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갖다붙이는 것을 견강부회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어거지 논리를 갖다부쳐서
합리화시키려고 하는 것을 견강부회라고 한다.
견강부회(牽强附會)란 말 앞에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이란 수식어가 꼭 붙는다.
내밭에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말도 안되는 억지소리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견강부회는 아전인수식으로 한다.
아전인수할 욕심이 없다면 견강부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견강부회하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욕심, 자기욕심을 이루려고 견강부회를 한다.
성경말씀은 이현령비현령이다.
이리 붙이면 이리 해석이 되고, 저리 붙이면 저리 해석도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악을 철저히 진멸하라는 말씀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 될 수도 있다.
욕심을 갖고 성경을 보면 완전자기식으로 이현령비현령이 될 수 있다.
원수를 진멸하면서도 성경을 인용할 수 있고,
용서해주면서도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용어가 그렇게 아전인수식 견강부회로
쓰이는 만만한 용어 중 하나이다.
그래서,하나님의 이름이 사람을 통하여 모독을 받는 일이 실제 많이 있다.
철저히 금하고 금지하는 말씀도 있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라는 말씀도 있다.
자기식으로 보고 해석하려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교회 공동체에서 그런 코미디가 많이 나온다.
욕심을 버리면 간단하게 해석이 된다.
진리는 언제나 간단하다.
복잡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면 일단 진리는 아니다.
진리는 보편타당성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원리원칙대로 간단하게 해석을 하면 아주 편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동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보편성을 띄기 때문이다.
성경의 말씀대로 살면 보편적인 이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걸 자기식으로 억지해석을 하며 견강부회시키려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욕심이 있으면 아무리 대의명분을 갖다대어도 구차한 변명이 될 뿐이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처럼 하면서도 다 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많으면 추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추해지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털털 털고 털어버려야 한다.
놓고 놓아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참 추해진다.
견강부회하는 사람들.. 참 추한 사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참 귀한 분이지만
말년에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때문에 결국 비참하게 총맞고 죽었다.
이런저런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결국 욕심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이다.
성경에도 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장 15절 말씀이다.
욕심과 탐심때문에 아전인수식으로 견강부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안 되는 현인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주위에 그런 분들을 좀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