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총림 지허 스님 동안거 해제 법어
태고총림 선암사 선원장 지허 스님이 2월 2일 계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를 발표했다.
지허 스님은 법어에서 “진정한 결제는 생사해탈을 마음먹을 때 이미 한 것이고, 우리의 진정한 해제는 확철대오의 그 날이 해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확연한 조사관의 타파가 있을 때까지 해제 결제에 구애말고 정진 또 정진하자”고 말했다.
지허 스님은 또 지난해 말 입적한 서옹 스님의 열반송을 예로 들며 “서옹 스님께서는 열반송에까지 후학에게 대자비를 베풀어서 스님 자신이 얼마든지 티끌 없는 허공과 그림자마저 없는 명경지수일 수 있지만 이 시대를 사는 벽안 납자 중에 일부러 누가 있는가 싶어 살짝 티끌을 묻혀 두고 그림자를 지게 했을 것”이라면서 “만약 누가 이를 알아보고 제일구(第一句)를 이른다면 서옹 스님께서는 운문암에 그토록 오래 눈 밝은 사람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오직 네 한 사람이 왔구나 하시고 지금이라도 희색만면하실 것”이라며 끊임없는 수행을 강조했다.
다음은 지허 스님의 해제 법어 전문이다.
계미년 동안거 해제 법문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칠전선원 원장 지허 대선사
이 주장자라는 한 물건이 十方三世(시방삼세)와 諸佛祖師(제불조사)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日月을 산산이 부수었습니다. 大衆(대중)은 아시겠습니까?
누가 十方三世를 다시 건설하고 諸佛祖師를 다시 모신 뒤 日月을 다시 밝히겠습니까?
(良久 후에)
이 山僧(산승)이 이를 터이니 大衆(대중)이 점검해 보십시오.
이 물건은 어디로부터 왔는고
옛과 지금을 머금어 하늘 밖이로다
일어서면 한 물건도 없고
누우면 모든 것을 다 나타낸다
본래 오고 감이 없거니
어찌 일어나고 눕고가 있겠는가
바람은 남쪽 언덕 매화에 불고
눈발은 북쪽 능선 샘물을 두드리네
이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주장자라는 물건은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 없는 물건입니다.
위음왕불 이래로 이 날 이때까지 써 왔으나 다 쓰지 못하여 처음 같고 시방세계가 다 무너져 흔적이 없어도 오롯하고 의젓하여 오히려 새롭습니다. 바르고 올곧아서 뭐라 이름 붙일 길 없어 주장자라 했습니다.
주(手+主)자는 버틸 주자요, 杖자는 막대기 장자이며 子는 아들자 자인데, 子는 孔子 또는 孟子 같은 분에게 붙이는 존칭이니 주장자를 다시 말하면 버티는 막대기 선생님이 됩니다.
이 막대기는 아무라도 집고 다니는 막대기가 아니라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소식을 아는 선지식이 아니면 쓰지 못하는 물건입니다.
알지 못하면 한낱 하잘 때 없는 작대기에 지나지 않고, 알면 보기만 해도 무섭고 두려워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쓸 줄 알면 제불조사와 천하성현이 모두 이 주장자에서 나왔고 아승지겁과 일월성신과 천지미물까지도 모두 이 주장자가 창조하였습니다.
쓸 줄 모르면 안으로 아상(我相)을 기르고 밖으로 탐진치의 독을 번지게 하여 삼악도로 속행하는 비수와 같습니다.
이 주장자라는 신기한 물건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고 하고 법상에 올라 산승이 안으로 비쳐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주장자는 옛과 지금을 한 입에 담아 하늘의 안과 밖을 다 머금었습니다. 일어서면 티끌 하나 없고 누우면 삼라만상과 일월성신과 천지의 미물 모두 개개이 부처가 되어 활활자재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기 그지 없는 이 주장자도 이 山僧이 살펴보니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는 것이나 또한 일어서면 한 물건도 없고 누우면 천지만물이 모두 나타난다고 함이 어디에 있는고? 오직 이 山僧은 염염히 그침이 없이 무릎 아래를 되돌아 비쳐 볼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의 겨울은 몹시 추웠습니다. 70 년이래 가장 추웠다고 했지만 그 추위의 바람은 남쪽 언덕에 언젠가 필 매화나무에 불고 있고 눈발은 선방 뒷산 아래 옛 샘물의 수면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山僧의 삼동결제 석 달 동안의 살림살이가 이 뿐입니다. 시회대중들 여러분은 잘 보셨을 것입니다.
오늘의 해제대중도 삼동결제 동안 두문불출하고 선방에 들어 앉아 생사를 걸어두고 참선하였지요.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에게 다 같이 스스로 알게 모르게 향상이 있었을 줄 믿습니다. 그 향상이 어떠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확연한 조사관의 타파가 있을 때까지 해제 결제에 구애말고 정진 또 정진합시다. 우리의 진정한 결제는 생사해탈을 마음 먹을 때 이미 결제를 했고 우리의 진정한 해제는 확철대오의 그 날이 해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안거동안 몇 분의 노스님네가 열반에 드셨습니다. 어떤 스님은 말없이 가셨고 어떤 노스님은 열반송을 남기시기도 했습니다. 이 몸둥이가 한 번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은 범부나 성현이 다르지 않고 중생과 부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수많은 수행자들은 이 몸둥이 나고 죽는 문제를 제외하고 그 이전의 근본을 얻음으로써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의 실증에 도달하려 정진하였습니다. 도달한 분은 도달했을 때 자연히 오도송을 했고 열반함에 열반송을 했습니다.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중노릇을 했고 무슨 벼슬을 하고는 수행자의 올바른 이력은 아닙니다. 이는 이 몸둥이 살아온 이력은 될지언정 깨달음의 이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행자의 이력은 오도송과 열반송이 있을 뿐입니다. 수행자에 따라 오도를 했을지라도 오도와 열반의 경지에 아무 말이 없는 분도 있습니다.
지난 겨울 전라도 백양사 고불총림의 방장 어르신께서 열반에 드시며 열반송을 남기셨습니다. 수행자들은 이 열반송을 보고 서옹 큰스님의 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옹 큰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승속 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서옹 큰스님의 제도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옹 큰스님의 어디를 보고 서옹 큰스님을 어떻게 친견했냐는 것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그 사람의 수행면목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서옹 큰스님의 겉모습을 보고 서옹 스님이라 하고, 어떤 분은 서옹 큰스님의 말씀 듣고 서옹 스님이라 하고, 어떤 분은 서옹 큰스님의 도를 보고 서옹 스님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서옹 스님의 열반송을 보고 다시 한 번 서옹 스님을 뵙도록 합시다.
운문암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없고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한 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이나 고요하고
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내네
이가 서옹 큰스님의 열반송입니다.
여기서 수행자들은 각기 자기대로 받아드리는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잘 되었다거나 못 되었다거나 잘 되지도 못되지 않았다거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로서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서옹 큰스님을 그냥 봐 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큰스님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수행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사구게로 분명 밝히셨습니다. 나의 음성을 듣거나 모양을 보고 부처라 하면 삿된 길을 가는 사람이라 하셨고, 운문 스님께서는 부처가 뭐냐고 어떤 사람이 물으니 마른 똥막대기라 하고, 또 석가부처가 태어날 때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홀로 높다 하셨다니 만약 그 때 내가 이를 보았다면 한 방망이 때려 죽여 개나 배불리 먹게 하여 천하가 태평하게 했을 것이라 한 것은 모두 이러한 제불조사의 도리입니다.
우리 한 번 서옹 큰스님의 열반송 도리를 다시 한 번 살펴서 우리 후학으로 하여 불편함이 없이 서옹 큰스님을 편안히 모십시다. 서옹 큰스님은 운문암 이르는 사람은 없는데 백학 한 마리가 천년고요를 날아가니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냈더라
참으로 청정하고 상쾌하기 허공과 같고 명경지수와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옹 큰스님은 이 시대에 단 한 분 뿐인 선지식이요 털어도 먼지 한 점 없는 청정율사입니다. 내외명철이란 말 그대로 도와 생애가 오직 맑고 밝은 어른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허공에도 티가 있고 명경지수에도 그림자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雲門日永無人至에는 無자에 티와 그림자가 있고
猶有殘春半落花에는 有자에 티와 그림자가 있으며
細細松風送紫霞에는 送자에 티가 뭍이었고 그림자가 있습니다.
참으로 없다면 없는 것이 아니요, 참으로 있다면 있는 것이 아니며 참으로 보낸다면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서옹 큰스님께서 최후 열반송에까지 후학에게 대자비를 베풀어서 큰스님은 얼마든지 티끌 없는 허공과 그림자마저 없는 명경지수일 수 있지만 이 시대를 사는 벽안 납자 중에 일부러 누가 있는가 싶어 살짝 티끌을 묻혀 두고 그림자를 지게 했을 것입니다.
만약 누가 이를 알아보고 털어주고 지워주는 제일구(第一句)를 이른다면 서옹 큰스님께서는 운문암에 그토록 오래 목 메여 눈 밝은 사람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오직 네 한 사람이 왔구나 하시고 지금이라도 희색만면(喜色滿面) 하실 것입니다.
다시 서옹 큰스님을 기리면서 큰스님의 오도송을 우리 모두 한 번 되새기면서 동안거 해제 법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