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임진강에 가서 어름지치기를 하려고 장마당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굵은 철사를 날로 삼은 썰매를 들고 나오는 아이, 조금 큰 형들은 판자에 칼날을 갈아서 고정
시킨 스케이트를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진철도 집을 나와 장터로 가려고 하는 데 멀지 않은 곳에서
사기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골목을 치고 나왔다.
“그래!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고 나 죽자! 애새끼들 다 죽이고 너 죽고 나 죽자!”
수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버지와 엄마가 자주 싸운다고 하는 말은 수한이가 집으로 와서 저녁을 함께 먹을
때 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싸우지는 않았었다. 한 번씩 부부 싸움이 있을 때면
수한이는 진철의 집에 와서 밥을 먹곤 했는데, 오늘은 유달리 싸움의 기세가 남다르게 드러난 것이다.
“이 여편네가,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래, 이 새끼야. 니가 애들 애비냐? 애비노릇 똑바로 해라!”
수한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을 휘저으니 자연이 마을 여자들이 수한이의 집 앞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여자들이 웅성웅성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부부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저런데?”
“왜 저러기는, 매년 겨울만 되면 부부 싸움이 이틀 걸러 한 번씩인걸”
“지겹지도 않나?”
“우리가 보기에도 지겨운데 수한엄마는 오죽하겠어.”
“보나마나 어제 크게 잃은 모양이구먼”
“그렇겠지, 수한엄마가 저럴 정도면,”
“집을 날렸을까?”
“그래도 설마, 집을 날렸을라구. 노름빚이나 잔뜩 졌겠지.”
하지만 여자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전 전곡의 노름판에 어울렸던 수한 아버지는 첫 끗발이 좋아서
제법 땄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잃기 시작했고 판이 끝날 무렵에는 집문서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은 수한 엄마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밤새도록 노름판에 다니는 남편이
밉기는 했지만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 노름판의 생리이기에 크게 사고 치지 않는 한 그저 말싸움
정도로 끝내주곤 했었던 것인데 일의 발단은 어제 낮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한 아버지는 어제도 집문서를 찾으려고 노름판에 나갔고, 나름 빚돈이라도 내보려고 애를 썼지만 집
문서가 날아갔다는 소문이 그 판에 나돌면서 노름빚을 내기도 쉽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집문서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돌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수한 엄마가 구멍 난 양말이라도 기우려고 옆집 여자가 놀러가자는
것도 사양하고 아랫목에 앉아서 바늘귀를 꿰고 있을 때 마당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수한
엄마는 두런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방문을 열고 보니 두 남자가 마당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살펴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구세요?”
하며 목소리를 먼저 마당으로 내보내고 엉덩이를 들며 옆으로 돌아간 치마 말기를 바르게 잡으며 문 밖
마루로 발을 내딛었다.
“여기가 박씨 집이 맞지요?”
한 남자가 묻는데 그 느낌에 수한 엄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안는다.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났다는 생각이
퍼뜩 올라온다.
“그런데요. 무슨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