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회상
우기를 맞아 며칠째 궂은비가 주룩주룩 숲속에 내리고 있던
퀴논 복쪽의 쭝탄산 중간 쯤 어느 봉우리에 부대는 택씨피(TCP)라는 야전 상황실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전쟁은 저절로 휴전이었고, 우리는 저놈의 비가 언제나 그칠까 하고 정글사이로 야속한 하늘만 처다보면서 게으른 하루를 할 일 없이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가끔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별로 쓰잘데 없는 잡음만 빼면 전쟁터라고는 하나 총소리 한 방 들리지 않는,
세상은 온통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 뿐인 어쩌면 시끄럼 속의 적막과도 같은 그런 밤낮이 하염없었던가 싶다.
그러다가 비오는 날이 길어지기라도하면 헬기가 뜰 수 없기때문에 식량을 비롯한 보급품이 모두 바닥나
우리는 구덩이에 고인 흙탕 물을 스피아깡으로 퍼다가 크로로칼키를 타서 마실 수밖에 없었고, 먹다 버린 씨레이션 깡통을 다시 주섬주섬 줏어다가 애지중지 까먹으면서 보급품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었다.
어찌 그 뿐이랴
월남이 아무리 아열대 지방이라고는 하지만 우기에 비가 계속되면 천막 안까지 스며드는 습기로 전투복은 이미 다 젖어버리고 철모와 뼈까지 다 눅눅해진 느낌에 오들오들 떨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다 써버린 무전기 받데리를 합선시켜 놓으면 한참동안은 제법 뜨듯한 한 것을 온돌처럼 깔고 앉아 견디기도 했었다.
그때 새파란 중위였던 나는 판쵸우의를 둘러쓰고 질퍽거리는 군화에 불어터진 발로 경계초소를 돌아보고는,
월남 땅 그 비좁은 천막안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깔아놓은 에어메트레스 위에 벌떡 누워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던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지난 일이지만
보급품은 언제나 공급되나, 우중에 베트공의 기습은 없을까 하는 현실적 걱정에서 오는 긴장감 보다는
인간이 이놈의 전쟁은 도대체 왜 해야하며 우리는 남의 나라에 와서 무엇 때문에 죽어가야하는가,,,,
나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또 공산주의란 역사와 인류에게 과연 어떤 것이란 말인가,,,,,,,,,,,,
그런 거창한하고 가당치않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가
귀국 할 날짜나 세어보며 향수에 젖어 부모님보다는 앞동네 그 깎쟁이 계집애를 그리고 있었던가
미국놈 잡지에 나오는 그래머의 나체 사진을 감추고 숲속에 돌아서 자위라도 한번 해볼까 하고 궁리를 했던가
아무 것도 말고 그저 배불리 먹고 뜨끈뜨끈한 목욕탕에 푸욱 담궈보고 잠이나 실컷 자보는 것이 당시의 소원이기라도 했던가
하도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처럼 숲속에 저렇게 바람도 없이 빗줄기가 굵어지기라도하면
그 때 가슴을 적시었던 그 빗줄기가 다시 나를 울게하고, 그 때 귀 속에 담겨졌던 이파리 소리, 물 불은 개울물 소리가 환청처럼 남아
뜸금없이 나를 서글프게하는 것은 이제와서 어인 심사이고, 어인 심술이란 말인가.
그 때 그 열대우림 고지에서 있었던, 따지고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 어쩌면 젊음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인가, 늙어져 아쉬운 추억인가 나도 모를 일이다.
오늘 우중에 임진각을 다녀와서 月 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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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과거를 회상

쉼없이 생각하시고 

글로써 표현하시는 시샵님은 역시 멋지세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 밖에 더 있겠나요.
샹송음악이 지루한 전쟁의 그 아련함을 같이 느끼게 하는군요 언제나 강박한 시간에서도 흘르고 나면 추억이 되고 아련함으로 남아서 간간히 추억이란 이름으로 가슴에 남는가 봅니다 그시절에 이런 저런 향수로 고향을 그리고 부모님을 그리워할 시샵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청춘시절에 소중한 시간들을 필름처럼 돌려놓고 싶단생각이 듭니다 너무 음악이 마음에 듣니다~~
전쟁이란 절대 해서는 않될 일이지만, 인류가 하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필연이기도 한가 봅니다.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려보게 하네. 생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날의 긴장감과 향수와 그리움의 나날들. 이제 아름다운 추억으로 채색된 우리들 인생의 한 마디를 봅니다.
이제는 모두가 추억일뿐 그 때 우리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더라고,,,
정말 그러고 보니 그건 스태그 파티였소. 남자들만이 꾸며대는 비극말이요.
허허허 이거 정말 그 시절이 멋있었다 아이가. 그래도 자유와평화라는 명분 앞에 한목숨 내던진채 쟝글을 누비던 그때 그시절 ....오오 그립다해야겠지 그때처럼 피가 끓어 오는 때가 또 없을 것이니 말알세.
자유평화 그딴 것 좋아하지 말게, 명분도 명예도 다 소용없는 짓이였는데,,,,,,,,,,,,,,,,,,,
지난 날 젊을을 불태웠던 그 시절.......삿갓 쓰고 아오자이 휘날리던 꽁가이 생각도 나고.....
그려 그 맑은 눈을 가진 꽁가이가 참말로 좋았어,,,
나의 지난 추억들을 들추어 보는것 같군요... 그래도 그때는 젊음이 함께 하고 있었는데....
그래 젊음이라는 인생의 보배를 지니고 살던 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