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나가는가? 실상을 말하자면, 교회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다.
우리와 더불어 함께 예배를 드리는,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친교야말로 교회의 으뜸이다.
본디 교회란 친교를 으뜸으로 하는 공동체인 까닭이다. 친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매주일마다 그렇게 빠짐 없이 교회를 출석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예배드리기 위해서라고? 예배는 집에서도 가능하다. 가정예배도 있지 않은가?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예배를 대신하기도 한다.
은혜받기 위해서라고? 혼자 있을 때는 은혜를 못 받는가? 교회 나올 때마다 오히려 보기 싫은 사람들 때문에 은혜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들은 적절하지 못하다. 교회에 나와야 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친교'때문이다. 실은 예배조차도 친교의 한 표현이다.
친교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끼리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사귀는 것이다. 친하게 교제하는 것이다.
이들이 만나고 교제하는 장소가 교회당이다.
이들이 만나는 형태가 예배다. 예배의 핵심은 "마음을 같이 함"이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마 5:23-24)
예배는 친교의 마당에서 피는 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주보에 있는 것처럼, 예배 안에 친교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교 안에 예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왜 나가는가? 친교하기 위해서다.
친교란 무엇인가? 구원받은 성도들이 만나서 서로 사귀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것만 가지고서는 매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야 하는 까닭을 납득시키기 부족하다.
교회는 친교를 으뜸으로 하는 공동체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족'이다. 영적으로 확대된 가족공동체다.
한 가족이라는 사상에서 친교의 필요 충분 조건을 발견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5)
가족은 안 만날 이유가 없다. 가족 간에 만나야만 되는 이유를 나열한 것은 넌센스다. 같은 피가 흐르는 까닭이다.
성도들의 동맥 안에는 같은 피가 흐른다. 그 피는 '그리스도 로고스 형'이다.
모두가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한 하나님이 계신다.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거듭 태어났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맏형이시다(롬 8:29).
교회는 한 가족이다.
분열을 사탄의 행위라고 정죄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 있다. 사탄은 말하자면 가정파괴범인 것이다.
교회는 한 가족이다. 일주일 동안 떨어져 살다가, 주일이면 같이 모여 한 아버지를 즐거워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즐겁고 아름답다.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 친교는 교회에 나와야 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다.
친교는 한 가족이라는 바탕 위에서 가능해진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공동체다. 그래서 적절히 말하면 친교는 '한 몸 된 가족 간의 애정을 만끽하는 것'이다.
가족으로서 서로를 느끼는 것, 완전한 가족이 되는 것....! 이것 말고 친교의 이상이 달리 없다.
친교란 한 가족이 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가족 안에서 식탁교제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분주해도 식사만큼은 같이 한다. 식탁에서 자연스레 대화가 이루어진다.
식탁은 가정에서의 친교의 본거지다. 한 자리에 모여 앉아 한 솥밥을 먹는 것, 그것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가난이나 풍부를 함께 하는 것이다. 한 솥밥을 먹을 때 비로소 '식구'(食口)가 된다.
가족이란 한 솥밥을 먹는 사람 이외 다름 아니다. 이처럼 교회가 영적으로 확대된 가족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탁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매주일마다 성도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식탁교제는 이루어져야 한다. 초대교회에서 식탁교제는 매우 중요했다(참조. 갈 2:12).
그런데 여러 세기를 거쳐 오면서 애찬의 정신은 사라지고 그것은 성스러운 의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식탁교제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는 '밥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도 먹을 것이 펼쳐지는 잔치마당을 즐겨 찾으셨다.
식탁에서 죄인과 병든자와 함께 나누는 주님의 교제는 끊임 없이 펼쳐졌다(참조. 막 2:15~16).
주님에게 식사를 같이 하는 잔치마당은 천국의 모형이었다. 교회는 매주일마다 식탁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식탁에서 '평균'의 이상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된다. 어떤 이는 고기를 먹고, 어떤 이는 죽을 먹을 수는 없다. 그것은 거짓된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그래서 실패했다(고전 11:17-22).
교회는 영적으로 확대된 가족 공동체다. 가족이라는 날틀 위에서 친교는 수놓아진다.
식탁교제는 그 핵심이다. 식사를 같이함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요, 모든 것을 더불어 나누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평균의 원리는 모든 것에까지 미친다. 가족끼리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여기에는 '능력에 따라 걷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평균의 정신이 살아 숨쉰다(행 2:42-47).
헌금은 이러한 정신 위에서 실시되어야 한다. 헌금은 '서로 나누는 것'이다.
서로 '통용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조차 서로 같아지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이 적을 수록 좋다.
헌금의 정신은 "넉넉한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고후 8:14)이다. 그것은 성도들 간에 "평균케 하려는 것"(고후 8:13)이다.
교회 안에서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여야" 한다(고후 8:15).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이 심화된 교회는 비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약 2:1-13).
사도행전 2장에 묘사된 초대교회의 모습은 이제까지 말해 온 가족공동체의 원형이다. 거기에는 교제가 있었다. 그들은 "떡을 떼었다".(행 2:42, 46).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는"(행 2:44-45)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할 수가"(행 2:46 상) 있었고, 그 결과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행 2:46 중)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친교의 소문이 널리 알려지자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다"(행 2:47).
교회의 으뜸은 친교다. 이 친교를 근간으로 하여 교회는 봉사해야 한다. 교회의 친교는 자기소모적인 것일 수가 없다.
그것은 창조적, 생산적이어야 한다. 친교와 봉사는 바늘과 실이다. 친교와 봉사는 교회의 양 면이다.
친교가 교회의 내적 원리라면 봉사는 교회의 외적 원리다.
교회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 예배당, 즉 예배드리는 장소일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는 이제 교회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아간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전진기지다. 성도는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봉사'다. 봉사는 적절히 말하면 '고난받는 이웃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봉사와 구제와 선행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세상에 널리 전시한다.
교회는 봉사와 구제와 선행으로써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친교의 미덕을 세상에 널리 증거한다. 말하자면 봉사는 '친교의 드러냄이며 증거'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친교는 '사랑의 교회 내적 실현'이다. 봉사는 '사랑의 교회 외적 실현'이다.
먼저 안에서 실현되고 나서 밖에서 실현된다. 현대교회가 봉사에 실패한 것은 교회 안에서의 친교의 실패를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된다.
친교는 '교회의 자기사랑'이요, 봉사는 '교회의 이웃사랑'이다. 자기사랑과 이웃사랑이 한데 모여 하나님 사랑을 이룬다.
역으로 하나님사랑은 자기사랑과 이웃사랑에서 증명된다.
친교에서 봉사가 열리고, 이것을 통해서 세상은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는 노동하는 공동체이다. 주일은 그저 쉬는 날이아니다. 주일은 오히려 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날이다.
주님께서도 "안식일에 선을 행함에 있어서 열심"이셨다(막 3:4, 눅 13:14-17, 14:1-6).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해 주신 각각의 재능으로써 혹은 소유로써 이 필요에 부응한다(참조. 롬 12:6-8).
교회는 왜 나가는가? 친교 때문이다. 친교는 무엇인가? 한 가족임을 느끼는 것이다. 한 식구가 되는 것이다. 밥상공동체는 그래서 필요하다. 더 나아가 모든 것에 걸쳐서 참다운 평균의 정신이 실현될 때, 가족공동체는 완성되어 진다.
이러한 친교를 근간으로 하여 봉사가 이루어진다. 봉사는 무엇인가? 이웃의 삶에 동참함이요, 이웃을 섬김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바로 친교와 봉사다.
친교는 '교회의 자기 정체성'이다.
봉사는 '교회의 자기 실현'이다.
친교와 봉사를 두 축으로 하는 교회는 출석인원수를 체크하고 헌금의 많음을 자랑하고 조직을 능사로 삼는 거대교회일 수가 없을 것이다.
오로지 교회당에서 형제 자매를 만나 한 가족으로서의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이 친교와 봉사라는 두 축은 힘차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화한 현대 사회 속에 교회가 존재해야 할 유일무이한 정당성이다. 교회는 친교와 봉사의 공동체인 것이다. - 어른이 -
첫댓글 성도들의 동맥 안에는 같은 피가 흐른다. 그 피는 '그리스도 로고스 형'이다. 모두가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한 ..
사람이 갯돌 문디이 처럼 혼자는 못 살아서.....ㅋ
기독교교리는 별로 믿어지지 않지만서도, 저도 교회는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나갑니다.^^
교회에 나와야 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친교'때문이다...이하중략... / 이시대에 교회가 능력이 없는 이유가 바로 예배보다 교제가 더 앞서기 때문일것임다. 1907의 대부흥에도 이런 교제가 잇엇나요?교제는 부수적 활도임다.교회의 제일 목적은 예배이고 곧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임다... 교제하시려거든 아이러브스쿨이나 가입하세요.그리고 매주 동창들 만나서 노가리 까세요. 그게 휠씬 값싸게 치이고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음다..교회의 제일 목적은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교제이고 전도이고 봉사이고 교육입니다.....예배가 빠진 교회의 교제는 계모임이랑 다를 것이 없음니다.
예배를 꼭 교회당에서 드려야하는지 우선 질문하고싶군요.. 정말 궁금해서 질문드리는것이니 오해는 없으시기바랍니다. 신실한 크리스챤이라면 교회당에서만아니라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릴수가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본문에는 가정예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배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교회당에 나갈 필요가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예배드리는것은 가정에서 드리는것도 좋을거같은데요... 본문을 쓰신분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것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기독교인도 사람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도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 성경 근거 말고 단순히 연역법에 의해서 말이죠..
그런데 글이 붙어있으니까 읽기가 힘드네요.. 특히 저는 눈이 나쁜데 저처럼 눈 나쁜 사람이 이런 글 그냥 읽으면 시력 더 떨어집니다. 줄 간격이 넓어도 인터넷상에서 글 읽기가 힘든데 말입니다.
잘못 옮겨서 입니다. 글쓰기 상태가 되었을때 에디터,HTML,텍스트의 셋중 글이나 자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해야하는데 잘못한것입니다.~~~~~
바꾸어 읽기 좋게 되었네요. 이미지님의 좋은 이미지가 더욱 빛나기 바랍니다. 샬롬,
가정뿐만이 아니라 삶이 예배여야 하겟지요...만약 윗님처럼 에배의 조건만 따진다면 교회당은 필요업음다.아무곳에서나 예배드리면 되니까여...그러나 이런식의 주장은 무교회주의일뿐이겟지요..."오로지 교회당에서 형제 자매를 만나 한 가족으로서의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이....." 아무리 읽어봐도 가정예배를 전제한다고는 볼수 없을 것 같은데요...교회가 친교와 봉사의 단체이면....지역복지관이 더 잘 돌아갑니다.더 체게적이고 프로그램도 더 유익합니다.....교회에서 친교와 교제가 필요하지만 절대 예배드림을 앞설 순 없음다.교회의 예배공동체임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어느정도까지임다.교회에서 아무리 재미잇게해봣자 '무한도전'1시간 시청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세상의 재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임다.봉사도 마찬가지 일테고..그러면 교회만이 줄 수 잇는 것은.....바로 예배를 통한 회복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에배가 최우선인 것임다.
이보세요 자유인님 예배는 당근이죠. 예배 없이 친교만 하자는 말이 어디에 있읍디까? 콩떡 그라마 찰 떡 같이 알아 들세요. 오늘 도 나는 교회 가서 예배 드리고 친교도 나누고 일거 양득 하고 왔구만요. 님이 상기 본문의 의도를 자꾸 빗나가시네요.
데체 무슨 글을 읽은 것이야...님아! 제대로 함읽어보세요..님 생각말고 윗글 말입니다....@.@
아~~~님의 글이엿군요...ㅋㅋ 진의를 젤 잘아시겟네요..그러나 제가 읽은 것으론 그렇게 안 느껴재는데요...
본디 교회란 친교를 으뜸으로 하는 공동체인 까닭이다. 친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매주일마다 그렇게 빠짐 없이 교회를 출석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예배드리기 위해서라고? 예배는 집에서도 가능하다. 가정예배도 있지 않은가?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예배를 대신하기도 한다.....
님의 글이 제대로 쓰여졋다고 생각하시나요..?오해햇다면 죄송합니다만...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은 헤아리시길,,,,,
인테넷 예배가 예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예배를 빙지한 개인편리추구일뿐임다. 예배가 아니죠...
덧글들이 많이 자삭이 되었나 보네요. 문맥 연결이 되지 않아 좀 어리둥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