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은 목마르다 지금. 지리산 칠선계곡(七仙溪谷)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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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찾아오는 가벼운 몸살감기부터 눈병, 장염,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인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바이러스와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대결은 영원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인간의 몸은 오랫동안 바이러스의 침략에 맞서 견고한 방어(면역)체계를 갖춰
왔지만,
바이러스도 면역체계에서 빈틈을 찾아 교묘히 파고드는 생존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리보핵산(RNA) 바이러스의 전형적 특징인 빠른 복제와 재빠른
숙주 이동 등 “게릴라전”을 펼치며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거듭되는 바이러스의 위협에 우리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쿠바를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체 게바라의 詩 “행복한 혁명가”전문)
우리사회는 지금 메르스와의 전쟁으로 온 사회가 혼란과 불안 속에 빠져들고 있다.
오늘 현재까지 확진환자 126명, 격리 3,680명, 사망 13명으로 나타났으며,
휴업한 유치원, 초중고교 및 대학이 2,070여 곳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증되지 않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정보 등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무분별한 정보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외국관광객들의 한국여행 취소, 학생들의 수학여행취소 등 성수기에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염병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적(敵)이며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적이기도
하다.
1831년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다.
영국 전역에서는 이듬해까지 6만 명 이상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산업화가 가속화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전염병의 전파는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최근 100년은 빠른 속도로 의학기술이 발전했지만 가장 많은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이기도 하다.
14세기 대유행한 페스트(흑사병)부터 올해 한국을 덮친 메르스까지 우리 인간은
전염병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 왔다.
포항은 거리가 멀어 산행버스 출발시간을 1시간 앞 당겼다.
경북 3경의 하나인 포항 내연산(711m)과 12폭포를 탐방하기로 되어있었다.
98번 지선버스를 타고 있는데 금광회원인 “운파”가 동천 3단지에서 탑승했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광주역광장으로 향했다.
“민들레” 총무가 메르스 때문에 회원들에게 산행권유 전화를 하기 미안하다고
한다.
요즘 메르스 때문에 지난주 무주 동업령 산행 때도 회원 참여가 저조 했었는데
오늘도 크게 기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최기사와 산행대장이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포항까지의 차량費와 하산酒로 들어 갈 돈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다.
홈플러스에서 마지막 회원이 탑승했는데 고작 24명만 참여했다.
예상적자가 30만 원 정도인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산행할 회원이 10여명이 못
되었다.
긴급 운영진회의를 열어 내연산 산행코스는 다음 달 산행일정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오늘은 근거리산행으로 바꾸자고 의견을 모았다.
산행대장과 총무가 회원들 설득에 나섰고,
계획대로 시행하라는 몇 회원들과 운영진 뜻에 동의하는 회원들로 나뉘었다.
우여곡절 끝에 함양 지리산 칠선계곡을 다녀오기로 합의를 보았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里에 있는 칠선계곡(지리산)은 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하는 곳이다.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계곡이다.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면서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沼)가 펼치는
선경(仙境)이 마천면 “의 탕”에서 천왕봉까지 장장 16㎞에 이른다고 했다.
들어가면 갈수록 골은 더욱 깊고 날카로워,
계곡은 그 험준함으로 인하여 숱한 생명들을 앗아가 "죽음의 골짜기"로 불린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칠선계곡을 등반하고 싶어 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 특별보호구 지정으로 출입이 금지된 칠선계곡을 제한적, 한시적으로 탐방예약,
가이드 제를 시행하여 칠선계곡의 아름다운 경관 및 동, 식물에 대한 해설로
국립공원의 새로운 탐방문화 조성하고 있다.
- 운영시기 : 5월~6월, 9월~10월(4개월간)
- 운영구간 : 추성주차장 -천왕봉(9.7㎞) -장터목대피소(11.4㎞) /
로터리대피소(11.7㎞)
- 참가인원 : 40명 / 1회
산행버스가 추성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되었으며 하산시간을 오후 3시로 정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계곡하류는 가뭄으로 물이 없었으며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맨몸을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하고 있다.
칠선계곡의 등반路는 마천면 추성마을에서 시작하여 천왕봉까지 약 9.4㎞로
계곡등반의 위험성 때문에 상당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었다.
이는 등반路를 벗어나서 마음 놓고 발길을 둘 곳이 없을 정도의 험난한 산세
때문이었다.
계곡 길은 계속 오르막길로 날씨는 덥고 숨이 차고 힘들었다.
계곡은 짙은 숲 사이로 멀리 보이고 시원한 물소리라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계곡 입구의 용소(龍沼)를 지나 두지마을과 옛 칠선마을의 독가村을 지나면
울창한 잡목 숲을 따라 전망 좋은 “추성 망 바위”가 나왔다.
이곳에서부터 험한 산길이 선녀탕까지 계속되었다.
선녀탕에는 일곱 선녀와 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던 일곱 선녀의 옷을 훔친 곰은
옷을 바위 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을 잘못해서 사향노루의 뿔에 걸쳐
놓아 버렸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선녀들은 옷을 입고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 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선녀탕을 지나면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옥녀 탕이 나오고,
벼랑을 오르면 비선 담이 나온다.
비선 담과 옛 목기막 터를 지나면 청춘 홀이라 불리는 굴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부터 경사가 더욱 심해지며 계곡을 상징하는 칠선폭포와 대륙폭포,
삼층 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합수(合水)골로 이어진다.
합수 골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두 갈래의 물줄기가 만나는 마 폭포가 나온다.
이 마 폭포를 지나 원시림이 울창한 등산로를 3km 오르면 천왕봉이란다.
추성을 출발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 용소에서부터 주지 터, 추성 망 바위,
선녀탕, 옥녀 탕, 비선 담까지만 산행이 허가되어 있었다.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층 폭포, 마 폭포를 거쳐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선경(仙境)의
진수는 아깝게도 볼 수 없었다.
탕(湯)과 담(潭)에는 맑은 물이 담겨있었고 작은 폭포에서는 물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러나 콸콸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계곡을 건너는 10여개의 다리가 놓여있어 계곡의 험준함을 느꼈다.
비선 담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옥녀 탕에서
발을 담그고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사람들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기도 하고 카세트를 틀어 놓고 “지르박”을
추고 있기도 했다.
금광산악회 “가자가자”와 “카라”회원은 몸이 날씬하고 아웃도어 복을 입은 폼이
광고모델 같이 보여 사진출품을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
산행은 오후 3시에 종료되었다.
산행을 마친 회원들은 계곡물에서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혔다.
벽송사(碧松寺)에 들렸다.
벽송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里 지리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경남 전통사찰(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사적기가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520년(조선: 중종15년) 벽송(碧松) 지엄(智嚴:1464∼1534)이 중창한 뒤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으며 이후 영관, 원오, 일선 등이 이곳에서 선을 배웠다고 한다.
6·25전쟁 때 불에 탔으나 바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문화재로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벽송사삼층석탑(보물: 제474호)과 목장승
2기가 전한다.
산내 암자인 서암(西庵)정사는
벽송사 주지였던 원응(元應)이 1989년부터 10여 년 간 불사(佛事)를 일으킨 곳으로
굴법당과 각종 불교조각이 눈에 띄었다.
나무 한그루, 바윗돌 하나, 조각 하나가 모두 예술품처럼 보였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사람 온다던데
부지런히 고무신도 빨고 양말도 빨고
옷 중에 제일 좋은 옷도 마름질해 입었는데 (중략)
해질녘엔 까마귀만 까옥까옥
까마귀 울면 나쁘다던데
까마귀 울면 망조들 징조라던데
내겐 까치도 울고 까마귀도 울고
까마귀 더 자주 울고 (원성의 詩 “山寺에서”에서 일부)
(2015년 6월 12일)
첫댓글 비가 와야 할 텐데,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