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겨울산행
황홀한 눈꽃의 향연
봄․여름․가을에 피는 꽃들을 보고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감탄한다. 그런데 겨울에 피는 눈꽃은 다른 계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가을 찬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입었던 옷들을 낙엽으로 턴다. 앙상한 몸체와 가지 만 남긴 채 겨울옷을 기다린다. 하얀 눈이 내리면 나무들은 하늘에서 내려준 소복을 입고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워낸다. 겨울에 피는 눈꽃, 그건 백의를 입은 천상의 여인처럼 우리에게 설렘으로 다가온다. 특히 1,000미터 이상의 고산능선에서 피는 ‘상고대’ 눈꽃은 황홀할 만큼 우리를 취하게 한다.
소백산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 경계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이름이 소백이라 작은 산이 아닌가 하는 선입관이 들기도 하겠지만 소백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최고봉인 비로봉(1,439m)을 비롯해서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연화봉(1,383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등 수많은 영봉들이 이어져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아름다운 골짜기와 완만한 산등성이, 울창한 숲 등이 뛰어난 경치를 이루어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겨울에는 비로봉 주변과 능선에 차가운 북서풍을 받아 생긴 상고대눈꽃이 장관을 이룬다. 상고대는 해발 1,000m 이상되는 지대에 낮은 구름이 산에 걸치면서 지나갈 때 나뭇가지나 바위 등에 수분이 응결되어 얼어붙는 현상이다. 상고대는 바람의 강약과 수분의 양에 따라 그 모양도 여러형태로 달라진다.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들머리 기준으로 어의곡코스, 천동코스, 죽령코스, 희방사코스, 삼가동코스, 초암사코스, 도솔봉코스 등 여러 코스가 있는데, 겨울설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삼가동-비로봉 정상-제1연화봉-연화봉(천문대)-희방사-희방주차장 코스를 권하고 싶다.
삼가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호젓한 시멘트길이 이어지고 비로사 입구에 이른다. 비로사 입구에서 조금 더 가면 달밭골 갈림길을 만다. 이곳에서부터 왼쪽 오르는 길을 따라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며 약 2시간 정도 오르면 눈꽃터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에서 등산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온다.
조금 더 오르면 멀리 비로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고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얀 비로봉은 마치 눈덮인 일본 후지산 정상을 연상케 한다.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니 파란 하늘과 하얀 비로봉 능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하얀 눈꽃나무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그대로 계절을 멈추게 하고 싶을 정도로 황홀경에 취하게 된다.
비로봉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눈꽃밭이 더욱 깊어지고 온통 하얀 설경이 무릉도원 속의 신선이 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샘터 주변에 이르면 그 느낌이 1차 절정에 이른다. 겨울산행의 맛이 바로 이것이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온다. 카메라의 셔터가 쉴 틈이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 사진에 담고싶은 설경들이다.
눈꽃터널을 조금 더 오르면 시야가 트이면서 비로봉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 아래에 계단이 보인다. 오른 쪽은 국망봉 방향. 능선을 덮고 있는 눈밭이 마치 하얀 코키리등 같다. 눈앞의 상고대나무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로 다가온다.
드디어 비로봉 정상(1,439 미터) 도착, 삼가 들머리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5.5km, 약 3시간 10분이 걸렸다. 이 코스가 비로봉에 오르는 최단코스이다. 충북 단양방향에서 오를 경우에는 어의곡에서 오르는 코스가 편도 5.1km, 2시간 30분 정도로 최단코스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몇 분도 그냥 서 있기가 어렵다. 소백산 정상은 칼바람으로 유명하다. 카메라를 꺼내기도 힘들 정도이다. 서둘러 사진 몇장 만 찍고 대피소방향으로 향한다. 대피소 직전에는 주목군락지가 있다. 수령 500여 년 된 주목 3,4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24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마가목, 백당나무, 벚나무 등도 그 희귀성과 생태적 가치가 높아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대피소에서 잠시 행동식과 함께 휴식을 취한 후 연화봉 방향으로 향한다. 능선을 따라 조금 가면 숲이 나오고 천동코스로 갈라지는 이정표도 보인다. 능선숲속의 눈꽃터널과 상고대가 여전히 황홀하다. 능선 중간의 바위봉우리도 꽁꽁 얼어있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쓴 미이라와 흡사하다.
눈 만 겨우 보이게 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전부 가린 채 걷는 산우들의 모습이 마치 히말라야 원정대같다. 제1연화봉이 가까워 오면서 숲길이 자주 나온다. 나무에 핀 상고대가 영락없이 하얀 산호초밭이다.
제1연화봉 정상(1,394 미터)에 도착. 비로봉에서 제1연화봉까지 약 1시간 소요됐다.
제1연화봉에서 바라다 본 연화봉능선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멀리 오른 쪽에 천문대가 조그맣게 보인다. 제1연화봉을 조금 내려오면 계단중간에 전망대가 있다. 우리가 지나온 비로봉능선을 볼 수 있다.
다시 숲길을 지나 드디어 연화봉(1,383 미터)에 도착. 오른 쪽에 천문대건물이 보인다. 천문대 방향으로 가면 죽령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비로봉에서 연화봉까지는 약 1시간 50분 소요. 삼가동 들머리에서 비로봉 정상을 거쳐 연화봉까지 약 5시간이 걸린 셈이다.
소백산 겨울산행은 이처럼 비로봉-연화봉 간 1,300미터가 넘는 정상능선 만 2시간 가까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추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번 산행에서도 함께 한 동료산우 중 여자산우 한 분이 정상능선에서 저체온증 증상을 보여 비상연락을 취하는 등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하기도 했다.
연화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하산을 시작한다. 연화봉(천문대)에서 깔딱고개를 거쳐 희방사까지 약 1시간 반 정도. 희방사에서 다시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주차장까지 약 20분 정도의 시멘트길이다. 드디어 소백산눈꽃산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약 14.7km 거리에 소요시간은 여유있게 총 6시간 50분. 환상적인 눈꽃터널 및 설산능선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동화 속 눈꽃세상을 다녀온 기분이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