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5. 10. 2. 목요일.
고교 친구들과 함께 (나는 내 아내와 함께) 독립문역에서 내린 뒤 인근에 있는 안산 안산자락길'을 걸었다.
하산한 뒤 독립문이 있는 현장에 가니 독립문 주변은 온통 칸막이로 가려져 있었다.
독립문 내부를 수리하고, 청소하나 보다.
독립문 건물 앞에 있던 영은문의 돌기둥 2개조차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칸막이로 막아서 .....)
'쪼다 이씨조선의 구한말 역사가 쪽팔려서 ...?!
아니다. 독립문 내부를 청소하려고 이 일대 주위를 온통 칸막이로 가렸을 터.
*2025. 10 2. 내 생각.....
영의문 설치 당시의 풍광(이 사진은 언제 찍었을까?)
영은문 이미지를 현대의 색깔로 덧칠하면 ㅋㅋㅋ하다.
영은문(迎恩門) :
1) 조선 태종 7년인 1407년에 태종이 명나라에서 내려오는 사신을 몸소 맞이하기 위하여 세운 문.
현재 영은문 주초가 대한민국 사적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조선시대 명나라에서 오는 사신을 맞아들이기 위해 1536년에 세운 문으로, 1896년에 헐리고,
이후 독립 협회의 주도로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움
* 의문 : 영은문 건립 시기는 언제인가?
위 1)과 2)의 자료에서는 시기가 각각 다르다?!
이씨조선은 태종 때부터 모화루를 세워놓고 중국사신에 아부하였는데, 세종때는 이에 홍살문을 덧세워서 중국사신을 맞이하였다.
중종은 그 홍살문을 증축한 다음에 영조문 (迎詔門)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그런데, 중국은 영조문을 영은문 (迎恩門)으로 개칭하도록 요구한 바 그대로 수용되었다.
이것은 '중국이 너희 이씨왕조를 보전해주는 것을 고마운 줄로 알아라'는 말이었다.
영조문(迎詔門)이란 현판을 걸었으나
중종 34년(1539) 명나라 사신 설정총(薛廷寵)의 지적으로 영은문으로 이름을 바꿨다.
.............
영은문은 조선의 국왕이 중국사신을 영접하고 배웅하는 장소였다.
영은문에는 약소국인 조선의 설움이 배어있었다.
.................
청일전쟁이 끝난 후 고종 32년(1896) 모화관을 독립회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은문을 허물어 버리며 그 앞에 독립문(獨立門)을 세웠다.
이때 영은문의 주춧돌을 남긴 것은 치욕을 기억하고 자주를 위하여 국력을 키우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중앙일보 2007-2월 16일자 칼럼>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慕華館) 앞에 세웠던 문이다.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현재 독립문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있었다.
자료 :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모화관 앞에 세웠던 주춧돌이다.
개화기에 우리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다짐하는 의미로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면서 그 기둥을 받치던 밑돌인 주초만 남게 되었다.
모화관은 조선 태종 7년(1407)에 처음 세우고 모화루라 하였는데 그 뒤 세종 12년(1430)에 모화관이라 이름을 바꾸고 그 앞에 상징적인 의미의 홍살문을 세웠다.
중종 32년(1537)에 홍살문보다 격식을 갖춘 형식의 문을 만들고 ‘영조문’이라 하였다가 중종 34년(1539)에는 중국 사신의 건의로 영은문이라 이름을 고쳤으며, 연주문·연은문이라고도 하였다.
중종 때 만들어진 문은 1칸 규모이며 두 개의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우진각지붕을 얹었는데, 지붕은 청기와로 덮고 각종 동물 모양을 조각한 잡상을 배치하였다.
남아 있는 2개의 주초는 2단의 사각형 받침돌 위에 기둥처럼 길게 세워져 있다. 위에 놓인 받침돌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1895년 철거돼 주초(가운데)만 남은 영은문.
철거 당시에 독립문 건설은 예정에 없었다.
1896년 독립문이 세워지면서 영은문 주초(기둥)만 그 앞에 세워두었는데,
1979년 성산대로 공사로 인해 독립문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독립문 :
1896년 11월 21일 영은문 부지에서 공사에 돌입했고
1897년 11월에 완공된 독립문은 대한제국의 문이 되었다
영은문의 현재는 지붕 누각은 없고 돌 기둥 2개만 독립문 앞에 진열되어 있다.
철거해서 돌기둥을 옮겼다. ......
구한말의 역사가 쪽 팔려서...... 성산대로 고가도로를 개설하면서 ......
국사....
아국의 역사가 쪽팔려서...
지나간 과거의 국사, 못난 사실은 왜그리 숨기는 게 많고, 반대로 잘란 사실은 지나치게 과장해서 후대에 전할까?
이 일대의 역사 가치 :
독립문(사적 제32호)
영은문 주초(사적 제33호)
독립관
3.1독립선언기념탑
서대문형무소역사관(사적 제324호)
순국선열추념탑 등이 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나중에 보탠다.
쉬자.
사진과 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