무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웃음)
그는 체육계에 몸을 담기에 앞서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내밀었다. "제가 유명한 야구선수도 아닐뿐더러 체육인 출신도 아니잖아요. 의사 면허증 하나만으로 스포츠 분야에 뛰어든다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저를 데려오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할 수 있도록 제 가치를 높여 놓는것이 우선이었죠." 이런 다짐이 있었기에 그가 국내에서 스포츠 분야로 진입한 첫 정신과 의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덕현 박사는 끊임없이 자신만의 특기를 갖추고자 소아 청소년 의학을 배웠다. "엘리트 코스를 밟는 운동 선수들의 경우 일반인들과 발달과정이 다릅니다. 그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 면담할 때 소아 발달상황을 알고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선수들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그들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학문이죠. 뇌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FMRI(뇌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 스포츠정신의학, 프로팀에서 쉽게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FMRI를 통해 엘리트 선수들의 뇌 영상을 분석하면서 그들이 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선진화된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중한 두 사람을 만난다. 2006 독일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 주치의였던 레오나르도 자이코프스키 교수는 한 교수의 인생에서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스승이다. 눈 내리던 12월, 한 박사는 배우고자하는 일념 하나로 보스턴 교정에서 자이코프스키 교수가 퇴근할 때 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한 번만 공부할 수 있도록 부탁하니까 그제서야 허락해 주더군요. (웃음) 물론 교수님께서 좋은 분이기도 했지만 제가 뇌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고용하면 당신 연구에 내가 가진 것을 접목할수 있다'고 말했어요. 덕분에 교수님과 연구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R.맥더프라고 지금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스포츠 정신의학 주치의를 맡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서 지금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게 '네가 의사라 체육 쪽을 얕게 보거나 동등하게 봐선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고 너만의 장점을 살려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단순히 구단에서 일한 것을 바탕으로 LG에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가치를 끊임없이 높였던 덕분이라고 봅니다."
2011년 2월 사이판 전지훈련지에서 켄그리피 시니어 타격 인스트럭터와 함께
운동선수가 운동선수로서 제역 할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가 내린 스포츠 심리학에 대한 정의였다. 스포츠 심리학이 가장 발달한 시점은 195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더는 전쟁을 할 수 없었죠. 그런데 인간의 공격성은 언제 어디서나 발산되길 원하거든요. 사람을 죽이지 않는 가운데 비난을 받진 않는 한에서 표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데올로기가 동서로 팽팽히 나뉘어 있던 시절이기에 서로를 이기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승부를 가리는 것은 심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부터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인체실험이나 심리 실험들이 진행되었죠. 현재 운동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한 기초는 대부분 50년대에 이미 정립된 것들입니다."
1980년대 들어 스포츠 심리학은 또 하나의 과도기를 거친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을 때 지구상에서 제일 뛰어난 수영 선수는 동독의 크리스틴 오토라는 선수였습니다. 2등과도 월등한 차이로 들어왔어요. 88올림픽에서 6관왕을 거두며 한 올림픽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여자 선수로 거듭났죠. 이번 올림픽에서 화제가 됐던 펠프스보다 더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웃음) 그런데 문제는 당시 도핑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스테로이드를 맞은 탓에 남자 선수들 못지않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독이 오토를 통해 서독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 한 선수를 망치게 되는 원인이 된 것이죠. 그녀는 88올림픽이 끝나고 선수생활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전 세계적으로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것에 대해 학자들이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1등만이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 정신의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시작됩니다. 운동 선수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이 스포츠 심리라는 정의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제가 보통 강연을 나가서 질문을 받아도 잘 모른다고 답할 때가 있어요. 숲 전체를 봐야 하는데 조그마한 것만 보려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죠. 스포츠 심리학자 일수록 인간 전체를 보는 버릇을 키워야 해요. 예를 들면 '저 선수가 야구를 왜 하는가? 골프를 왜 하는가? 이번 시즌 왜 기문이 좋은가?' 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늘 이야기하지만, 심리는 가장 쉬운것이자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친구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심리거든요. 속상한데 위로해주고 나에 대해 지지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건 병원에 가서 의사와 말하는 것 보다 친구들이 소주 한잔 하면서 더 잘해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스몰토킹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심리는 아주 핵심적인 코어가 하나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가지가 뻗어 나가 있는 것이죠. 체계가 잘 잡혀야 하고, 학문적으로 든든한 기반에서 이루어져야 선수들이 다치지 않습니다. 근본 없이 무지한 사람에게 상담을 받게 되면 선수는 다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몇 년 동안 큰 돈을 내면서 상담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부모님이 가자고 해도 오지 않으려 한 선수가 있었더요. 몇 달만 빨리 만났더라면 좋아질 수 있는데 시기를 놓친 선수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런 일들은 없어야 해요. 후배들이 얕게 공부해서 자신이 배운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고 필드로 뛰어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선수들이 흘린 땀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담하다 보면 정말 드라마틱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말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경기가 끝난 뒤에 전화로 알려주거나 다음에 말해주는 것까지 세심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현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도 조언을 구해 보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탑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 2가지가 존재합니다. 모든 젊은이들은 탑다운을 원합니다. 안전한 동시에 확실한 자기 타이틀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사회는 탑다운에 대한 문이 좁아요. 예를 들어 의사가 되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의대 진학 후에 트레이닝까지 받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바텀업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차근차근 밟아가는 단계를 뜻해요. 저 역시 여러가지를 준비하며 스포츠 정신의학이라는 것에 대한 연결고리를 이어간 것처럼 젊은이들이 현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마지막 질문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 한덕현 박사는 "선수들로부터 저를 만났을 때 '나 자신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고 싶네요" 라고 답했다. 이같은 다짐이 있기에 LG 선수들 역시 반갑게 맞이하는 귀중한 손님이 아닐까? 스포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없던 길을 개척해나간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LG트윈스 선수단과 함께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