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대반역—죄인의 본성 (찬 295)
1. 가데스에서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40년의 광야 유랑과 모든 성인의 죽음이 선언되자, 사람들 중에서 구체적인 반역의 태도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15장의 은혜로운 말씀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다수는 모세에 대항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기로 작정하였다. 주동자 고라는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에 속한 자로, 아론이나 모세와는 사촌 지간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실제 장자 지파인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 형제, 그리고 온이 반역을 주도하였다. 레위 지파로서 자기 사촌들의 지도력에 대한 불만과 자기도 제사장과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고라의 교만함으로부터 시작된 반역은 자신들이 실질적인 장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다단과 아비람의 교만과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회중에서 뽑힌 이스라엘의 지휘관 250명이 이들을 따라 모세를 거스렸으니 이것은 대규모 반란이었다.
2. 반역자들의 주장과 논지는 ‘너희가(모세와 아론) 분수에 지나도다..회중이 다 각각 거룩한데..’ 라는 것이다(3).
모세와 아론이 권력을 남용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로서 오히려 권력을 남용하고 분수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두번째 주장은 ‘우리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3). 그들은 사실 자신들이 거룩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속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자기들이 회중 편에 서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숨은 동기는 없으며 악한 동기는 더더욱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게다가 대중의 편에서 볼 때 그들의 말은 아주 가치있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었다. 오늘날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오해와 오용이 목사무용론이나 목사의 강도권과 설교의 약화를 초래한 것과 비슷하다. 또 하나 모세와 아론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너희는 교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인다’고 말했다(3).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임명이라는 개념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고 받아들일 생각도 없다. 이런 영적 불만족은 기회를 타서 우리로 하나님께 불평하게 만든다. 내가 가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거나 빼앗아가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3. 모세는 기도했다(4).
그는 자신이 이 문제를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를 한 후에야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곧 바로 대응하는 대신 기도했다!!!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다(5~7). 그리고 먼저 반역하는 지휘관들에게 “내일 각기 향로를 가지고 회막 앞으로 다 모이라(7)”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분향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관련시켰다. 그리고 이어서 반역의 의미를 지적했다. 모세는 고라와 그 반역에 가담한 레위 자손들을 향하여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도다”라고 지적했다(8~11). 모세는 그들이 원한 것은 제사장 직분이었다고 그들의 속내를 밝히 드러냈다(10). 그들은 고상하게 백성들의 거룩함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모세의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적으로 눈이 먼 자들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4. 모세가 다단과 아비람을 오라고 하자 그들은 거부하면서 모세를 비방했다(13~14).
모세는 자기 권력과 영화에 눈이 멀어 백성들에 대해서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지도자라는 식이다. 온유한 모세는 ‘심히 노하여’ 기도했다. 여기서도 모세는 분노하였지만 막바로 그들에게 대응하는 대신 기도했다(15)!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께 토로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 문앞에 나타났다(19). 여기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반역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에 속한 모든 자들이 땅 속에 삼키운 바 되고(32~33), 향로를 들었던 반역의 지도자들 250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소멸하는 불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대반역은 결말지어졌다(35).
5. 이 심판은 모든 이스라엘 회중과 오늘의 성도들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회중들은 이것을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튿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고 정죄하며 지속적으로 반역을 행했다(41).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평이 어떻게 고라, 다단과 아비람의 불평과 반역에 연결되는지 깨닫지 못하였다.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42).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이들을 멸하고자 하셨다. 다시 모세와 아론은 엎드렸다(45).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 백성 가운데 이미 염병이 시작된 것을 본 모세는 급히 아론에게 향로를 취하여 백성에게 가서 속죄하라고 명한다(46). 아론의 속죄는 짐승의 피가 없는 속죄였다(47~48). 이것은 아론 자신이 어떻게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이다. 죽음과 삶 사이에 스스로 서서 자기 백성을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이다.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쳤다는 것은 놀라운 표현이다(48). 말하자면, 아론 자신이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자신들을 향하여 반역을 일으킨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은 자기를 부인해야만 했다. 아론은 적의에 차있는 백성 가운데로 주저하지 않고 달려갔다(47).
6.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들을 지도자로 불러 세우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부르심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바울 사도가 누누이 서신서에서 말씀하듯이 ‘분수’를 알고 그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은 신앙적 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에서 때로는 우리보다 못한 자들을 지도자로 세우심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자 하신다는 칼빈의 말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둘째로, 우리가 행하는 일이 혹시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은 아닌지 늘 생각하고 주의해야 한다(30). 백성들은 경솔하게도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를 깨닫지 못한 채,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 셋째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물론 오늘날에도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의 불이 나와서 사람들을 소멸하는 일이 당장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를 위한 경고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라. 심판이 더딜지라도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알라.
7. “하나님 아버지, 저희 안에 있는 교만함이라는 죄의 본성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과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자리로 가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자족하는 마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보다 더 옳은 자리로 가서 심판자처럼 판단하고 행하지 않으며 스스로 겸손하여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엎드리게 하시고, 자기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드러내는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