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문안 / 지명이
가족 같은 분위기다. 앞집 친구의 부인은 성격이 아주 명랑하여 서로 만날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한다. 친구가 일찍 집으로 오는 날이면 두 부부가 함께하는 날로 생각이 각인되었다. 앞집이 아니면 우리 집에서 두 가족이 둘러앉으면 전투 훌라 게임이나 고스톱 놀이한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양가가 함께 밖으로 나간다. 부산은 산과 바다가 함께하여 풍경이 아주 좋은 도시다. 두 집이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해안에서 어패류로 즐기거나, 산골로 나들이 나가 육류 등 서로는 다수의견 수렴하여 입맛을 돋우는 날이 잦았다.
앞집에서 생활하는 기철이네 부부는 우리 부부와 어울리길 아주 좋아한다. 두 부부가 삼십 년을 함께 하면서 혈육 같은 사이로 변했다. 서로가 내 집처럼 들락거리니 가족이나 다름없다. 자주 오가는 탓에 양가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안다. 앞집 친구 기철은 중소기업 중견 간부이고 부인은 작은 가게 운영한다. 그들은 즐겁게 살아가는 원앙새 같은 부부다. 자녀도 출가시켰고 중년이 되었지만, 이제부터 신혼부부처럼 즐거움만으로 살아보자고 한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날리던 5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출근길에 앞집 친구의 부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며칠 못 본 탓에 미소 지으며 반갑게 인사하니, 부인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면서 고개 돌린다. 명랑한 성격이라 평소에는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데 오늘은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부인에게 요즘은 친구가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부인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아무런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젊은 시절엔 볼링이나 탁구 등 각종 스포츠 함께하면서 세월을 녹였는데 보이지 않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부인의 표정이 어둡다. 항시 생글거리던 그녀의 안색이 밝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친구 기철에게 전화하면 회사 일이 바빠서 당분간 못 볼 것 같다는 말을 전해왔다. 부인의 행동이 이상하여 어디에 가는지 다시 물었다. 게다가 집안에 무슨 우안이 있는가 하고 꼬치꼬치 물으면 부인은 말없이 고개 끄덕이더니 시선을 피하였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병원에 간다고 이실직고한다. 누구의 병문안 가느냐고 따지고 물었더니 몰라도 된다며 한참 망설이다가 울음 섞인 음성으로 남편이라고 대답했다.
친구가 몸을 숨긴 곳은 병원이었다. 그녀가 남편은 술을 좋아하더니 결국 간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인에게 문병같이 가도 되겠는가 하고 물었다. 부인은 다른 곳으로 들렀다가 간다며 병원에 오지 말라는 뜻으로 말을 돌려서 피하려 하는 느낌이다. 어느 병원인지 물어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멀어져 가는 부인의 뒷모습은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 같아 보였다.
이튿날 승강기 안에서 친구의 자녀 만났다. 아빠의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하다고 했더니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주었다. 자상하게 묵고 싶었으나 자녀에게 민폐가 될까, 고개만 끄덕이며 응 그래 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회사에도 가지 않고 우리 부부는 곧장 부산대학병원 내과 병동을 찾아갔다. 입원한 병실 앞에서 친구의 명패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부인은 환자와 함께 침대에 마주 앉아 우리 부부의 모습 보더니 깜짝 놀란다. 친구가 창백한 얼굴에 가느다란 목소리로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가? 하면서 우리 부부 반긴다. 병명을 모르는 나는 친구 포옹하고 어깨 다독였다.
친구가 핼쑥해졌다. 최기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년의 나이에 투병 생활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무슨 병인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인가 하고 반문하였다. 친구는 내 손을 꼭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암 말기라서 수술이 불가하다고 한다.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어려 천장만 바라보았다.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다 못해 삶에 대한 회의 잃었다. 친구는 속세 떠나 어디로 가야 하나 하다가 산속의 집으로 가려고 부부가 의논 중이라 한다.
친구의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이토록 심각한 줄도 모르고 위로의 말을 전하려고 왔다가 감전당한 느낌이다. 할 말을 잃고 침묵으로 친구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들어온 부인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순간 아내도 그녀 감싸 안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삽시간에 병실 안은 울음소리로 가득해졌다. 2인실이라 곁에서 병간호하던 아주머니도 한순간 남편을 잊고 옆 환자의 애석함에 눈물을 훔친다.
집념이 강해야 내 몸을 지킬 수 있다. 투병 생활은 자기와의 싸움인데 집념이 강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 내가 지켜본 친구는 의지가 강하다고 자부한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 오욕을 버리고 조용한 산속 외딴집에서 자연인처럼 생활하라고 권했다. 친구도 산사로 찾아가 마음 수양을 하겠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조용한 암자에 머물다가 건강이 좋아지면 하산할 때 연락할 테니 그때 보자고 덧붙였다.
친구는 도시로 날아든 민들레의 삶과 같다. 민들레는 지면이 포장된 도시로 날아와 척박한 곳에 자리 잡듯이 친구도 병을 안고 공해 속에서 가족을 위해 노동으로 열정을 쏟았다. 친구는 삶을 찾아 산속으로 들러서 맑은 물이 샘솟는 곳에 자리 잡고 투병 생활에 젖겠다고 한다. 친구는 의술의 부족함을 자연에서 힐링하려고 입산을 준비 중이라고 가느다란 음성으로 말한다. 식물성 병원균인 피톤치드는 항암치료제로서 으뜸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체험하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하겠다고 한다. 형제처럼 함께하던 친구 두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뒤돌아 보여서 발걸음이 무겁다.
언젠가는 완치라는 소식이 전해오길 목을 길게 빼서 하산을 기다리겠다고 전하고 친구의 어깨 다독이며 환한 웃음소리 집에서 듣겠다고 전했다. 부인에게 목숨은 쉽게 끝나지 않으니 희망을 잃지 말자며 기다려 보자고 안전감을 전했다. 곧 완치되리라 믿겠다고 하면서 친구의 등 다독이고 병실에서 나왔다. 친구의 애처로움과 병간호하던 부인의 눈물은 내 가슴에 영원히 잊히지 않는 아픔을 남길 것 같은 날이었다.
첫댓글 예기치 못한 변수는 항상 찾아오는 우리네 인생..
쾌차하셔서 예전에 다정한 이웃으로 다시 돌아가시기를 바래 봅니다.
정말 어찌해야 하는지ᆢ
치료방법이 없는건 아닐덴데요
쾌유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