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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 경주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있는 언양은 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우리의 선조들이 살며 그 흔적을 남긴 국보285호 반구대 안각화와 국보 호 진천리 암각화가 귀중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언양,봉계의 한우는 너무 유명하죠! 그래서 언양식불고기라는 이름으로 먹거리 동네로 알려져있답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언양읍내에는 영남지방에서 가장큰 고인돌인 지석묘가 있고, 왜적방어 목적으러 쌓은 언양읍성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국립학교 언양향교도 있으니 시내구경을 빼 놓을수 없다. 언양읍내에 언양읍성, 언양지석묘인 고인돌, 언양향교를 둘러보고 불고기가 유명한 곳이니 석쇠불고기나 주먹떡갈비 맛을 보고 그냥 집에 가지 말고, 인근에있는 작천정계곡에 발을 담가 보는 재미를 가져 봐야 알찬 여행이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비구니들만의 수행처 석남사 들어가는 입구 일주문부터 본당까지 소나무사잇길이 걷기 좋은 길이다.
시간이 남으면 언양에서 경주가는 국도변에서 국보285호 반구대 암각화와 인근에있는 국보 호천전리 암각화를 둘러보며 우리선조들의 살아온 모습을 보며 하루를 알차게 즐길수있는 가까운 여행지라 생각 된다.
지석묘를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청동기시대의대표적인 무덤으로 경제력이 있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이 고인돌이라고 하죠 ! 우리나라는 고창고인돌 인천,화순고인돌등 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있어 유네스코에 등럭되어있죠. 그중 내가 사는 가까운 언양에서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것을 탁자식 또는 북방식이라 하고,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것을 개석식 또는 무지석식이라고 한다, 울산지역에서는 개석식 또는 바둑판식이 주로 나타난다고 했다..
언양 지석묘는 규모로 보아 영남일대에서 가장 큰, 바둑판식 고인돌이며, 길이 8,5m 너비 5.3m의 덮개돌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다. 6매로 된 받침돌의 크기는 2.8m ~ 3.1m 정도로 거대한 편이다.
서부리 주민들은 이 지석묘를 " 용바우 " 라 부르며,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하의 돌방 형태나 출토유물은 알수없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덮개돌이 매우 큰것이 특징이다. 이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언양지역의 정치,사회 문화등을 알수있는 중요한 자료라 여겨 진다.
언양읍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속해 있으며 읍 소재지이다. 언양이란 이름은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의 '헌'자를 '언'자으로 발음하여 따서 만든 이름이다. 본래 언양은 고려, 조선 시대에 울산 도심과는 다소 구분되는 권역을 이루어왔다.
국내에서는 매우 드문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쌓은 성이다. 언양읍성은 고려 공민왕 2년(1390년)에 토성으로서 최초로 축조되었는데 , 돌로 1,500년 연산군 6년에 처음 쌓았다. 임진왜란때 무너진 것을 광해군9년에 새로 쌓은 성이다. 그래서 언양읍성은 사적 제153호로 지정된 조선 시대의 성이라고 부른다. 조선 성종 12년(1481년)에 쓰여진《동국여지승람》에도 여전히 언양읍성이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규모는 둘레가 1489척, 높이가 8척, 우물 2개이다.
석성으로 개축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에 있는데, 연산군 5년(1500)에 현감 이담룡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때에 성의 규모가 둘레 3064척, 높이 13척, 우물 3개로 커졌다.( 동국여지긍람에는 둘레가 1489척, 높이가 8척, 우물 2개로 기록). 그러나 당시의 성은 임진왜란에 의하여 무너지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 시내버스울산시내버스 308번, 울산시내버스 318번, 울산시내버스 338번, 울산시내버스 348번, 울산시내버스 358번, 울산시내버스 368번, 울산시내버스 1703번(좌석)
언양향교를 처음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반월산 아래에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옮겨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숙종 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대성전을 지었으며, 숙종 26년(1700)에는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지었다. 지금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낮은 언덕을 등지고 평지에 지었으며,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사공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지 않고 명륜당 축과 대성전 축이 꺾여져 있다. 이는 향교를 옮겨 지을 때 대성전을 먼저 지어서 뒤에 지은 명륜당과 축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으로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와 서재, 그리고 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책·노비 등을 지급받아 운영하였지만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향교의 입구 양쪽에 조선시대에 세운 선정비들을 볼 수 있다.
울주군 언양은 지역적으로 50년전부터 유명한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었다. 그리고 봉계는 일제 시대부터 유명한 우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언얀과 봉계를 묶어 언양봉계 한우불고기 축제도 매년 10월 열고있다. 그 불고기특구로 지정된 곳이 울산과 부산의 분기점에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곳이다. 언양불고기 하면 석쇠불고기로 자리 매김한 음식이 되어 부산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가곤 한다..
언양떡갈비 !!! 그러나 떡갈비하면 누구나 알고있는 담양떡갈비 와 광주 송정떡갈비가 유명하다는 정도로 알고있지만 울군 언양의 주먹떡갈비가 담양떡갈비나 송정떡갈비에 견줄만하다고 한다.
언양 주먹떡갈비는 언양1번지 주먹떡갈비 집에서 각고의 노력끝에 만들어내어 특허 받은 떡갈비라고 한다. 언양에는 언양식 석쇠불고기가 유명하지만 주먹떡갈비 맛에 따라 올것 같지 않다. 오늘 언양불고기 특구내에 자리잡고 있는 언양1번지 주먹떡갈비 맛을 본다.
경부고속도로의 언양 인터체인지에서 2㎞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부산-경주를 잇는 국도에서 신불산(1,209m)과 간월산(1,083m) 일대에서 발원하여 상북면 등억리를 거쳐 삼남면 교동리를 흐르는 작괘천이 이루어놓은 계곡이다, 흰색과 회백색의 화강암 반석들이 작괘천의 침식작용으로 기이한 형상을 이루어, 마치 현대조형예술품의 전시장과 같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계곡 암반 위에 있는 작천정 주변의 경관은 울산지방의 제1의 절경지로 손꼽힌다 이 작천정이란 이름은, 수석이 청정 기이하여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 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 세종 20년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작천정이란 정자는 주변의 절경속에 깨끗한 물과 흰 바위가 잘 조화 되어 하나의 선경지대를 이루고 있다. 더위를 식히고 나서 이 정자에 올라 앉아 명승정경을 즐기고 있노라면, 입에서 저절로 시가 터져 나올 것만 같고, 그 아름다움을 그림에라도 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또한 가을이 되면 이곳의 만산홍엽은 타는 듯한 풍경을 이뤄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 작천정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한다. 소 재'지 : 울산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1551번지 일원이며, 연 락'처 : 052-229-8332 석남사는 불자들에게는 국내외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종립특별선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울산사람들에게는 늘 열려있는 휴식처로서 늘 푸르른 산림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을 제공하며 한겨울에는 가지산의 설경과 어울려 가람을 하얗게 덮은 눈은 우리들에게 절경을 보여줍니다. 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迦智山)동쪽 기슭,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위치한 절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입니다. 이렇게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비구니(比丘尼) 인홍 (仁弘)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먼저 대웅전, 극락전, 그 밖의 부속시설을 중수중창을 하고 다음에 종각, 침계루, 심검당 등을 신축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케 하였다. 크게 각 당우를 일신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이때부터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많은 비구니들의 정진하는곳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보물 제369호 석남사 승탑은석남사 동북쪽 언덕의 넓은 대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찍부터 석남사를 세운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불려왔다. 전체적으로 8각의 형태을 취하고 있으며, 8각의 바닥돌 위에 기단부(基壇部)와 탑신(塔身)을 놓은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받침돌은 8각으로 사자와 구름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받침돌에는 상·하·좌·우에서 안쪽을 향하여 낮게 솟은 꽃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겼고, 그 안으로 꽃모양의 띠를 둘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얇게 새겼고, 앞·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그 중 앞면에만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문의 양 옆으로 신장입상(神將立像)이 배치되어 있다. 지붕돌은 추녀가 짧고 서까래와 기왓골이 상세히 표현되었으며,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차례대로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부재로 구성되어 길쭉해 보이며, 바닥돌의 폭이 좁아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받침돌의 구름무늬나 탑신의 신장상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가운데받침돌의 안상조각에서 시대가 내려옴을 볼 수 있으나 각 부분이 완전히 보존된 아름다운 작품이 석남사 3층석탑은 821년 도읙구사가 세운 3층석탑으로 석남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재입니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는 한번 봐야하는 문화재 입니다.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의 건너 각단에 위치하고 있는 울산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진 주요 암면의 크기는 너비 약 10m 높이 약 3m이며, 좌우에서도 10여개의 암면에서 형상들이 발견되고 있다. 새겨진 형상들은 크게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도구와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특히 동물그림들은 생태적 특징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다. 바다동물로는 고래, 거북, 물개, 물새가 확인되며, 육지동물로는 사슴, 멧돼지, 호랑이, 여우, 늑대, 족제비 등이 새겨져 있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반구대암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매우 사실적인 포경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 선사시대 고래가 새겨진 유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유적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반구대암각화가 국제학계에 소개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제작연대에 대해 국내학계에서 이견이 다소 있지만 대체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초기까지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울산과 동남해안 일대의 패총유적에 포함된 동물유체 분석결과와 울산만 고(古)환경 연구 등에 따르면, 암각화 제작의 중심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 3,500년 전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052-229-6678 부산에서 가까우니 부부간이나 친구끼리 10시정도 나서서 당일치기로 울주언양 여행을 하며 하루를 즐겨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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