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부인이 얼마 전 타계했다. 그녀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녀의 남편은 조금 다르다. 1983년 겨울 그가 우리 중대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그와 악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너무 손을 세게 잡지 마라',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간지럽게 하지 마라', '너무 세게 흔들지 마라.' 등 갖가지 주의사항이 '하달'되었으나 레이건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별다른 주의 사항이 없었다. 다만, 악수할 때 건너편에 서 있는 G-Man (경호원)이 좀 신경 쓰였다. 혹시라도 오인해 총탄이 날아오지는 않나 걱정이 되는 정도였다.
잘 알려진 대로 낸시 데이비스(결혼 후 낸시 레이건)는 미국 동부의 명문 여대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영화계에 입문해 한때는 20살 연상의 클라크 게이블 등 많은 배우와 데이트를 했지만, 결국은 9년의 결혼 경력이 있는 이혼남 로널드 레이건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내가 로널드 레이건이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영문잡지에서였다. 존 웨인이란 유명한 서부 영화 배우가 타계했을 때, 추모의 글을 그 잡지에 기고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하는 등 나름 정계 중진이었다.
레이건은 구두수선을 하는 화란계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Eureka 대학을 졸업하고 스포츠 방송 아나운서를 하다 할리우드에 진출하지만, 끝내 유명 1급 배우는 되지 못한 듯하다.
아무튼, 대부분 배우자가 그렇듯이 레이건이 좌절할 때마다 낸시 여사가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자로서는 이런 '위안과 용기를 주는 천사가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운이 아닐까 싶다. 배우자(spouse)든 파트너든 말이다.
지금은 비록 만년 과장이지만, 대기업에서 억대 연봉에 부장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왔었지만,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 등으로 이직하지 못했다고 하면 상당수 사람은 그런 제의 사실조차도 의혹의 눈초리로 보기 마련이다. 이런 지밀한 내용은 배우자/파트너 외에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배우자와 연령차이가 클수록 성공의 척도가 되어 속칭 트로피 와이프 (trophy wife)니 트로피 허즈밴드를 부러워하는 세태지만 성공한 사람보다는 also-ran이 99%인 세상에서는 전장에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better half가 더욱 절실한 세상이 되었다.
첫댓글 전장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배우자나 파트너가 있다는 건 남들의 평판과 관계없이 참으로 행복이 충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
반려자! 나보다 더 나은 반쪽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 그 기품 있던 낸시 레이건 여사가 가셨군요!
그분의 그윽한 눈매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