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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당나귀. 너 같은 놈을 뭐라고해야 할까? 낙천가 라고해야 하나, 아니면 천하태평이라고 해야 하나."
"유리창으로 돌격하는 벌이라고 할까. 장애물을 피하지 않는 쇠똥구리라고 할까."
우리 주위에는 물과 바람과 불처럼 자연 속에서 구체화된 힘이 움직인다. 그 힘은 모든 방향에서 우리를 공격한다. 그들의 표적은 조직을 형성하고 하나의 꼴을 갖추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모든 것이다. 이 힘의 배후에는 허무의 한 구석에 자리한 혼돈으로 돌아가라는 위협이 늘 일렁이는 것 같다. (...) '떄에 이르렀다. 지구여, 영원히 죽는거다.' 이것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인간이 분명히 획득한 사고, 본능적으로 지(知)의 모습을 규제하는 사고다.
그런데 생명이 물질적 양상을 덮어쓴 채 액체가 가져다 주는 형태를 이용하는 한편으로, 시간의 영향 아래서 그 명령에 순응하게 되었을 때, 그런 형태를 넘어설 전망을 갖춘 생명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갔다. 그 떄문에 생명은 새로운 조직 원리를 근본에서 다시 세우게 되었다.
순수한 물질에서 천재에 이르기까지, 원자에서 렘브란트까지, 모든 것이 똑같은 근본적인 실재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드러내고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한정된 형태라는 분야에서 시도된 분석은 우리가 품고 있는, 알고 싶은 욕구나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구 앞에 놓인 모든 문제에 빛을 비쳐줄 수 있고, 또 분명히 빛을 비쳐줄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시대의 황혼과 함께 날아오른다.
응.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니까 당나귀는 언젠가는 반드시 엄청난 소로브레드가 될 거야.
열정을 식히려 해도 그것은 생멸을 멈추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의지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자기 변명일 뿐이다.
몇 마디로 많은 것을 알게하는 것이 큰 인물의 특징이고, 작은 사람은 그와는 반대로 많은 말로 아주 작은 걸 알려주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네 사람은 남을 위해 고생을 사서 하는 걸 좋아하는 천성인 것 같아."
그 말이 나와 당나귀와 아이코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자신을 그렇게 인식한 적이 없으면서도 각자에게 마음에 닿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곤란에 빠진 사람을 보면 모른 척하지 못해.. 보답은 바라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말아...."
그런 다음 요코는 턱을 괴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으니 돈이 모일 리가 없지."
"언젠가는 큰 선물을 받을 거야."
당나귀가 난롯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에게서?"
요코가 물었다.
"이 우주에게서."
그 대답은 아이코의 입에서 나왔다.
"타고 가던 비행기 날개가 부러져도 살아남는다던지, 커다란 바위가 굴러와 덮쳐도 우리는 괜찮다든지..."
아이쿠가 잠이 든 채 왼손을 들어올렸다. 마치 천장을 가리키는 것 같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코의 팔은 천천히 내려와 자신의 가슴 위에 떨어졌다.
문득, 내 가슴속에 책임, 도의, 약속, 포옹 같은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아이코에 대한 책임이 없다. 연인이기에 도의적인 책임은 있을 테지만, 나는 결코 아이코를 구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만일 약속 같은 게 있다면, 아이코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 뿐이다.
아이코와 나는 거의 매일 밤 끌어안고 잔다. 섹스를 하건 하지 않건 한 침대에서 잔다. 그렇지만 내가 이 여자를 진심으로 가슴에 싶이 품고 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너무 공허하고 쓸쓸한 것 같아 카루이자와에 온 것을 후회했다. 요코의 말이 옳다면, 우리 네 사람은 곤란에 빠진 남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그냥 마음씨 좋은 사람일 뿐이다. 우리 사이에 마음을 턱 놓고 지낼 수 있는 단단한 인연의 끈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불안하지도 않지만 안심할 수도 없다. 그런 관계에 나는 어떤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 걸 묻는 건 요코 답지 않아. 무슨 일이든 전광석화처럼 결정하는 게 요코잖아? 게다가 나는 세토구치라는 사람,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평가하고 감상을 가질 수 있겠어? 난 신문도 주간지도 텔레비전 보도도 믿지 않아. 예를 들어, 어떤 유명한 사람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해. 그걸 읽어보면, 그 글을 쓴 놈은 태어나서 길가에 쓰레기 하나 안 버린 듯해.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침을 뱉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그걸 읽는 놈도, 과연 그렇다고, 너무 간단히 믿어버려. 어느 놈 할 것 없이 마구떠들어대. 난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아. 만난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야. 당나귀 말이 옳아. 요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해. 요코의 마음은 아무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거야."
" 나도 페퍼도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족을 만들어보기로요..."
곤충이나 물고기는 번식에 목숨을 건다. 인간 뿐이다. 제 형편이 안 좋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새끼를 없애버리는 동물은... 제발 그런 것을 이성이라고 하지 말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해. 돈이란 놈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놈을 위해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거야."
사물의 질서는 그 방대한 생명체가 우연의 역병과 계절의 무자비함으로서가 아니라, 생산하는 것과 같이 격렬하게 파괴하려는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따르기 위해 죽임과 멸망을 갈구한다. - 파브르
사흘 전에 결혼을 약속하고 고작 네다섯 시간 전에,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노라고 결심한 내가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싸움을 하고 만 것이다.
벽난로 앞에서 돌문어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페퍼는 벌써 잠들었다.
익숙한 듯 팔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이 정확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산뜻한 움직임이 온몸으로 땅에서 에너지를 퍼 올리는 상하운동 처럼 보였다.
그 때 문득 내가 정말로 아이코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아이코의 지병이, 또는 그 지병의 원흉인 아이코의 내면적 혼돈이 나라는 인간과 결코 융합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투정을 부리는 건 귀엽게 봐줄 만한 일이지만, 그 투정을 늘 받아줘야만 할 의무를 짊어진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라는 영역에서 어떤 의무감이 생기면 아마도 모든 것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병이란 놈은 당사자가 가장 괴로울 테니, 내가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아무리 태양이 비쳐도, 아무리 비료를 많이 줘도, 벚꽃은 봄이 되어야 피고, 해바라기는 여름이 아니면 피지 않아.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안정이 되자 고열과 숙취의 고통이 나를 오히려 냉정하게 해주었다.
아니, 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이 힘을 잃어버렸기 땜누에 냉정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우리 네 사람이 어떤 인간인가를 꺠달았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우리 네 사람은 하나같이 남을 위해 살아가려고 한 것이다. 자각하지 못한 채, 같은 경향을 가진 네 사람이 우연히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데 가치나 행복을 느끼는 자신의 성향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인연인지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다.
남을 위해 살아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남이 곤란에 빠진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것은 사람이 좋다든지 남 돕기를 좋아한다든지 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취미나 기호가 아니다. 그렇다, 우리의 생명이 가진 어떤 성향이었다.
나는 몸의 반쪽이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듯한 기분으로 그렇게 물었다.
" 화를 내면 돌아올 거야? 그렇게 엉덩이 가벼운 여자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거야말로 나에 대한 모욕이야. 나는 이제 죽었다 꺠어나도 아이코를 도울 방법이 없어. 물구나무를 서도 코피도 안 나올걸. 아이코가 의사가 되려면 돈이 필요해. 여기까지 와서 의사의 꿈을 접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누가?"
"아이코도 나도."
"괴롭지 않아?"
"괴롭지, 괴롭고말고. 아이코가 다른 남자에게 반해버렸으니 난 정말 괴로워."
"그럼 내가 도와줄게. 어려울 떄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했잖아."
'순간적인 연민에 취해서는 안돼......'
내 속에서 그런 말이 떠올랐다. 아이코의 어떤 점이 소중했을까... 말로는 할 수 없지만, 그 소중한 부분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그것은 내 탓도 아니고 아이코 탓도 아니다. 부서져버힌 소중한 부분을 회복하기에는 아이코와 내게 뭔가가 부족하다.
내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코가 한순간의 흔들림 때문에 나에게 돌아오려 한다면, 나는 그냥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아이코의 미래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나의 손은 아이코의 카디건 단추를 풀고 있었다. 아이코도 단 일 초가 아까운 듯 급한 손길로 자신의 옷을 벗어던졌다.
뜨거우면서도 황량한 기운이 감도는 섹스가 끝나자 우리는 처참한 기분으로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그 처참한 기분이 더는 활개칠 수 없도록 입을 꼭 다물었다.
"요시, 괜히 고집부리는 건 아닐까? 그것 떄문에 아이코는 타고 싶지도 않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버리는 게 아닐까? 나, 왠지 그런 기분이 들어. 그 사람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벌써 이 아파트를 나가지 않았을까? 아이코는 결벽증이 있는 아이니까."
그런 당나귀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우린 병에 걸렸어. 상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주려는 병에 걸렸어. 아이코도 같은 병에 걸렸어.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 행복한 건지는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아이코가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뭔가에 씌었어. 우리, 남의 행복을 위해 힘을 보태는 걸 좋아해. 우리라는 존재가 이미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어. 이건 전생의 업 같은 거지. 그렇지만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남의 성공에 침을 뱉는 업을 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을 정말로 행복하게 생각해."
" 오늘이 경칩이야. 경칩, 알지? 보기에는 겨울이지만 흜 속에서는 벌레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날. 나, 경칩이란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담동하게 돼. 죽은 척하면서 겨울을 이겨내고, 달력도 없는데,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모든 생명체가 봄이 오면 움직이기 시작해...."
"아이코에게는 지금이 바로 경칩이야. 그리고 내 몸은 반은 한여름이고, 나머지 반은 한겨울."
' 도대체가 인간이란 동물은 어른이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거야. 그런데도 소년은 빨리도 노인이 되어버려....'
나는 가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속의 소년은 벌서 주름투성인데, 겉만 어른인 나는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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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나지막히 한숨을 뱉어낸다.
책을 읽은 후.
입가에 맺혀있던 작은 미소대신 나의 눈에서 강물 냄새가 난다.
씁쓸한 기분이랄까.
언뜻보면 이해는 안가지만 재밌을 것 같은 4남녀의 동거이야기.
요시는 꼭 아이코를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을까...?
내가 아이코였다면, 나는 그냥 휴학을 하거나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사랑 얘기. 씁쓸한 사랑 얘기.
결국 헤어짐에 아파하고.
결국 추억이 되어 버리고.
난 결국 눈물을 흘린다.
씁쓸한 사랑 얘기.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전 읽을 때 마다 씁쓸하지만. 그래도 ^^
나도 잘 읽었어. 씁쓸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