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詩 [최승호] 새와 나무의 결혼

[하루]

내가 나무고 당신이 새라면, 우리는 지저귀는 나무가 되겠습니까. 온몸에서 꽃 피는
새가 되겠습니까. 내가 새고 당신이 나무라면, 우리는 부리 뾰족한 나무가 되겠습니
까. 열매 속에서 새끼들이 부화하는 기쁨이 있겠습니까. 내가 나무고 당신이 새라
면, 우리는 눈 뜨고 있는 나무가 되겠습니까. 발가락 달린 잎사귀들이 하늘로 날아가
는 일이 있겠습니까. 내가 나무고 당신이 새여서 우리가 결혼한다면, 우리는 알 낳
는 나무가 되겠습니까. 세상에서 키가 가장 큰, 새의 왕이 되겠습니까. 내가 새고 당
신이 나무여서 결혼한다면, 우리는 온몸에 깃털이 난 나무가 되겠습니까. 발을 땅에
파묻고 평생 서 있는 새가 되겠습니까. 결혼 뒤 늙을 때까지, 내가 나무로 살아야 한
다면, 나는 우두커니 새를 기다리는 나무로만 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살 것 같습니까. 결혼은 하지만 내가 새로 남아 있고, 결혼을 해서 당신이 나무로 남
아 있다면, 내가 나무 주위를 맴도는 새가 되겠습니까. 당신은 새만 쳐다보는 나무
가 되겠습니까. 생각이 이렇게 많아서야 결혼이 자꾸 미뤄지지 않겠습니까.




시. 최승호 '새와 나무의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