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避暑),
'더위를 피한다'는 뜻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 '서울을 피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도 있습니다.
여름 한 철 울어대는 매미처럼 징징거려야 하니 피서를 위한 휴가를 가질 수는 없고 서울을 잠시 피하여 떠났습니다.
영월!
김삿갓으로 더 알려진 김병연씨의 고향?
그곳이 그의 고향은 아니었고 묘가 있었으므로, 심지어는 '면'의 행정구역상 명칭을 바꾸기도 한 곳입니다.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운명 같은 천륜에서 절망하고 좌절헤야 했던,
삶을 가혹하게 얽어매는 속박속에서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간
그 파란한 삶을 추모하기 위한 것인지, 그의 이름을 빌어 첩첩한 산으로 둘러싸인
고을을 세상에 알려지기 위한 그 무엇이었던지...
그보다는 비운의 왕이었던 단종의 유배지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몇 년 전 오월, 청령포에 도착했을 때 그 때의 심경은 아직도 선연합니다.
오월이라 연초록 눈부신 신록은 번져가는데
서강 건너 소나무숲은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그곳을 흐르는 강물처럼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강을 건너기 위해 일행들은 배에 오르는데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돌아와서 '슬픈 이별'이라는 글을 만들었었지요. 그 중의 일부로
(청령포에서 서강은 가파른 육육봉의 절벽을 휘감아 돌아서 흐른다.
휘돌아 흐르는 물은 천천히 여유로웠고 너른 둔치 건너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낯설도록 이채롭게 다가선다.
그 소나무 숲은 원래로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연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화사한 봄볕에도 자지러지는 생명의 환희가 보이지 않았고 주변의 풍경들과 대비되도록 봄날의 들뜸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전설처럼 음습하고 낯설도록 처연한 엄숙함이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현덕왕후 권씨)를 잃었고 병약했던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면서
어린 나이에 단종의 칭호로 왕위를 물려받아야 했다.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에나 다닐 12살 어린 소년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입혀진 곤룡포는 어린 그에게 너무 두렵고 무거운 옷이었다.
주렴으로 발을 치고 자신을 대신해 청정한대도 큰 흉이 되지 않던 시대였지만 조모도 어미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하여 그에게 씌워진 익선관은 권위가 아닌 야만을 부르는 모자였고
그가 입었던 곤룡포는 권세가 아닌 필연처럼 비극을 부르는 옷이었다. )
그곳을 가려면 박달재를 지나야 합니다.
예전에는 구불구불 재를 넘어갔는데 이제는 후딱 터널로 지나갑니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를 챙겨주었던 금봉이라는 처자의 애달픈 사연은,
그 노랫말로 흥얼거려도 보지만 울림도 없이 터널속으로 묻히어 사라져 갑니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낸다며 굴을 파내고 나무들이며 들꽃피던 산야를 허물어가는 인간들에 대한 슬픈 응보이기도 합니다.
청령포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그때만큼은 아니라지만 왕이기 전에 한 소년의 비애가 여전히 강물처럼 돌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돌아나와 일행들은 계곡에 머물렀지만 혼자 산길을 올랐습니다.
가파른 비탈밭을 일구며 살았던 산골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직 경작되고 있는 공간으로 잠시 그 척박한 삶을 기웃거려보기도 했지만 흐르는 땀에 마음은 기운 밭고랑처럼
가파르기만 합니다.
산을 내려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배낭에 넣어 온 책을 읽었습니다.
얼마전에 회사에서 가까운 식당에 들렀을 때 기다리면서 책꽂이에서 빼내 있었던,
그곳에서 다 읽지 못하고 빌려 온 책이었습니다.
실크로드 1만 2천km를 걸어서 여행했던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씨가 쓴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미지를 풀어놓아라'는 요청에 다시 시작한 여행의 후기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여행하는 것' 은 자신의 취향에 맞지 맞지 않았다는,
모터가 달린 차가 싫고, 주유소가 싫고, 기계, 속도, 소음, 무관심과 익명성이 익명성이 떠도는 커다란 도로가 싫다.
숨을 쉬고 살기 위해 네게 필요한 것은 느림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고,
풀길을 따라 어스렁거리며 몽상에 젖는 것이다.'
탁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탁족(濯足)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는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속의 모든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품에 안겨 안일의 여유를 즐긴다는 의미라지만
산을 내려 온 계곡의 개울물은 발을 담그는 것이 부끄럽도록 맑고 차가운 느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하늘이 시원처럼 흐르는 물에 들어왔고 쉬리들이 살갗을 간지럽히는,
미움과 두려움, 원망이 없는,
이 세상의 온갖 평화와 충만이 작은 웅덩이를 돌아가듯 느리게 우주에 가득한 시간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
첫댓글 마운틴^^김창환선생님께서는영월을다녀오셨군요ᆞ탁족하시는사진이참시원하게보입니다
ᆢ근황을적어주셔서안부를알게되니반갑습니다~~
돌아댕기기나 좋아하는 자에게 뭐 근황이랄거는 없는거지만
안부로까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서는커녕 더위 먹어서 현기증 때문에 병원 가서 수액을 맞았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건데 맛이 고약하더군요. 김 선생님이야 더워 드실 일은 없겠지요. ㅎ
남단과 북단을 찍고 이제 탐라도로 입도하지는 아니한 거네요.
이제 몸으로 때우는 일은 그만하시고 시간으로 때우는 일로 ......
탐라에서 한번 지내보고 싶었는데 거기 일자리를 못 구했지요. ㅎ 머리가 나쁘니 몸으로 때워야지요. 시간으로 때우는 일 좀 알려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