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거리며 집에서 재롱만 피우던 내가 처음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
학교에서 단체로 일명 "문화교실"인 영화 관람을 했다.
그 전에야 군청앞 넓은 도로에서나 한천 백사장에서 가끔씩 상영하던 꽁짜영화로
신성일, 윤정희, 남궁원 등등.. 그때의 스타들과 나 홀로 면을 튀워 놓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어였한 영화관에서 돈주고 자리하나 떡 하니 차지하고 영화를 보기란
실로 처음있는 일이였다.
그때부터 맛을 들여 극장 화장실 창문을 통해 꽁짜 영화를 즐기게 되는 우리
악동들의 은밀한 행각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가끔 깍뚜기 같은 기도한테 걸려서 된통 혼도 나고, 화장실 청소도 하는 불상사도
있었으나 우리 악동들의 꽁짜 영화 즐기기는 지치지 않고 쭈-욱, 계속 되었다.
그때 신성일의 목소리가 진짜 그의 목소린줄 알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윤정희 역시 그 빼어난 미모와 함께 약간 비음 섞인 목소리에 뻑 가곤 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본 문화교실을 잊을 수 가 없다.
내 나고 영화관에서 자리 차지하고 앉아본 영화는 그 시절에 알맞는 지독한
반공영화인 "돌무지" 라는 6.25 전쟁 영화로 한마을이 어쩌고 저쩌고, 괴물같은
괴뢰군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많았던 그런 영화였다.
심약한 이몸께서 고마 그날 그 영화를 자리에 떡 하니 앉아서 보고는 야외
가설극장 체질인 내가 병이 들고 말았다. 그 충격에 놀란 것인가? 영화 내용에
놀란 것인가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지만 하여튼, 맨날 꽁보리밥에 피죽 으로
연명하던 넘이 갑자기 기름기를 뱃속에 채우면 탈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 이리라.
저녁도 거른체 땀을 뻘뻘 흘리며 방구석에 누워 우리 엄니 걱정 끼치는 중
동내 아주머니 한 두분씩 기척내며 방으로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위로겸,
깊어가는 겨울밤 지루함도 달랠겸 해서 생 고구마 깍아 앞에 놓고 시간과 잠과
싸움하고 있는데 이몸은 가만히 천정을 올려다 보니 낮에 영화에서 본 그 괴뢰군이
내게 싸움을 걸어온다.
어지러운 전쟁터의 광경도 보이고 그중 가장 악날하던 괴뢰군 한놈이 집요하게
나만 물고 늘어 지는데 아무리 아파도 이몸이 누구인가! 동내에서 소문난 악동이
아니던가!
혼자 누워서 "시팔놈이"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는 허공을 향해 팔을 휘휘 내
둘리며 그예 맞장을 뜨고 있던중 갑자기 그놈의 손바닥이 내 귀싸대기에 불을
붙이는듯 하여서 정신차려 바라보니 울 엄니가 놀라서 내게 휘두른 손바닥 였었다.
너무 아파 눈물이 팽 돈다.
우리엄니 지끔 뭐 하는거냐고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되려 가만있는 날 왜 때리냐고
고래 감을 지르며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는 달려 들다가 또 맞았다.
하도 억울하여 징징 짜면서 가만히 누워 있자니 그놈이 다시 벼루박에 꺼꾸로
붙어서 나타 나더니 다시 맞짱 뜨잔다.
아까 맞은것도 억울 하구만 이놈 시키! 이 공산당 시키가 죽을라꼬 환장을 했나!
싶어 벌떡 일어나 그놈이 꺼꾸로 붙어서 약을 올리는 벽면 구석으로 달려가
맞짱 뜰때의 초기 폼을 잡고, 한껏 겁을 주다가 발길질을 해댔다.
아무리 때려도 쓰러지진 않고 터미네이터 처럼 계속 달려 드는데 미칠 지경이다.
아니 이미 미쳐 버렸구만! 놀란 우리엄니 나를 뒤에서 꼭 안아 붙잡곤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놈이나 나나 둘중하나는 골로 갔지싶다.
그리곤 우리엄니 손에 잡혀서 바늘로 온 몸과 손가락 몇군데 피를 보고 말았다.
그날 이후부터 열이 내리지 않고 계속 헛소리를 해 대니 울 아부지 그 약한 등에
이 귀한 아들놈 업고 아푸지 말거라, 아푸지 말거라! 하시며 추운 겨울날
양의원이고 한의원이고 오만곳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가끔씩 정신이 들어 그 중간중간 학교 가지 않는것에 대하여 안도 하곤 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버티니 피골이 상접이요! 온 뼈 마디가 탈골된 상태라!
흐물흐물 연체동물 한마리 구물구물 기어 방 바닥에 붙어 있는 꼴을 하고 있자니
엄니 당신 입으로 밥알 꼭꼭 씹어서 내 입으로 가져다 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차도가 없자 우리 엄니 최후의 선택!
양손을 모아 아미타불을 외치시던 엄니께서 기어이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왔다.
그 모습을 보신 울 아부지 내 앞에선 절대로 무당지랄 하는것은 못 보신다꼬
고래고래 소리 치셨지만 우리 아들 이렇게 죽일거냐고 악을 쓰며 달려드는
엄니의 그 힘을 꺽지 못했다.
고만 자리를 피해 봇대할매집 에서 막걸리로 대신 열을 식히고 계셨지 않나 싶다.
마당에 멍석깔고 그 앞에 귀신상 차려놓고 귀한 이몸 끌고 나오더니 귀신앞에
이몸 눕혀놓고 생 지랄을 다 한다.
칼을 날리고, 대나무 마구 흔들고 내 몸에 물을 더럽게 입으로 훅훅 뿌리더니
종이에 불을 붙여서 내 온몸을 태우듯이 뜨겁게 아래위로 왔다갔다 하던 기억
동내 사람들 빙 둘러선 구경꾼 중에 내 친구 원이 놈이랑 락이놈 얼굴도 보인다.
시끄러운 징소리와 북소리가 귀가에서 점점 멀어 지는가 싶더니 그때 부터 조용하다.
잠시 어둠 속에서 안방 벽에 걸린 액자속의 빛바랜 사진에서만 본 할배 얼굴도
보이고 할매 얼굴도 보이고, 생전 첨 보는 사람들이 어른 거리며 내 머리를 쓰다
듬고, 몇해전에 죽은 내 동생 얼굴도 보인다.
하나도 반갑지가 않다. 자꾸만 씨팔! 욕이 나올려고 하는걸 억지로 참고는
집에 간다꼬 누구에겐가 모를 생때를 썼다.
지금은 한 낮인가?
몸이 가벼움을 느꼈다. 실눈을 해서 보니 안방에 엎드려 있고,주위엔 아무도 없다.
배가 고프다...
조용히 엄마를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고, 밖에선 우리집 갑돌이 새끼 무얼보고
짖는지 컹컹 소리만 몇번 들리다가 만다.
다시한번 크게 "엄마!" 하고 불러 보았으나 여전히 조용하다.
그대로 잠시 다시 잠이 들었나? 주위에서 웅성 거림이 들리고 반가운 엄니의 목소리
가 들린다.
"작은놈 보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이놈까지 데려 갈려고 그러냐!"
"조상이고 뭐고, 제사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내 이놈 끌어 안고 같이 죽을란다!"
이어서 아부지 목소리
"그 참 여자가 방정맞게 씰데없는 소리 자꾸 하고 그라네!"
그때서야 내가 끼어 들었다.
"엄마... 밥도!"
이 목소리에 놀란 엄니 나를 안고 아이고, 살았구나! 하시며 눈물을 줄줄 흘리신다.
언제 내가 그렇게 아팠었냐는 듯이 엄니가 금방 해 주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두부 송송 썰어 넣은 된장에 물김치 한사발 뚝딱 해 치우니 앞에서
내 먹는 모습을 가만히 신기한듯 바라 보시던 엄니 말씀.
"니 어데 갔다 왔노?"
"할배 만나고 왔다!"
"할배가 뭐라 카더노?"
"머리만 쓰다 듬던데..."
"하이고 이눔아야, 잘 왔데이!"
"엄마는 와 우는데?"
"여-엉, 니놈 이자 뿌는줄 알았다 이눔아!"
"참내, 그 무슨 말인데?"
동내 아무개집 막내 아들놈 다시 살았다꼬 소문이 나서 아부지 친구분들, 엄니
친구 분들이 가져다 주시는 쇠고기랑, 미역이랑, 생선이랑, 각종 과자랑 약밥이다
뭐다 해서 한동안 실컷 먹었다.
나중에 점점 커서 고등학교 다닐적에 엄니에게 물어봤다.
"그날 무당이 내한테 우짜 했는데?"
"뭘, 우짜하긴 그냥 굿했지"
"진짜로 내 그때 죽다가 살았나?"
"니 일어 나던날 너 아부지 시철이 아부지랑 니 놀던 뒷산에 구덩이 파고 않왔나!"
" ... "
나를 살린 그 무당은 나로 인해서 떴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 이후부터 굿 맛을본 울 엄니 땜에 심심찮게 우리집에선 굿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렇게 애를 먹인 이놈, 효도 할라꼬 막 그라는데 이미 가시고 않계시더라!
어디서 들었는지, 오늘 우리 딸아이 일요일 이니까 우리집안 단체로 문화교실
가자꼬 설레발 지기다가 저그 엄니한테 잡혀서 도서관 가고, 아들놈 노는거
가만히 들여다 보며 옛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다들 살아 계실적에 효도 합시다!
그리고 여름 방학도 다가 오는데 "문화교실"도 자주 갑시다!
몇일전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본 내용이 떠오르네요~..진정한 무당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녀의 몸부림~..세상에 설움있는 사람의 한은 다 풀어주고 싶다고 하던데...//정말 초시님은 남들의 삶보다 두배는 더 사시는 듯...좋으시겠어요~..ㅎㅎ 한번으로 두번의 삶만큼이나 많은걸 배워가시니..ㅎㅎ
우리 어렸을땐 반공영화 많이 봤지요..스파이들이 숲속에서 접선하는 장면등..괴뢰군들은 모두 뿔이난 사람들인줄알았고..어렸을땐 초시님처럼 그럴법도 했지요..꿈에도 나타나고..그런데 초시님은 좀 심하셨네요..ㅎㅎ귀한아들 위한 엄니의 마음도 지극하고...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 ^^*햄...모레볼가?아님 담주에 함 떠나볼가요?
사연도 많고, 기억력도 끝내주고...생생하게 그 엣날로 돌아갔다 온 느낌입니다. 옛 생각 자주 하이소.
정말 어쩜그렇게 사연이 많나요. 억새풀의 주인공...그 누구인가요? 갑자기 그주인공이 생각나네요. 너무 심했나요? 하옇튼 정말 재밌습니다. 속도 후련해지고....
초시님요~~~~~~~~물어내소~~~~~~~~~마스카라 다 지워졌다아잉교~
몇일전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본 내용이 떠오르네요~..진정한 무당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녀의 몸부림~..세상에 설움있는 사람의 한은 다 풀어주고 싶다고 하던데...//정말 초시님은 남들의 삶보다 두배는 더 사시는 듯...좋으시겠어요~..ㅎㅎ 한번으로 두번의 삶만큼이나 많은걸 배워가시니..ㅎㅎ
우리 어렸을땐 반공영화 많이 봤지요..스파이들이 숲속에서 접선하는 장면등..괴뢰군들은 모두 뿔이난 사람들인줄알았고..어렸을땐 초시님처럼 그럴법도 했지요..꿈에도 나타나고..그런데 초시님은 좀 심하셨네요..ㅎㅎ귀한아들 위한 엄니의 마음도 지극하고...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와우~~~~~~~~~~~~~~~~~~~~~~~~~~~~
어릴적 온갖 경험을 겪으셨기에 풍부한 인생을 사시는 초시님, 다양한 글로 우릴 간접 경험하게 해주시네요.~~
일요일 답사 취소되어 아쉽습니당.. 담주에 함 떠나볼까요?(2)
정말 죽다 살아나셨네요... 사연도 많고 기억력도 좋고... 그래요 효도해야죠..
오늘도 한바탕 웃고 갑니다. 늘 즐거움을 선사하는 초시님 복 많이 받으실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