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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자격증은 땄는데 일은 어떻게 구하지?
H님은POP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을 구하고 있다.서울을 비롯해 철원, 제천, 동해, 군산, 양양 등 지역의 여성회관이나 여성센터에서 개설하고 있는 ‘예쁜 글씨 POP자격증 과정’. 식당이나 마트 같은 매장에서 손으로 직접 쓴 색색의 메뉴 판이나 홍보 문구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POP이라고 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POP자격증을 취득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듯하다.
POP자격증에 대해 찾아보니, 방과 후 교실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전망 있는 일’이라고 소개된 글을 여러 개 확인할 수 있었다. 비용도 크게 들지 않고 경력이 쌓이면 프리랜서로 ‘능력껏’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도 하니 눈길이 갈 수밖에. 그러나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H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실은 달랐다.
“애들 재워놓고 밤 10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꼬박 밤 새워서 마무리한 거야. 그게 종이에다 해야 되는 것도 있고, 우드락에 해서 자르고 해야 했어요. 애들 선거홍보 피켓이었는데 크기가 전지사이즈 4개, 4절지 6장, 우드락 4개. 시간이 꽤 들더라고요.”
자격증을 따고 처음으로 맡은 일인지라, H님은 만삭의 몸으로 급하게 주문 받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가며 POP를 만들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단다.
그러나 일이 그냥 들어오지는 않는 법, 일을 구하는 것부터 일이었다. H님은 POP에 이어 초크아트도 배우면서, 현재 창업반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 중이다. 2백만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데, 일이 그만큼 들어올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각종 자격증이나 창업 시장은 나날이 확장되는데, 정작 일자리나 일거리를 구하는 건 오롯이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어떻게 일을 구할 것인가 고민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게 영업이잖아요. 커피숍이든 어린이집이든 내가 직접 발로 뛰면서 일을 달라고 명함이랑 내가 했던 샘플작업들을 보여주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을 안 해봤으니까 조금 겁도 나는 거에요.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는 거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갔다가 상처받아서 오면 어떡하지? 그런 것들이 두렵더라고요.”
집 근처 방과 후 교실 POP강사 구인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오진 않았단다. 일을 구하려면 어쨌든 영업을 뛰어야 하는데, 어떻게 일을 달라고 말하고 해야 할지 구직 과정에서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더구나 이해관계 속에서 ‘을’로서 일을 얻어내야 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의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다 일을 거의 끊임없이 지속해왔던 H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직에 겁을 내는 마음의 문제가 단순히 스스로 마음을 바꿔먹으면 해결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 간병으로 첫 단절을 겪고서
살아왔던 과거를 되돌아보면, 지금의 경험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순간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H님에게도 중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통해, H님의 경험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노동자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어떤 고민을 하며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인테리어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셔서 아버지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집에서 오로지 간호만 했어요. 직장을 다니다 보니까 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축과로 편입을 했어요. 집에서는 학비 때문에 반대를 했어요. 학비를 대야 했는데 마침 전문대 다니던 교수가 잘 봐줘서 계약직 조교를 1년 단위로 2년 정도 했어요.”
학비 때문에 집에서는 반대했지만, H님은 계약직 조교 일도 하고 구두 가게, 옷 가게에서 물건을 팔며 주경야독했단다. 비록 아버지 병간호로 일의 ‘공백’을 가지긴 했지만, 보다 나은 다음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즉, 일의 공백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건축업이 호황이던 시대적 흐름에 따라 건축 일에 전망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졸업할 즈음 IMF 금융위기 사태가 터졌다. 국민 차원에서 금 모으기 이벤트도 해가며 경제 위기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금방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 위기의 파도는 우리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었고 건축업계도 피할 수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H님도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단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니까 미술학원을 하던 친구가 도와달라고 해서 친구 일을 도왔어요. 처음에는 그냥 도와주는 일로 한 거였는데, 한 달하고 나니까 친구가 봉투를 주더라고요.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학원을 누구한테 넘길까 고민을 하고 있길래 ‘그래, 그럼 내가 할게’ 하고 학원을 갖게 되었어요. IMF 사태로 일자리가 잘 안 나니까 일 찾을 때까지 친구를 도와주자고 결정한 거였는데 일이 그렇게 풀린 거예요. 서울로 이사 오기 전까지 했으니까 햇수로는 거의 10년 가까이 한 거죠.”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주말 부부’로 각자 일하며 지내왔다. 어머니가 도와주셨다고는 하지만 거의 혼자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학원 운영까지 했던 H님. 그 시기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첫째 낳고 나서 친정엄마랑 같이 살았으니까 엄마한테 맡기고. 그때가 1월이었는데 옷을 아주 두껍게 입고 일을 하러 나갔거든요. 웬만한 일은 다 혼자서 해야 했어요. 누구를 불러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전해주시는 분 말고는 없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을 하루에 3시간 정도 바쁜 시간에 두었는데, 그것도 운이 좋아야 둘 수 있는 거지, 지방이다 보니까 미대생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어렵게 구해서 그 학생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는 거에요. 남들은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하냐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몸조리를 잘 못하게 되고…. 주위의 다른 미술학원 선생님들도 똑같았어요. 다들 그냥 나와서 일을 하는 거에요.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되니까 하는 거지 여유가 있으면 그렇게 하겠어요?”
전일제 일자리 제안을 거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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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되니까 했던 학원 운영의 시간 10년이 지나고 펼쳐진 국면은, 공간적 변화로부터 만들어진 ‘단절’과 낯설기까지 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남편과 살림을 합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