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溫柔(온유)하고 謙遜(겸손)하신 예수님처럼 살고 있는가?
"나(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온유(溫柔)는 영어로 Meekness이다. 온유(溫柔)는 히브리어로 ≪עֲנׇוׇה, nawah≫이다. 온유(溫柔)는 헬라어로 ≪πραυτης, prautes≫이다.
온유는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다는 것을 아는 겸허한 마음이다. 겸허한 까닭에, 온유는 친절한 사람을 일컫는다.
✔ 온유는 원래, 비천하고 억압된, 노예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서 다시 전의(戰義)되어, 자신을 하나님의 비천한 종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유는, 이웃 사람들에 대하여 진노를 한다든가, 교만한 생각을 품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다.
✔ 따라서 온유는, 겸손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그렇다고 온유는, 유약하거나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구약의 스가랴 선지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유하신 분으로 규정을 하고 있다(슥 9:9).
✔ 그러나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의 성격이나 노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다(마 11:29).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신, 온유한 그리스도가 되기 때문이다(마 21:5).
바올도 온유를, 누구보다도 그리스도 자신이, 그 역사(일)에 의해서 보여주신, 신앙의 인격적인 특질이라고 했다(고후 10:1, 빌 21:8).
그러므로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주어지는 은사로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의 하나이다(갈 5:22).
✔ 온유는 겸허과 관용과 인내와 사랑 등과 함께, 이미 당시의 헬레니즘 세계의 덕목이었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언제나끊임없이 추구해야할, 영적인 삶의 목표였다(엡 4:2).
이처럼 온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모든 사람에 대하여, 취해야 할 태도였다(갈 6:1). 온유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신앙인들에게 요청되었다(약 1:21).
✔ 모세는 인류 역사상, 몇 안되는 뛰어난 지도자로 꼽힌다. 모세는 억압을 받던 노예들을, 당시 가장 강대한 나라였던, 이집트에서 해방을 시켰다.
노예들에게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마침내는 새로운 땅인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데 성공을 했다.
✔ 모세는 실로 탁월한 군사 전략가며, 정치가며, 종교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러한 모세를, 성경은 단 한 줄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 물이 가장 낮은 바다에 이르러, 무한대의 지평선이 열리고, 대양의 깊이와 힘을 얻는 것처럼, 사람은 온유함에 이르러야, 존재의 지고한 힘을 얻게 된다.
✔ 믿음이란 불가능한 것을, 무작정 가능하다고 믿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 겸손한 마음의 기도
▪제가 남보다 부유하다고 생각될 때에, 진짜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높다고 생각될 때에, 진짜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들보다 지혜롭다고 생각될 때에, 진짜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선하다고 생각될 때에, 진짜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의롭다고 할 때에, 진짜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세계 각국에서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온유는 게으름이 아니다. 온유는 진리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관망만 하는 것이 아니다.
✔ 서부 아프리카의 모레 족은, 온유한 사람을 가리켜서, "그늘진 마음의 소유자" 라고 부른다. 맹렬한 햇볕에 노출되지 않고, 이웃에 서늘함을 제공한다는 뜻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 케냐의 킵시키 족은, 온유를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이익에 민감하기 때문에, 행동이 민첩하다. 그러나 타인의 희망과 소원에 관심을 두면, 행동은 차분해 진다.
✔ 카바라 족은, 온유를 "어린이의 속 사람을 가진 것" 이라고 부른다. 온유는 겸손의 선물이요, 교만은 죄와 독선의 자식이다.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25:9)
✔ 온유한 자는, 자기 마음을 깨뜨리는 자이다. 온유한 자는,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고, 그 감정을 다스려서 오직 하나님 말씀에 반응할 줄 안다.
모세가 바로, 온유한 사람이었다(민 12:3). 모세는 자기를 대적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감정과 기분대로, 욱~하고 반응을 하지 않았다.
✔ 모세는 대적하고 비방하는 말을 들으면, 즉시로 땅에 엎드렸다. 모세의 전공은, 하나님 앞에 납작하게 엎드리는 포복(匍匐)이었다.
✔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학교에서 깨어짐(brokenness)의 과목을 배운다. 온유한 자는,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배우고자 한다.
온유와 겸손은, 쌍둥이 형제이다. 온유와 겸손은, 새의 두 날개이다. 온유와 겸손은 사촌지간이다. 온유와 겸손은, 항상 서로 함께한다.
✔ 온유와 겸손은,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사닥다리의 첫 번째 발판이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와 겸손의 모델이시다(마 11:29).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학교에서 순종(obedience)을 배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신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간다.
온유와 겸손과 순종은, 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영적인 지도력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온유와 겸손과 순종은, 언제나 함께하는 삼총사이다.
하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은밀하고 신비한 비밀을 가르쳐 주신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도록 한다.
하나님은 온유와 겸손한 사람들에게, 판단력과 분별력 통찰력을 주신다. 올바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 모세와 세례 요한과 바울은, 광야에서 온유함을 배웠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말씀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온유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과, 순종하는 사람에게, 지혜와 명철과 분별력과 판단력을 주신다.
✔ 온유와 겸손한 자의 표본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종일토록 묵상하기를 바란다. 바라 보기를 바란다.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예수 그리스도)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
✔ 예수님은 죽을 때에도, 입을 열지 않는다. 예수님은 죽을 때에도, 반항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죽을 때에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저 잠잠할 뿐이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납작하게 엎드리는, 낮은 포복이 전공자였다. 모세는 태산과 같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서 엎드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
성도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성도는 온유와 겸손과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숨겨 놓으신, 금은 보물을 캐어 내는, 영적인 기쁨을 누려야 한다.
✔ 성도들이 날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면, 매사와 만사와 범사에 형통함을 주신다.
🔥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살았던 일본의 국회의장 가다이카
✔ 예수님처럼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낮추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섬긴, 일본의 "가다이카" 국회의장에 대한 스토리이다.
✔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인 가다이카가,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때에 가장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그는 불만을 토로하고 반발을 했다.
수많은 죄수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가? 그러던 어느 날, 감방에서 요한복음 13장 4~5절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手巾)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弟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手巾)으로, 씻기기를 시작(始作)하여".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발은 우리의 몸 중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다. 나 같은 죄인이, 화장실 청소를 못 할 것이 없다.
그는 화장실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수들의 발을 닦아 주기로 결심을 했다.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죄수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감옥에서 가장 밑바닥의 일을 했다.
✔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던 가다이카는, 형기를 마치고 출옥을 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다. 마침내 일본의 제 12대 국회의장이 되었다.
✔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도, 아주 조그만 "고오치 교회"에 출석을 했다. 주일마다 교회의 현관에 서서, 들어오는 교인들 신발을 받아서, 신발장에 넣는 일을 했다.
가다이카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제일 먼저 신발장 앞으로 나아가서, 모든 신도들의 신발을 꺼내어 주는 일을 했다.
어느 주일날이다. 교만하게 거드럼을 피우는, 어떤 낯선 군인 장교가, 그 교회에 출석을 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처음으로 예배에 참석한 그 장교는,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신발장 앞에서 큰소리를 질렀다. "내 신발 어디 갔어?"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 가다이카는 겸손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교님의 신발은, 높아신 분의 신발이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보관해 두었습니다"라고 했다. 그 장교는 나중에, 가다이카가가 국회의장이라는 것을 알고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 가다이카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에서,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예수님처럼 봉사를 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의 국회의장이 되는 보상을 받았다.
예수님은 마음을 비우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심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셨다.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하는, 강도의 자리까지 낮아 지셨다.
✔ 예수님은 사람으로 낮아 지셨다. 심지어 종으로 낮아 지셨다. 또한 가장 비천한 종아로 낮아 지셨가. 최후에는 사형수의 자리까지 낮아 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