臥雲의 아침단상 ~ 보훈처장 박민식과 백남희 여사 ~
-고 백선엽 장군 추모 동상 올 7월 다부동에 건립
-백 장군 딸 남희, "MIU 모두를 존중하는 나라를..."
미국 정부기구 중 돈(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순서는 국방부 국가보훈부....
27일 행안부 통일부 국가보훈처 인사혁신처의 합동 업무보고가 열렸다.
보고는 ‘책임지는 보훈, 안전한 나라, 함께 여는 통일’ 슬로건 아래 진행됐다.
장관보다 한칸 아래, 장관급이 장인 보훈이 앞선 걸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만큼 보훈처장 박민식을 신임하는 건가?
박민식은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몇 안되는 장관(급) 중 한명이다.
그렇지만 신임의 차원이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이 캠프 출신인 최측근 중 한명이라서가 아니라 나라 안보를 지키는 국방외교와 함께 나라 정신을 지키는 보훈을 중시한 것이리라!
윤통은 모두발언에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자유와 창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어려울 때 나라가 나를 도와주고 또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그런 사명감이 들 수 있는 국가 시스템...”라고 했다.
보훈처는 ‘국민이 하나되는 일류보훈,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보고했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1류보훈', 영웅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걸 핵심 과제로 정한 거다.
박민식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1류보훈’을 위해 세가지를 강조했다.
"국가유공자의 영예로운 삶을 위한 경제적 보훈 안전망을 구축하고, 보훈의료‧복지서비스를 혁신하며, 신속하고 합리적인 보훈체계를 구현할 것"이라고 했다.
그보다 더 절실한 게 ‘영웅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1류보훈’ 추진이다.
"보훈의 역사 가치로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 생애 마지막까지 최고의 예우를 다하며, 제복(MIU, Man In Uniform)의 영웅이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고, 자유의 가치로 국제사회와 연대하겠다"고 했다.
윤통이 적재적소의 인사로 박민식을 보훈처장에 제대로 낙점한 것 같다.
그의 선친은 소령 계급장을 달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작전 중 순국했다.
박민식 스스로 명실상부하고 자랑스러운 보훈 가족이다.
그러니 더욱 간절하고 절실하게 나라 위해 목숨 바치고 부상한 분들 유족이나 가족, 본인을 예우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보일 거다.
어제 박민식 장관과 고 백선엽 장군의 따님 남희 여사와 오찬을 했다.
그 자리에는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사업가나 조부가 독립운동가인 분을 비롯해 보훈과 나라사랑에 관심이 깊은 분들이 함께 했다.
우연히도 선친들이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사람만 둘이나 됐다.
우국충정이라는 컨셉트로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자리였다.
백남희 여사는 선친 백선엽 장군에 대한 비화를 하나 소개했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선친이 받은 수십개의 훈장을 일일이 찍어 책을 발간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은 상은 셀 수가 없다.
미국 은성 무공훈장만 여러 개고 미 대통령이 최고사령관에게 수여한 공로훈장과 영국 프랑스 필리핀 태국 등 참전국들에게 많은 훈장을 받았다.
다부동을 비롯해 6.25전쟁의 판도를 바꾼 여러 전투들에서 고인이 세운 혁혁한 공과 진면목이 보인다.
따님인 남희 여사의 인사말에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버님을 추모하는 뜻에서 동상도 건립해주시기로 해서 정말 감사합니다...선친 추모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의롭게 희생한 모든 제복을 입은 공직자들(MIU,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을 잊지 않고 위하는 자세로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남희 여사는 말미에 선친이 받은 훈장 책에 얽힌 뒷얘기를 하나 꺼냈다.
"아버님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은 책에 넣지 않을까 하다 넣었습니다. 하도 친일이다 뭐다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떳떳하기 때문에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밝힌 얘기는 선친이 교통부 장관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1970년 일본의 적군(적군)파 조직원 9명이 승객 122명과 승무원 7명을 태우고 하네다 국제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로 향하던 JAL 여객기를 납치했다.
적군파가 저지른 일본 최초의 하이재킹(항공기 공중 납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납치범들은 기장을 권총으로 위협해 평양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당시 적군파는 경찰서 습격사건 등으로 수배당해 궁지에 몰렸다.
기장이 기지를 발휘해 급유를 핑계로 후쿠오카 공항부터 들렀다.
이곳에서 일부 승객들(23명)이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후쿠오카를 떠난 후 납치범들이 김일성 초상화 등 위장 전시에 속아넘어가는 바람에 평양인 줄 오판해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했다.
납치범들은 승무원과 승객을 볼모로 북한까지 안전한 비행 보장을 요구했다.
김포공항에서 범인들은 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야마무라 신지로(山村新治郎) 당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잡고 79시간 만에 북한으로 갔다.
4월 3일 평양으로 들어간 적군파 조직원들은 북한에 망명을 요청해 그곳에 정착했다.
마침 백 장군이 교통부 장관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였다.
대한민국 일본과 북한 정부 간 힘든 협상 끝에 야마무라 차관이 129 대신 인질로 북한 행을 했다.
당시 야마무라는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대신 전해 달라"며 끼고있던 반지를 백 장관에게 건넸다.
그 후 무사히 서울로 돌아온 야마무라는 백 장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또 표했다.
그리고 돌아서기 전, "무슨 요청이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때 백 장관이 "지하철 기술 지원과 건설 자금을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청했다.
야마무라 차관이 총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하철 건설에 협조했다.
우리 지하철 1호선 설계와 건설에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1971년 4월 마침내 지하철 개공식을 했고, 공사는 몇년 뒤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민들의 발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요도호 사건의 공로로 서보장 훈장 2개를 백승엽 장관에게 수여했던 것이다.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나라를 구했다.
그리고 여순 반란 사건 후 군내 좌익 숙정 때 박정희도 적발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박정희의 구명에 힘을 써 구해낸 게 백선엽 장군과 이용문 장군덕분이었다.
고 백선엽은 대한민국을 지키고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분이다.
상찬을 받아야 할 분을 좌파 세력들은 친일 몰이로 차갑게 냉대했다.
백 장군이 타계했을 때, 문재인은 달랑 화환 하나만 보냈을 뿐이었다.
해방 2년 전, 간도특설대 근무 이력만으로 독립투사를 탄압이라도 한 듯 몰아갔다.
올 7월 고 백장군의 추모 동상이 격전지 다부동에 세워진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다부동 전투에서 우리가 패배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지 모른다.
그래서 백장군의 추모 동상이 다부동 격전지에 세워지는 날 거기로 가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