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장편소설 『걸어도 걸어도』(2017, 민음사)를 읽고
Apr 8. 2026
작가는 1962년 도쿄 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텔레비전맨유니언에 참가했다.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환상의 빛」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무도 모른다」로 57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걸어도 걸어도」로 51회 블루리본상 감독상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66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상을,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39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 작가소개에서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주인공 료타는 가족들과 원만한 관계가 아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료타의 담담한 어조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료타는 본가로 향하는 중이다. 결혼 허락받으러 간다. 상대는 사별했고, 11살 아들이 있다. 유카리는 어른스럽고 주인공을 긍정적으로 리드하며 가족들과 원만한 감정을 유지하도록 돕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의사를 그만둔 지 3년째다. 집 옆에는 의원이라는 간판이 그대로 걸려있다. 아버지는 항상 막내아들인 료타를 미덥지 않아 했다. 사실, 료타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가족들이 모인 이유는 료타의 죽은 형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형은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자기는 죽고 만다. 형보다 사랑을 덜 받은 료타는 밝고 활기찬 누나와는 다르게 소심한 편이다. 똑똑한 형에 밀려 비교당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료타. 아버지는 배려심이 부족하고 가사를 전혀 돌보지 않은 사람이고, 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모든 걸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형의 기일에 가족들이 모인 현재의 시점이 있고, 료타가 기억하는 추억 속으로 왔다 갔다 하는 서술 방식을 취한다. 어머니는 15년 전에 죽은 형을 놓지 못하고, 순간순간 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는 형이 구해 주고 죽은 ‘요시오’를 형의 기일마다 오도록 한다. 15년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왔는데, 다음 해에도 꼭 오도록 요구한다. 아버지는 살찌고, 직장도 변변찮은 요시오를 “저따위 한심한 녀석을 구하자고, 뭐 하러 하필이면 우리 애가……,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을.”(p114)라고 말한다. 료타는 그런 부모가 싫다.
부모는 아직도 매사에 티격태격이다.
“이런 말다툼은 지난 십오 년 동안 몇백 번이나 두 사람 사이를 오간,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갈등이었다.”(p130)
부모도 처음에는 호감이 있어서 결혼했을 것이다. 생활이, 삶이 소중한 가족에게 오히려 더 잔인할 수 있게도 되는 것 같다. 아들이 죽는 큰 아픔을 나눠 가진 부부이기에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똑같아, 부모한테는 똑같아. 미워할 상대가 없는 만큼 이쪽만 더 괴로울 뿐이지. 그 아이한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괴로운 날이 있어도 그걸로 벌받지는 않을거야……,”(p144)
형의 기일에 형이 구해 준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를 못마땅해하는 료타를 향해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형이 구해 주었으니, 형을 대신해 열심히 살라는 말도 잊지 않는 어머니를 료타는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주인공에게 크게 공감했지만, 어머니의 대사가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아프게 다가왔다. ‘요시오’의 어머니 입장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책에서는 ‘요시오’의 가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아, 그때 이랬더라면……,’이라고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나서,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때였다.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 그것이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난 뒤에 얻은 솔직한 깨달음이다.”(p178)
오래전에 영화로 먼저 보았던 책이다. 가족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각자의 아픔이 커서 다른 이의 상처를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해석되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마땅한데도 서로 자기만의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감정 교류도 어려워 관계가 메말라 가는 것 같다.
료타는 책의 서두와 끄트머리에서 말한다.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
료타는 젊은 날에,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생각을 못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려는 시점에서는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며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부모가 원했던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더 후회하고, 자립해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되었다. 뒤늦게 부모를 새롭게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생의 아이러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영화의 거장’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도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아동 방치 사건을 영화한 것이었듯 소외된 이웃들에 관심을 갖는 작가라서 호감이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는 죽은 형과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직조되며 펼쳐지는 과정에서 마치, 내 가족 같은 착각이 드는 감정과 대사, 행동을 만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 순간,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불쑥 해 버리고 나서 후회하는 장면들은 나도 언젠가 했음 직한 말과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에서 말했듯이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는 것을 새기고, 후회하지 않도록 찬찬히 생각하며 순간순간 진실되게 살아가야겠다. “걸어도 걸어도”를 “살아도 살아도”로 바꿔도 말이 될 것 같다.
한편, 책 제목인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 가수 이시다 아유미가 부른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노래는 책에서도 등장한다. 늘상, 아버지와 불화를 일삼는 어머니가 료타도 어렸을 시절에 흥얼거렸던 노래였고, 아버지와 관련 있는 노래라며 어머니가 가족들이 모여 추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음악을 들려준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아버지를 진짜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가족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ow8oZipZBf8?si=AY_E7m8t2J9Sy7_e
첫댓글 민 작가님 덕분에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 작가님의 말에 공감하네요.
이 글을 읽으면서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는 것을 새삼 떠올립니다.
“걸어도 걸어도”를 “살아도 살아도”로 바꿔도 말이 될 것 같다는 발견은 세월과 함께 얻은 지혜일 거란 생각도 하고요.
우리 삶은 먼 훗날 자신으로부터 평가 받기 때문에 선한 행동의 씨앗을 뿌려야 할 이유라는 것도요.
바쁜 시간 틈 내서 좋은 책 읽게해 줘서 고마워요.
회장님! 바쁘실텐데 꼼꼼하게 읽고 댓글 달아 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라디오에서 글쓰기나 책 이야기를 들을 때, 자주 언급이 되서 꼭 읽어야겠다 싶어서 읽었습니다. 오래 전에 영화를 보았는데 기억도 오래 되었고, 역시 책으로 접하는 것이 더 익숙해서 깊이 빠져서 읽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글밭도 풍성하게가꾸는 민작가님의 근면함에 감탄합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나누는 시간 행복합니다. 선생님께서도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