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때마다 나는 듣네.
누군가 ‘시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순간 멈칫하게 된다. 가슴속에서 잔잔한 바람이 일면서 갑자기 슬퍼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삿된 마음이 없는 순수 그 자체의 결정체. 그리움을 아픔을 슬픔을 사랑을 이별을 눈물을 고운체로 걸러내고 걸러낸 가장 깨끗한 감정이 아닐까? 나만의 시에 관한 생각이다. 그러다가도 또 다른 생각에 빠져들면 그것도 마음에 들어오고 저것도 들어오고 시는 시인마다 각자의 색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시란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수많은 줄임표를 보내는 비밀서신 같기도 하다’라는 말에 한참을 머물렀다.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은밀한 끄덕임처럼.
책 한 권을 들고 자동차 카페에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다림이다. 빠르면 30분이고 늦으면 한두 시간이다. 시원한 물과 책과 휴대전화가 있으니 기다림보다는 '홀로의 즐거움'을 즐기는 시간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 책꽂이에서 책을 고르는데 ‘저 여기 있어요.’하면서 손짓하는 친구가 있었다.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고두현 선생님 책이다. 가끔 사랑이 고플 때나 시가 고플 때 비타민처럼 먹는 책이다. 그래 오늘은 시와 사랑에 빠져보는 거다.
자동차 카페에는 나 혼자뿐이다. 음악은 쇼팽의 녹턴으로 골랐다. 에어컨 소리가 신경에 쓰여서 온도를 높이고 의자를 뒤로 밀어서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었다. 아파트 공원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만들었다. 초록 그늘이 깊은 숲속 자동차 카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책을 펼쳐 들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대, 이제 잠시 멈춰 시를 만나야 할 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색다른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즐거움이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멈출 때마다 나는 듣네’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명구를 필사하다가 이 대목에서 한참을 머물렀다는 작가의 마음이 나에게로 오롯이 전해졌다. 소름이 돋았다. 책장을 열자마자 나는 책장을 다시 덮고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필요한 부분은 ‘달 훔치기’라고 이름을 붙여준 詩주머니에 보물처럼 꼭꼭 숨겼다.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함에 대해서 작가가 쓴 것을 꼼꼼하게 ‘달 훔치기’ 주머니에 담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탕처럼 손에 쥐여주려고 말이다. 첫 번째는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리듬(운율)의 즐거움이다. 둘째는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시각적 회화적 이미지다. 셋째는 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다. 넷째는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감성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공감각적 상상력이다. 주머니에 옮겨놓고서 또 눈을 감는다. 음악이 너무도 지금 분위기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 토머스 하디의 <내가 라이로네스로 떠났을 때>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했느냐고요?> 몇 편의 아름다운 시를 감상했다. 그중에서 세라 티즈데일의 <아말피의 밤 노래> 시를 감상하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핑곗김에 말이다.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울렁거려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옳거니, 하면서 책을 덮고 훌쩍거렸다.
아말피이의 밤
-세라 티즈네일
별들이 빛나는 하늘에게 물었네
내 사랑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하늘은 내게 침묵으로 대답했네
위로부터의 침묵으로
어두워진 바다에서 물었네
저 아래 어부들이 지나다니는 바다에게
바다는 내게 침묵으로 대답했네
아래로부터의 침묵으로
나는 울음을 줄 수 있고
또한 노래로 줄 수 있는데
하지만 어떻게 침묵을 줄 수 있을까
나의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
<아말피>는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의 그림 같은 바닷가 마을이라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신들의 산책’로 불리는 해안 길은 정말로 하늘빛을 닮았다고 한다.
‘어떻게 줄 수 있을까 나의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서 아팠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이유를 알려고도 안 했다. 세라 티즈테일 그녀의 삶은 고독했지만 시는 이처럼 아름답고 섬세했다.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진하게 선팅이 된 창문 밖에서 서 있다. 창문을 내리고 ‘사랑해’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말피 바닷가 마을의 자동차 카페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책에 소개된 시를 읽으면서 시공의 경계를 떠나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생의 순간들을 간접 체험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 가슴 뛰는 시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작가는 가슴으로 말하고 있다. - 2022년 7월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