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온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 이색(李穡 1328~1396 호는 牧隱 시호는 文靖 고려말엽
삼은(三隱)의 한 사람, 저서로 '목은집' 55권이 전함)
(주) 잦아진 골 : 점점 잦아 없어지게 된 골짜기.
머흘에라 : 험악하구나!
<감상>
백설이란 새하얗다는 의미에서는 청초한 양심이나 옳은
길을 말하는 빛으로 비유될 수도 있다. 시조도 그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낱말의 뒤에 떠오르는 심상의 세계에 어
떤 넓이와 깊이를 펼쳐주는 능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낱말로써의 백설은 자연계에 계절을
따라 내리는 눈이거나 내려서 쌓인 눈덩이에 지나지 않는
다.
그러나, 그 낱말 뒤에는 희다는 뜻 말고도 이빨이 시릴
만큼 차면서도 더럽지 않다는 비유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무게란 이와 같은 비유의 그림자와 향기와 빛깔
의 조화가 얼마만큼 계량(計量)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 말할 수 있다면, 목은의 이 작품은 시조가 예술의 경
지를 지닐 수 있다는 하나의 표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희고 아름다운 마음을 심어주던 백설은 잦아들어 이제
그림자도 희미한 세상에 뱃심도 검은 구름이 험악하게도
서슬이 퍼렇다. 이러한 한탄스러운 세정에서 그리워지는
매화, 그것이 피어있는 꽃밭이 어디에 있는지 그립기 만
한 심정은 목은이 지니는 하나의 선비다운 고독이다.
해가 저물어 가는 고려조의 저녁놀에 외로이 서서 어
디로 갈까, 정말 갈곳이 없어 발길조차 옮길 수 없는 스
스로의 위치에 죽음의 그림자라도 엄습해 오는 듯 이와
같은 그의 거짓 없는 어두운 심정을 우리는 그대로 읽을
수 있어 좋다.
시가 '생각하는 갈대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이 시조야
말로 휴머니티와 지성의 눈짓이 너무나 아름답게 고인
하나의 호수와 같이 우리들의 목을 축여 주고도 남음이
있는 작품이다.
백설, 골, 구름, 머흘에라로 이어진 기수(起首)가 지니
는 메타퍼도 높은 경지(이를테면 직접화법이 지니는 대립
을 초월한 경지-휴머니티의 높은 세계)를 이뤄 주고 있지
만, 지금은 없는 매화-그것은 과거에 심었던 것이 미래에
는 피어날 바로 그 꿈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그 매화가 미래라 하지 않아도 장소가 다른 어느 곳에
서 필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그 장소에의 그리움,
그것은 영원한 꿈으로 가는 하나의 입구(入口)가 아닐까.
첫댓글 백설이 덮여있어도 곧 매화는 필터이고 내사랑도 찾아 들겠지요?~~**
신실로 바라는 마음에는 불가능이 없다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