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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으로 13년 동안이나 투병생활을 하다가 쓴 장편소설 빙점은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 크리스찬입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독교에는 불교에서와 같은 염불이 없습니까?”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기독교에는 염불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말은 있습니다. ‘임마누엘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은 ‘부처와 함께 있다’라는 의미 인듯한데 기독교의 ‘아멘’은 ‘참으로, 진실로’라고 동의하는 말로 세계 공통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아멘’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뜻이 됩니다.
나는 오랜 요양생활 가운데 힘들고 쓸쓸해지면 곧잘 ‘임마누엘 아멘’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셔서 온전히 나를 지켜주시는 것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평안해졌다며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처음 교회에 출석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무엇입니까? '할렐루야'와 '아멘'입니다. 이 단어는 부흥집회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신앙언어이기도 합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멘이란 성경구절이 50번이나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고린도후서1: 20은 아멘의 방법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가 곧 아멘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예수님 말씀을 강조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
니.......요한복음에서만 26번이나 사용된 “진실로” 이 단어도 아멘과 같습니다. 특별한 것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 21절 아멘으로 성경이 끝을 맺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66권이 진실로 그렇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진실로 거짓이 없습니다. 이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아멘의 종교입니다.
아멘 신앙인 한분이 계시는데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함마슐트는 비행기 사고로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죽기 얼마 전 1961년 9월 17일 일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사랑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 안에 살 수 있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나를 위하여 몸 바치신 주님, 저도 주님께 예, 하고 대답하겠나이다. 아멘의 사람 함마슐트야 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아멘 신앙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아멘 아멘 예 하고 순종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일에 복을 주시고 영광 받으신 줄 믿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하고 창립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선교여행을 떠나간 후에 교회 안에 부패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바울을 배척하고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로 전도 여행 중에 고린도를 갔다 돌아 올 때에도 고린도를 들려올 계획을 잡아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바울을 음해하고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태를 관망하기 위해 고린도 방문을 보류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약속도 안 지킨다고 하며 바울을 비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인간적으로 바울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습니까?그러나 바울은 이런 와중에도 인간에 대한 불신과 부정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부정을 넘어서 긍정의 관계를 세우기 위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본문 말씀 중에 19절은 매우 중요한 영적교훈을 아멘신앙을 배우게 합니다. 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바울로 통해 복음을 받은 실라나 디모데가 전도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예만 있었다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실 때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였습니다....... 예수님이 생각이 부족해서, 혹은 자기의 생각이 없어서, 혹은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예가 아니였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한 순종을 보이신 아멘 신앙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 별명을 아십니까?.....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보면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별명대로 일생이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멘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겟세마네동산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이십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아멘으로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도 다 이루었다 마지막까지 철저한 예 순종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은 아멘입니다.
예수님의 아멘신앙을 본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나 고향을 떠나라 하나님말씀하시니까 말씀을 붙잡고 묵묵히 떠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백세에 얻은 소중한 아들을 바치라 하실 때에도 자기 생각을 철저히 내려놓고 바쳤습니다. 하나님 앞에 군소리가 없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보십시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백성을 구원하라 하나님의 명령앞에 모세는 애굽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넘실거리는 홍해를 건너갑니다. '건너가라'는 한마디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기에 마침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 앞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홍해 건너기 위해 인간의 머리로 치밀한 도하 작전을 세웠다면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명령 앞에 순종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멘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멘 하지만 아멘하고도 예라는 말속에 '아니오'하는 여운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크리스찬은 '내 주여 뜻대로'라는 찬송가의 3절은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여기 '죽든지'가 마음에 걸린다는거예요..... 그런 연약한 믿음 때문에 늘 불안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갔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그물을 정리하고 피곤한 몸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수요 베드로와 요한은 어부입니다. 목수의 말을 곧이 듣고 어부가 그물을 내릴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밤새 한 마리도 안 잡힌 물고기가 지금에 와서 잡힐 리가 있느냐고 하면서 그물을 내립니다. 못 잡을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물을 내려 보겠다는 것입니다. 일단순종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끌어올리다 말고 예수님께로 나아가 무릎을 꿇습니다.
눅 5:8....."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베드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는 죄인입니까 말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말씀하실 때 '이제는 됐다, 만선이다' 하는 생각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고, 기쁜 마음으로 그물을 내렸어야 합니다.
100% 순종했어야 하는데, 그 순종 속에 '아니오' 하는 부정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십니까?
불신앙은 신앙의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자기생각으로 포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순종하는 것 같지만 억지로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교회에 나옵니다.......하나님의 뜻을 따르자니 아까운 것이 많고 안 따르자니 꺼림칙합니다. 우리주변에 성도 아닌 이런 교인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머뭇머뭇 거리면서 세월이 다 흘러가 버립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은 아멘신앙으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이제는 순종해 나가는 것이 연습이 아닌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야합니다...... 이런 아멘 신앙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것입니다.
20-21절.....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성도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0절 하반절에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어요 그리하면 주님이 우리를 기름 부으셔요 아멘입니까?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조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했을 때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에 앞장셨던 영적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나라 바벨론에 빼앗긴 후 7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나라를 다시 찾고 해방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그런데 기쁨의 감정을 수스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했던 일이 예루살렘 성 건축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느혜미야는 냉철하게 판단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70년 동안 이방나라에 지배를 받았기에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한 영적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정 먼저 말씀이 회복 되어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말씀 없이 굶주리며 살았는가! 그래서 말씀회복이 가장 급선무다 생각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을 건축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내일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말씀부흥만이 먼저 인 것을 느혜미야는 깨달았지요
그래서 느혜이야는 당시 학사인 에스라를 초청하여 율법책(토라, 모세 5경)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당시 성경 사본이 희귀했기 때문에 개인 소장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보고 있던 율법책을 수문앞 광장에서 모여 말씀을 읽고 백성들은 들었던 것입니다.
70년 동안 성경을 듣지 못하다가 율법책을 낭독하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온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말씀의 권위 앞에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한절 한 절이 읽혀 질 때마다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며 하답했습니다. 감동적인 모습이 수문앞 광장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낭독하는데 얼마동안 했는지 아십니까? 새벽부터 오정까지-적어도 6시간 이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떠나지 않아요 에스라가 말씀을 읽어주기만 했는데 은혜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두손 들고 아멘하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 돌린 것입니다.
느혜미야 8:5-6.....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들고 아멘으로 회복 된 것입니다...... 믿음이 회복 된 것입니다. 사랑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약해진 부분들이 회복되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 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성도의 특권 아멘 신앙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언제나 예가 됨을 믿으십시오....... 이 땅위에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예가 되고 성취되었음을 믿으십시오 .......
그래서 아멘은 하나님 자녀가 갖는 고유 권한입니다....... 아멘하고 100% 순종할 때 약속대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의 입에서 ‘아멘’이 사라지면, 그 심령은 영이 죽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멘’은 영이 살아 있는 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임을 믿으십시오...... 모든 말씀에 예가 되어 ‘아멘’하시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