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세(羅世)는 본래 원(元) 사람이다. 공민왕(恭愍王) 때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홍건적(紅巾賊)을 쳐서 패주시켜 2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여러 번 자리를 옮겨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었다.
〈나세가〉 교동만호(喬桐萬戶)가 되었을 때 왜적이 침략하였는데 나세가 도망하여 〈서울로〉 돌아오니 왕이 노하여 순위부(巡衛府)에 가두게 하였다. 우왕(禑王) 초에 전라도상원수 겸도안무사(全羅道上元帥 兼都安撫使)가 되었을 때 왜선 50여 척이 웅연(熊淵)에 와서 정박하고서 적현(狄峴)을 넘어 부녕현(扶寧縣)을 노략질하고 동진교(東津橋)를 부수어 우리 군사가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나세는 변안렬(邊安烈)과 조사민(趙思敏) 등과 밤에 다리를 놓고 군사를 나누어 왜적을 공격하였다. 적의 보병과 기마 1,000여명이 행안산(幸安山)에 올랐을 때 우리 군사가 사방에서 공격하니 적은 도망하여 무너져서 마침내 크게 이길 수 있었다.
곧이어 〈나세는〉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다. 이 때 왜적이 강화를 침략하였는데 나세가 글을 올려 말하기를, “신이 문장에 재주가 있어서 나라를 빛나게 할 수는 없으며, 또한 고관의 후예로 좋은 음식을 먹어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항상 죽음으로써 만분의 일이라도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였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강화(江華)로 들어가 왜적을 물리치고자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우왕이 그의 뜻을 장하게 여겨 내구마(內廐馬) 2필을 하사하고 10필을 더 하사하였으며, 군사를 나누어 휘하에 두게 하였으며, 나세에게 조사민·이원계(李元桂)·강영(康永)·박수년(朴壽年) 등과 함께 왜적을 치게 하였다. 왜선 50척이 다시 강화를 침략하여 강화부사(江華府使) 김인귀(金仁貴)를 죽이고 1,000여 명을 붙잡아갔다. 또한 수원(水原)을 노략질하여 나세에게 원수 양백연(楊伯淵)과 전함 50척을 이끌고 〈왜적을〉 치게 하였다. 나세가 강화의 경계를 지나는데 부인 한 사람이 물가에 숨어 한 집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적의 첩자(諜者)가 저곳에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였다. 나세가 재빨리 가서 포위하고 불을 질러 적 29명을 죽였다.
왜선 45척이 신주(信州)·옹진(瓮津)·문화(文化) 등의 현(縣)을 침략하자 나세가 원수(元帥) 조인벽(趙仁璧)·심덕부(沈德符) 등과 함께 〈왜적을〉 쳐서 여러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여 조정에 보고하기를, “적의 세력은 매우 강하지만 우리 군사는 피로하고 허약하여 적을 이길 수 없으니, 군대를 보내 도와주소서.”라고 하였다. 왜적이 또한 신주·문화·안악(安岳)·봉주(鳳州)를 침략하니 나세가 심덕부·양백익(梁伯益)·박보로(朴普老)와 함께 적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나세는〉 연안군(延安君)으로 책봉되었으며 해도원수(海道元帥)가 되었다.
왜적이 연안부를 침략하니 나세는 김해군(金海君) 김유(金庾)와 함께 전함 50여척으로 가서 무찔렀다. 또한 김유와 함께 용강현(龍岡縣) 목관포(木串浦)에서 왜적을 공격하여 왜선 2척을 빼앗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심덕부·최무선(崔茂宣) 등과 함께 전함 100척으로 왜적을 추격하였는데, 이때 적선 500척이 진포(鎭浦) 입구로 들어와 정박하여 군사를 나누어 지키면서 해안으로 올라와 주군(州郡)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왜적이〉 노략질을 자행하니 산과 들에 시체가 뒤덮었으며 그들의 배로 곡식을 실어 날랐는데 쌀을 흘린 것이 1척 높이가 되었다. 나세 등이 진포에 이르러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이용하여 그들의 배를 불살랐는데 연기와 불길이 하늘을 뒤덮었으며 배를 지키는 적이 거의 타죽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자 또한 많았다. 나세 등이 진무(鎭撫)를 보내어 승첩(勝捷)을 바치니 우왕이 기뻐하며 진무에게 각각 은 50냥을 하사하였으며 백관이 축하하였다. 돌아와 잡희를 크게 열어 환영하였으며 나세 등에게 금을 각각 50냥씩 하사하고 비장(裨將) 정룡(鄭龍)·윤송(尹松)·최칠석(崔七夕) 등에게는 은을 각각 50냥씩 하사하였다.
이후에 〈나세가〉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제수되었는데 왜구가 축산도(丑山島)를 노략질하자 우왕이 나세에게 가서 공격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나세가 즉시 출발하지 않자, 우왕이 노하여 광주옥(廣州獄)에 가두었다가, 얼마 후에 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