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참된 스승인가
눈이 먼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필요하고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는 목발이 필요하듯,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참된 스승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참된 스승은 누구인가?
원효는 대안대사를 만났고 혜가는 달마대사를 만났다.
역대 조사들도, 큰 스님들도 다 눈밝은 스승을 만나 인도를 받았다.
이 혼탁한 세상에 우리들의 심안을 밝혀줄 스승은 누구인가?
귀의한다 함은 스님들을 무조건 믿으라는 게 아니다.
자·비·희·사의 구도정신,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정진력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단지 삭발염의한 모습이 남다르다 하여 믿고 따르라는 게 아니다.
금강경은 분명히 ‘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가르친다. 임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어쩌자고 임제 스님은
이런 과격한 선언을 했을까? 이른바 임제 스님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은 ‘자기 밖의 스승’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요, 타력에 매달리는 중생에 대한 경고이다.
‘너 자신’ 밖의 어떤 것도 ‘참’이 될 수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설사 내 앞에 달마대사가 있다 해도 깨닫는 주체는 ‘나’이지 달마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지식이라도 나를 대신하여 깨달아 줄 수는 없다.
밖에 있는 것은 결코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만약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우상 숭배자다.
진정한 스승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인 것이다.
선지식은 지팡이요 목발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이정표이다.
음식점의 메뉴판이요 땅의 대강을 보여 주는 지도(地圖)이다. 결코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혜가의 스승은 달마대사였지만 깨달은 이는 혜가였다.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시켜 먹고 배부른 것은 혜가였지 달마가 아니었다.
무엇이 참 스승인 줄 알아야 비로소 올바른 스승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달마도, 대안도 스승 노릇을 할 수가 없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