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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방의 선지자가 되는 조건
6-7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영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열방의 선지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말 잘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말이 어눌한 사람 중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 말 잘하는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밖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 입술이 둔하고 혀가 뻣뻣한 자였잖아요. 바울도 자신의 말이 시원치 않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랄 로버츠도 말더듬이었습니다. 베니 힌도 말더듬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나겸일 목사님도 말을 잘 못했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는 자에게 "구변과 지혜를 주리라." (눅21:15)라는 말씀대로 말재주를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구변과 지혜가 임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말했습니다. 어부들이 말할 때의 어부들의 말투가 있고, 어부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억양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인 공회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학문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구변과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기도를 열심히 하면 구변이 은사로 임합니다. 그리고 지혜가 은사로 임합니다. 성도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상담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면서 구변의 은사가 주어집니다. 구변의 은사가 임하면 자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압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자기를 통해서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구변과 지혜의 은사를 주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말 못하는 사람이 말 잘하는 것이 다가 아니고, 우리가 선지자로서 사역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는 성도들도 복음 전하는 자로서 필히 갖춰야 하는 것은 말 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가라는 사람에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명하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고 너무나도 하기 어려운 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가라하면 가고 하나님이 말하라고 하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의 정말 중요한 자격 요건은 말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고,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인에게 보내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셨습니다. 아합에게 보내도 가고, 또 무슨 말을 하라든지 해야 합니다. 아합 왕에게 가서 심판의 말을 전해야 했잖아요. 자기 목이 달아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오늘날 이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서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수많은 목회자들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메시지에 좁은 문, 좁은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설교에 성경 말씀만 쭉 나열해 놨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좁은 문과 좁은 길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꼭 잘못된 예언을 하거나, 이단 종교의 교주 이런 것이 아니고, 거짓 선지자도 똑같은 목사입니다. 정통 교회의 목사지만 그 메시지가 이단 사설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대한 메시지가 빠져 버렸습니다. 왜?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설교하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설교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선포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타협이 축적되어서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조차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님을 위해서' 그러지만 정말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내 교회와 내 목회와 내 영향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정말로 영혼들을 살리고 구원하고 정말로 영혼들을 천국에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이 '몇 사람이나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를까?' '몇 사람이나 내 말을 듣고 나의 협력자가 될까?' '나와 함께 모이고 나와 함께 기도할까?' 이랬다면 제대로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지자들은 "너희가 선지자 중에 핍박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행7:52) 그럴 정도로 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반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회개해야 심판과 멸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회개해야 살기 때문에, 듣기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과와 상관없이 죽더라도 진리를 전하는 것이 선자자입니다. 그것을 대다수의 현대 교회 목사들이 잃어버렸습니다. 아주 단체적으로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목사들이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선지자로 열방을 위해서 쓰임 받으려면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상은 사람의 종일 뿐,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사람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은 잘하고, 설교도, 강해 설교도 잘하고, 성경 공부도 잘하지만, 말 잘하는 것이 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말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느냐? 하나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은 불신자도, 우상 숭배자도 있지만 신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 회개가 안 되었기 때문에, 정말 신자들에게 갔느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보여주고 회개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느냐? 정말 주님께서 명하는 모든 메시지를 전하느냐? 교리화 된 규격에 맞는 메시지만 전하고, 나머지 껄끄러운 것은 다 걸러 버리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가고 멸망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은 영혼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 잘하고 설교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말을 명하든지 그대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절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보내는 자에게 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면 많은 공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하십니다. 순교까지도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그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오. 계속 보호하시고 계셨습니다. 돌로 치려고 해도 빠져나가셨잖아요. 계속, 최후의 순간까지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9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어제 설교 끝나고 진성원 목사님과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진 목사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즉흥설교를 하십니까? 그냥 강대상에 올라가서 성경 펴시고 이야기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하면 주님께서 그의 입에 손을 대시면 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내 말을 네 생각에 둔 것도 아니고 네 마음에 둔 것도 아니고 입에 두었노라.' 입을 열면 말씀이 그냥 나오는 것입니다. 꼭 그 전에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고 얘기하다 보면 말씀이 그냥 나오는 것입니다. 예언 사역자들이 예언할 때 미리 생각해 둔 것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고 그때 말씀을 주시는 대로 하잖아요. 똑같은 원리입니다. 어느 때는 말씀을 안 주실 때도 있지요. 그러면 그냥 아는 얘기를 하다가 끝냅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강하게 주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말씀을 아주 깊이 주실 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으니까, 어떤 선지자적인 사역을 할 수 있으니까 중요하다." 아니오. 단순히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하나님의 영도 함께 임하십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는 하나님의 영이 같이 오십니다. 여러분도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할 때에 레마가 임할 때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막 쏟아 부어지는 것처럼 자신에게 강하게 임하는 것을 느끼잖아요. 마찬가지로 말씀이 제게 임하면 기름부음이 제게 옵니다. 제가 일반적으로 강대상에서 설교할 때 제일 강한 기름부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어느 때냐 하면 말씀이 강력하게 임할 때입니다. 그때는 기름부음이 강력하게 옵니다. 그냥 특별한 기름부음이 없이 즉흥설교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설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강하게 임합니다. 그러면 설교가 끝난 후 사역을 할 수 있는 강력한 기름부음이 제게 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오면 성령이 오십니다. 말씀이 오면 기름부음이 옵니다.
이것을 여러분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으면서 그 말씀을 심령으로 레마로 받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강력한 기름부음이 임합니다. 꼭 설교 끝난 후에 안수 기도를 받아야만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안수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기름부음을 전이시키는 것보다 말씀 자체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기름부음을 주는 것이 더 강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을 시작할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온 것처럼,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옵니다. 그래서 말씀이 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는 것을 사모합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4:19) 제가 여러분에게 저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제가 많은 분들을 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먹을 것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기름부음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여러분 속에 기름부음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 임하고 여러분에게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을 한 번 살펴보세요. 왜냐하면 오늘 말씀을 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계시적으로 말씀하신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미 여러분에게 기름부음이 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올 때는 안 가지고 왔던 기름부음이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올 때는 안 가졌던 어떤 분량이 채워졌습니다. 영적으로 분량이 채워지고 기름부음이 채워졌습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그냥 기도할 때보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서 은혜 받고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되잖아요? 그것은 성령이 와서 그렇습니다. 기름부음이 와서 그렇습니다. 성령이 그 당시에 임하셨기 때문에 그 힘으로 기도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건성으로 듣지 말고 단순히 어떤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사역이라고 믿습니다.
지적인 설교는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영혼들이 너무 말라비틀어지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베드로가 설교한 것처럼 성령이 내려오셔야 합니다. 그것이 생수의 강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영과 마음을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런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설교자에게 말씀이 임하도록 중보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기름부음도 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부어지도록 기도하십시오. 다음으로, 여러분이 겸손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셔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단순히 성경을 배우고 말씀을 알아갈 뿐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변화가 일어나고, 영이 풍요로워지고, 영과 마음이 소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말씀 가운데 말씀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찬송드립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절대주권자가 아니고 사랑이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사랑이심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구변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하나님이 말하라 하시면 말할 수 있는 참된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어떤 개념을 붙잡기 위함이 아니고 단순히 좀 더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부어주시고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힘 있게 임하게 해주시옵소서.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단순히 개념을 나눠 주는 시간이 아니고 성령이 임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기름부음이 넘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영혼이 살아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마음이 소성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그래서 모두 변화될 뿐 아니라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각종 성령의 은사들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