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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히 11:33-38절
제 목 :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일 시 : 2025. 8. 24.
히11:33-38/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성경에는 세상(피조물인 세상)이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첫 번째는 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말씀합니다. 롬8:35-39/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반복되는 두 단어가 있는데 끊는다는 단어입니다. 1) 먼저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누가란 곧 피조물인 세상과 이 세상이 할 수 있는 것들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을 의미합니다. 2) 두 번째로 39절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피조물이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해서 만들어진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강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탄 마귀 귀신은 처음에는 도와주다가 시간이 지나면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많은 무당과 점쟁이들이 처음 신내림을 받았을 때는 귀신들이 도와줍니다. 그래서 용한무당이라는 소문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버립니다. 그래서 점쟁이나 무당들이 세월이 지나면 귀신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이름없는 가난한 무당과 점쟁이가 됩니다. 신기가 없어져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2. 두 번째는 세상 그 무엇도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믿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란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 33절에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33-38절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산자들의 공적과 그들의 승리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여호수아를 위시하여 32절에서 언급된 사사들과 다윗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시대부터 시작된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정복사업은 사사 시대를 거쳐 다윗에 이르러서 최고의 절정에 달하여 그들이 차지한 영토는 이집트 국경에서부터 유브라데스강까지 확장되었습니다(왕상4:20-21). 33절은 네 종류의 믿음의 승리자들을 소개합니다.
① 그들(믿음의 사람들)은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기기도라는 단어는 정복하다 라는 뜻입니다. 유대역사가(史家) 요세푸스는 이 단어를 다윗이 팔레스틴 지역을 정복했음을 기록할 때 사용하여서 다윗이 블레셋과 모압과 수리아와 에돔을 정복했던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정복의 성공적인 인물이었지만 나라를 이긴 것이 아니라 족속(민족)을 이겼습니다.
② 의를 행하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소유한 사사들이나 여러 왕들의 의롭고 바른 통치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사무엘이 완전한 의로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삼상12:3-5, 23) 다윗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공과 의로 모든 백성에게 행하였음을 가리킵니다. 이상 언급된 사사들이나 열왕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복을 받았으며 그 결과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③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을 염두에 두고 한 표현 같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려다가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신체적으로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거기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단6:17-22). 다니엘 이외에 다윗도 양을 칠 때 사자를 물리친 일이 있었으며(삼상17:34-37), 브나야도 사자를 죽였었습니다. 그래서 대상11:22/브나야는...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죽였으며/라고 했습니다.
2) 34절에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네 종류의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①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과 함께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 온 세 명의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가리킵니다(단1:7). 그들은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 상 앞에 절하지 않는 죄목으로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눈 섭 하나 상하지 않고 그 곳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습니다(단3:23-37). 그들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단3:19-23) 앞에서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고 확실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에 타 죽는 풀무 불에 던져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②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칼날을 피한 자들로는 구약시대의 몇몇 선지자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에게서 도망하였으며(왕상19:2), 엘리사는 이세벨의 아들인 여호람에게서 구원받았고(왕하 6:31 ff.),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을 피하여 숨었습니다(렘36:19,26). 또한 다윗도 사울 왕의 칼날을 무사히 피하여 도망하였습니다(삼18:11).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예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방패가 되어주심을 강조합니다.
③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된 실례는 구약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이었지만(삿6:31) 300명의 군사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삼손(삿16:28-31)이나 히스기야 왕(왕하20장,사38장)은 연약한 중에 있다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강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에스더 역시 연약한 여자였으나 믿음으로 강하게 되어 자기동족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습니다.
④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나 사사들 그리고 다윗의 전쟁사 등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떠한 권세나 군사들이나 그들의 모든 위험을 물리칠 수 있었으며, 자신들이 바라던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3)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①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사르밧 과부(왕상17:17-24)와 수넴 여인(왕하4:18-37)의 경우를 가리킵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은 엘리야가 살려주었고, 수넴 여인의 아들은 엘리사가 살려 주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나인성 과부(눅7:11-14),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요11장), 도르가(행9:36,41)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곧 부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도 살아나는 기적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②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여인들은 자신의 자녀나 가족들을 부활로 되돌려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그들의 아들들은 다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더 좋은 부활에서 더 좋은 의 헬라어 크레이트토노스는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형용사입니다. 따라서 더 좋은 부활은 본절 상반절의 부활 즉 일시적인 부활과는 대조를 이루는 표현으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 종말론적 부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악형을 받되란 고문대나, 곤봉을 뜻하는 명사 튐파논에서 유래한 말로서 죽도록 때리다, 고문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문대위에 사람을 묶어 놓고 때려서 죽이는 형벌을 말하는 것으로 마카비서에 나오는 신앙인이었던 엘리아살이 이와 같은 형벌을 받았습니다. 또한 마카비 2서 7장 1절 이하와 4서 8장 1절 이하에서는 그 어머니와 일곱 명의 아들이 여러 가지 고문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모든 고문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즉 이들은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기 보다는 새로운 삶과 부활이 있다는 믿음의 확신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그의 의를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4) 36절에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① 어떤 학자는 마카비 전쟁 당시 시리아의 침략군들이 신앙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② 어떤 학자는 예레미야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레미야는 한때 바스훌에 의해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워지기도 하였으며, 사람들로부터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으며, 구덩이 속의 진흙에 던져지기도 하였습니다(렘38:6). 이 구절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저자는 본문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그 믿음으로 인해 수많은 핍박과 고난과 희롱을 당하였음을 강조합니다.
5) 37절에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37절은 다섯 부류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① 돌로 치는 것과 라고 했습니다.
돌로 치는 행위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던 처형방법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애굽의 유대인들이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을 때 예레미야가 그에 대해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자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쳤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라면서 탄식하셨습니다(마23:37). 예수님께서 탄식하신 내용은 여호와의 성전 뜰 안에서 돌에 맞아 죽은 선지자 스가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② 톱으로 켜는 것과 라고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즉 마른 나무상자 안에 묶인 채 톱으로 켜서 죽었습니다.
③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라고 했습니다.
다른 믿음의 사람들은 칼날을 피하기도 하였지만(34절) 또 다른 이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칼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로부터 피할 수 있었으나 그 외의 다른 예언자들은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왕상19:10). 또한 여호야김이 집권할 당시 예언자 우리야가 칼에 죽임을 당했으며(렘 26:23), 신약시대 사도 야고보도 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행12:2).
④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라고 했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라는 말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가리켜 한 말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며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한 사람들을 본 받으라고 촉구하였습니다. 클레멘트는 거기서 그들이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에스겔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엘리야는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일반적인 복장이었던(슥13:4) 털옷을 입고 다녔으며(왕하1:8) 신약시대의 세례 요한도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막1:6). 이러한 복장은 특수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언자들의 검소한 생활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언자의 삶을 요약하고 있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특별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4(Antiochus IV Epiphanes)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경건한 유대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도망하여 산이나 광야에서 짐승처럼 생활하였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6) 38절에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①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세상이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라는 뜻으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문제시 될 수 없었으며, 세상적인 부귀와 영화가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②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시106:4을 인용한 것으로 박해가 있을 때 광야나 산 혹은 굴속으로 피신하는 일은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왕상18:4,13;19:1-4,9). 저자는 이러한 인용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이 땅에서 안락함과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보상은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이란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의 믿음을 멈추거나 막을 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끓을 수가 없었던 것처럼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충성도 끊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도록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또한 죽도록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짓다가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았고,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포기하지 않았으며,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않았으며, 사도 바울이 전도하다가 지쳐서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충성과 신앙생활도 영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도, 기도도, 전도도, 봉사도 영원해야 합니다.
안나 할머니는 과부 되고 84세가 되었지만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누가복음 2:36-37/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손양원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이나 그 외에 많은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결코 세상이 그들의 믿음의 질주를 멈추거나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어서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동일한 믿음이며, 히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믿음과 동일한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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