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즈워디는 계시의 점진성을 중요하게 제시한다. 계시의 점진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구약은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게 된다. 계시의 점진적 이해의 눈으로 구약을 바라보면 구약은 복음의 그림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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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법은 그리스도로 완성되었다. 이제 더 이상 성전도 제사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는 레위기의 제사법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전에는 지켜야 했던 법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라는 정도로 이야기하면, 레위기를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일획일점이라도 영감되지 않는 것이 없다. 모든 본문은 성경의 영감으로 구속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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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사법은 폐하여졌고, 도덕법만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제사법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혀 적용되지 않는 이전의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골즈위디는 "어떤 성경본문도 우리에게 직접 쓰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본문이 우리를 위해 쓰이도록 영감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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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5제사와 7절기로 나눌 수 있다. 1-10장까지의 제사에 관한 율법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 Worship to God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11장부터 27장까지는 Walking with God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마치 로마서의 부분과 비슷하다. 로마서도 1-11장까지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12장부터는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적용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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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마서 12장은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예배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라고 시작하는 12장 1절은 넓게는 1-11장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복음을 아는 우리는,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하는 대목이다. 12장에서 말하는 '영적예배'는 Reasonable service. 합당한 예배, 이성적 예배, 논리적 예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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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마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면, 하나님앞에 우리의 삶을 전부 드리며 살아가는 산 제물로서의 삶이 가장 말이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이끄는 동기가 된다. 은혜가 순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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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렇듯 레위기도 마찬가지다 1-11장 까지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법은 우리의 구원을 가리키고, 구원받은 사람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12장에서 소개한다. 그 첫 시작이 부정한 짐승을 먹지 말라는 계명과 먹을 수 있는 짐승을 이야기 하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이 구절을 지금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제사법이 완성되었으므로 필요없는 율법이 되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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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순수한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교육전도사를 하던 시절에 강단에서 레위기 설교를 하시던 담임목사님께서 저녁예배 설교에서 "오늘 고상섭 전도사님과 제가 저녁에 선지국을 먹었는데.. 피를 먹어서 회개합니다." 라고 말씀을 전하셔서 당혹했던 기억이 있다. 예배 후에 성도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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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상구 박사가 한 때 암을 치료한다는 뉴스타트 운동을 할 때 레위기의 음식을 따라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강의한 적도 있었다. 레위기의 율법은 모두 폐기되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복음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11장까지 제사에 대해 말한 뒤 12장부터 정결음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제 구원받은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가장 작은 일상의 생활에서부터 거룩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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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권면했다. 아마도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레위기 12장을 연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계시의 점진성은 어느 한 구절도 버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복음의 그림자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은 일획일점도 버릴 수 없는 완전히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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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복음의 빛을 비춰서 구약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희미해서 명확하지 않지만 복음으로 가까이 올수록 그 빛은 선명해진다. 그리스도라는 렌즈를 가지고 비출 때 구약은 숨겨두었던 하나님의 나라의 신학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냥 읽으면 인간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밖에 보이지 않지만 복음의 빛을 비추면 그 뒤에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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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교수님으로부터 구약신학을 배울 때 구약의 율법을 Case law 판례법으로 보지말고 illustrative law 실례법으로 보라고 말씀하신 한 문장이 구약 율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판례법으로 보면 그 당시 필요한 하나의 예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늘까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례법으로 보면 그 법을 통해 보여주는 핵심사상이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고 적용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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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구약의 저자들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쓰지 않았다. 골즈워디의 표현대로 "구약 역사를 기록한 저자들은 현대 역사가들이 기록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적 역사신학 즉 창조, 타락, 구속의 사건을 객관적 우주 안에서 일어난 보편적 사건으로 기록했다. 그들은 역사적 중요성 뿐 아니라 신학적 중요성을 성경 안에 기록했다."
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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