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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쓸까 말까. 제 이야기를 어찌 풀까 생각이 많았습니다.
아직 제가 <이렇다!>고 하기엔 부족한 게 지나치게 많아요. 그래서 미루고 미뤘습니다. 미루니 석 달이 지났네요.
사실 더 미뤘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만, 내친 김에 졸필로 몇 자 적습니다.
1.
만약 제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감히 이렇게 적고 싶습니다.
“겨울에는 봄의 들길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들길이 믿어지지 않았다.”
- 김 훈, <자전거 여행>
전 제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솜에서 수련하면서 변화를 체감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제가 변할 거라는 기대나 상상 같은 거 없었어요. 그러기는커녕, 처음엔 비싸서 다닐까 말까 했는걸요. 자연히 RKC(SFG) 레벨1 인스트럭터는 물론이고, 도전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그땐 그럴 몸도 아니었죠. 지금도 뭐…
이하 경어는 생략하고 쓸게요(원래는 존댓말로 다 썼는데, 잘 읽히지 않아서…)
2.
SOM을 알게 된 건 2011년 봄 무렵. 업무시간에 딴 짓하러 들어간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다.
멍하게 스크롤하다가 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케틀벨 퀵 리절트>. 케틀벨을 처음 본 건 <SAP>이라는 사이트에서다. 실물은 본적 없고. ‘퀵’과 ‘케틀벨’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질렀다. 마감 때는 뭐라도 사야 직성이 풀리던 때였다.
<케틀벨 퀵 리절트>를 읽으면서 제법 설렜다. ‘이런(?) 사람들도 케틀벨 하니 좋아지는구나’ 싶어서. 그래도 여전히 ‘재밌어 보이네’였지, ‘할까’는 아니었다. 그러다 책날개(표지에 달려 있는)에서 SOM이 홍대 근처란 사실을 알았다. 평소 홍대에 자주 다니던 터라 ‘가까우니 가보자’ 했다. 구경만 할 셈이었다.
솜에 처음 들어섰을 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태권도장 같은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달랐다. 터프한 공간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성스럽고 정갈해서 당황했었다. 솔직히 ‘아, 비싸겠다’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냥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등록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아뇨, 잘 봤습니다’라는 말을 못해서……. 덜컥 3개월을 끊었다. 내가 어디 가서 물건을 잘 못 산다. 둘러보고 따지고 그런 걸 못한다. 특히 옷 사러 가서. 그냥 못나온다. 전형적인 상남자(-_-ㅎ). 뭐, 지금에 와서는 그래서 다행이지만.
결제하고서 다시 찬찬히 둘러보니 흥미로운 게 많았다. ‘발가락양말’(…….), 포스터, 책……. 그리고 페퍼민트 향까지. 운동하는 곳 같지 않고, 누구네 집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게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케틀벨 실물을 봤다. 더불어 실제 수업 장면도. 허리를 조금 굽히면 레고들이 즐비한 작은 창으로 수업 풍경이 보인다. 처음 갔을 때는 마침 <노브레인> 이성우씨가 스내치를 하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그때 SOM을 처음 온 사람들, 혹은 케틀벨을 배울까 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나도 한다.
“한 3개월 다니면 마스터 하겠지?”
이 생각 고쳐먹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 필요하지 않았다…….
3.
전 원래 뚱뚱하지 않습니다. 조금 통통할 뿐이… 에잇…….
나름 20대 중반까지는 까시같이 마른 남자였다. 뭐, 누구나 리즈 시절은 있다. 20대 후반, 30대 초입 무렵부터 꾸준히 쪘다. 따로 운동하는 것도 없었고, 늘 뭔가 입에 달고 살았다. 어느 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면 발뒤꿈치가 아팠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앞꿈치로만 걸었다. 족저근막염이었다. 병원에 가니 두 가지 선택 사항을 제시했다. 살 빼든지, 수술하든지. 그때 의사선생은 세 번째 선택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SOM에 다니든지.
어쨌든 살은 빼야 했다. 수술은 좀……. 체중이 93kg를 넘어설 무렵 피트니스센터를 등록했다. 사실 100kg 채우고 싶었는데……. 1년여에 걸쳐서 살을 빼긴 뺐다. 72kg까지, 20kg 넘게 뺐다. 방법이 무식했다. 대상포진 올 때까지 굶고, 걷고 뛰었다.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한다. 날씬해지긴 했는데, 건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늘 아프고,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때 그게 잘못됐다 의심하지 않았나 싶다. 미련한 놈.
4.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오른쪽 어깨로만 가방을 맸다. 중고등 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교, 심지어 어른이 돼서도. 15년 이상 카메라 장비를 한쪽으로만 짊어지고 다녔다. 척추측만이 와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
늘 무거운걸 들고 다니니 등은 자연히 굽고 움츠려져서 잘 펴지지도 않았다. 최근에 많이 고쳤다고는 하나 여전히 굽어있다. 과체중에 유연성 부족, 심폐지구력 미약, 심각한 자세 불량. 이게 처음 SOM에 왔을 때의 내 상태다.
5.
“쿵쿵 소리 나게 뒤꿈치로 걸으시면 안돼요.”(임규태 선생님)
“등 펴고 앉으세요.”(최하란 선생님)
그냥 덕후(...)에서 운동 덕후(...)로 변한 결정적 말들이다. 이후로 무릎 써서 걷는 것과 등의 중요성을 배웠고, 깨우쳤다.
케틀벨 수업 때 무릎 써서 걷는 법 배운 뒤로, 인생이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10분도 걷지 못했다. 발바닥이 아프니까. 수업을 받으면서, 또 SOM 서고의 책을 한권 두 권 읽으면서 걷는 법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어느새 맨발(비브람)로 중장거리까지 달릴 수 있게 됐다.
32kg 케틀벨을 프레스 하는 것도 하는 것이지만, 30km를 맨발(비브람)로 통증 없이(통증과 고통은 별개. 원래 달리면 고통스러워요) 달린다니, 놀라운 변화였다. 내가 하프마라톤, 울트라마라톤을 비브람 신고 도전하고, 완주(하프)하는 사람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케틀벨 배웠는데 엉겁결에 맨발 달리기를 하게 된 케이스가 바로 나다. 인생, 몰라요.
6. 지루함과 사후경직과 싸움
수련 시작했을 때 사후경직(...)에 버금가는 몸이었다. 흉곽은 들려 있고, 어깨는 솟았고, 근막은 굳었고.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몸이 이러니 케틀벨 진도가 안 나간다. 남들 스윙할 때 혼자서 데드리프트만 했다. 2~3개월. 지루할 때면 겟업도 하고 스윙도 했지만, 본질은 교정에 있었다.
등이 휘어서 펴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들였다’라고 썼지만, 이쯤에서 포기할까도 고민 했었다. 뭔가 터프한 걸 기대했는데 아니니까.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몸 균형 맞추려는 선생님들의 뜻을 몰랐다. 그나마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 요가도 많은 영향을 줬다. 호흡도 호흡이지만, 집중력이 좋아졌다. 좋아진 거다, 이게. 원래는 더 산만했다(……).
7. 제1회 RKC 서트
2011년 11월, 제1회 RKC 서트를 구경 갔다가 큰 감명을 받았다. 뭔가 두근두근하는 참가자들 기운이 내게로 왔나보다. 그래도 그때는 ‘해보고 싶다’였지, ‘나도 할 수 있다’는 절대, 네버 아니었다. 값도 비쌌고(...), 솔직히 무리라 생각했다.
8. 2012년
1년 남짓 수련하니 그나마 자세가 조금씩 잡혔다. 그래도 엉망. 다른 사람들과 견주면 여전히 불량. 그때는 몰랐지만, 이 무렵 내 몸 균형이 굉장히 느리게나마 잡히고 있었다. 내 몸이 운동 체질이 아니라 더 더뎠을 뿐, 바뀌긴 했다.
요가를 할수록, 케틀벨을 들수록 좋아졌다. 단순히 ‘좋아졌다’고 뭉뚱그렸지만, 정말 그랬다. 당장 아프지 않았다. 그전에는 늘 어딘가 아프고 불편했다. 2013년 현재까지 만 3년을 수련하면서 다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 몸 풀다 발톱 부러뜨린 적이 있구나.
9. 지름
2012년 2월, 사고를 친다. RKC 인스트럭터 레벨 1 신청. 원래는 ‘내 신용카드가 되나? 마스터만 되나?’ 하고 해본 거였는데……. 처음 생각은 그해 8월에 예정됐던 HKC를 따고, 연말에 타이요가마사지를 배우는 거였다. 그런데 덜컥…….
이때부터 마음이 급했다. 그해 1월에 스노보드 타다가 갈비뼈랑 손목을 해먹어서 치료도 해야 했다.
10. 키 173cm, 체중 86kg. 케틀벨 16kg로 프레스 5개 못함. 겟업도 16kg로 못함. 스윙은 자세 불량. 턱걸이 0개.
2012년 2월의 나다. 약 200만 원짜리 시험 신청한 것 치고는 참 초라한 상태다. 이때부터 임규태 선생님을 들들 볶았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답은 간단했다.
“‘잘’ 하셔야죠.”
ㅎㅎㅎ.... ㅠㅠㅋ
우문현답.
11.
10월 시험인데, 3월에 16kg ROP를 시작했다. 지루해도 어째, 24kg을 못 드는데. 차근차근 했다. 16kg으로 스윙부터 클린 앤 프레스, 겟업, 스내치 ……. 단 한 줄로 적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영겁의 시간이다. 어떻게 했나 싶다.
곰처럼 쑥 씹고 인내하는 시간이었다, 라고는 하나 즐거웠다. 느렸어도 몸이 조금씩 변했으니까. 요가, 열심히 들었다. 요가가 없었다면, 글쎄……. 한 번은 크게 다쳤을 것 같다.
12.
16kg ROP를 마치고, 20kg를 마치니 24kg가 눈앞이다. 하지만 진짜 큰일은 스내치, 그리고 턱걸이였다. 솔직히 턱걸이는 신경 안 썼다(아니 못썼다). 태어나서 한 번도 1개를 한 적이 없으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 스내치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써야 할 만큼 할 이야기 많다. 턱걸이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차근차근. ‘급할수록 천천히는 제왕의 좌우명이다’가 이 무렵 내 만트라였다.
13.
2012년 6월 중순에서야 비로소 24kg ROP에 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대략 120일. 여전히 스내치, 턱걸이는 0. 뭐 달리 뾰족한 게 없었다. 그냥 ‘Keep calm and a train’이 전부였다. 그렇게 장마가 지나고 있었다. 상여금이 생겨 7월 말, RKC 택티컬 풀업을 위해 전용 철봉을 주문했다. 그때까지는 방문에 바를 걸고 하는 게 전부였다. 기술 연마는 GTG가 진리라는 사실을 이때 깨우쳤다. 턱걸이 0개였던 놈이 매달리기 30초를 시작으로 어느새 1개 비슷하게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쳤다.
케틀벨은 선생님들 지도 아래 수련해서 안전했다. 자세가 흐트러져도 감독해주니 다칠 일이 없었다. 철봉은 달랐다. 사무실에서 혼자 매달려 낑낑댄 게 화근이었다. 진단은 팔꿈치 건염. 최소 2개월 이상 쉴 것. 흥, 무시. 프레스할 때도 아팠다.
14.
팔꿈치 건염을 앓으면서 차질이 생겼다. 스내치가 안 된다. 지치면 등이 휘고, 휘면 백스윙이 안 되고, 안되면 스내치가 안 되고. 최악의 반복. 9월 중간 점검까지 스내치는 40개도 못했고, 턱걸이는 여전히 0개였다. 조바심이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급할수록 천천히, 급할수록 천천히…….’
24kg ROP도 석 달이 지났는데도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계속 일정 개수에서 막혔다. 그래도 묵묵히 임규태 선생님이하 여러 선생님들 지시와 가르침만 따랐다.
15. 제2회 RKC 서트
날짜를 착각해 전날부터 숙소에서 묵었다. 이때 이야기는 뭐, 재밌었고 힘들었다. 참가자 50여 명 중에서 유일하게 턱걸이 못한 1인의 영예를 안았다.
스내치를 실패했고, 밀리터리프레스를 재시험 끝에 통과했다. 졸업 워크아웃 때는 주저앉을 뻔했다. 마크 챙 선생님께서 내가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리커맨드 어시스턴트를 하셨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위안은 안됐다. 난 내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16.
왜 내가 통과하지 못했을까. 내가 너무 약했던 거 아닌가 자책했다. 괜히 선생님들 원망도 했었다. 더 빡세게 가르쳐주시지 하면서 말이다. 유치하게.
이런 것들은 나중에 정 건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면서 풀렸다. 솔직히 그때의 나는 내 삶을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강할 때였다. 다만 시험에 통과할 만큼 수련이 덜 됐을 뿐이었다. 시험 도전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은 모르고 괜히 남에게서 이유를 찾은 셈이다.
하루 2시간, 일주일 6시간, 그 중 3시간은 요가, 3시간은 케틀벨 하면서 이만큼 해낸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됐는데, 생각이 어렸다. 엉망진창인 몸으로, 생애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키보드나 두드리던 나였다. 감히 지금까지 체육인으로 살아온 다른 도전자들과 견줬다니, 지금 생각해도 괜히 부끄럽다.
17.
어쨌든 스내치와 턱걸이 두 종목은 나를 기다렸다. 남은 시간은 85일. 이때 꼴에 배웠다고 11월 한 달을 내 멋대로 허비했다. 멍청하게 임의로 스내치에 올 인한 것. 임규태 선생님께서 짜 주신 프로그램은 젖히고서. 이게 패착이었다. 12월에서야 비로소 임규태 선생님 전략을 실천했다.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그래도 번번이 막혔다. 60개 벽을 깨면 70개가 기다렸고, 75개, 76개……. 100개라는 숫자는 로또 1등 당첨금액처럼 막연하고 요원했다. 내게 5분은 너무 길었지만, 힘 또한 너무 없었다. 어디론가 숨고 싶고 다 때려 치고 싶었더랬다.
18.
팔꿈치 건염은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턱걸이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1개에서 2개, 2개에서 3개로 착실하게 늘었다. 그 무렵 농담 삼아서 “내가 들은 턱걸이 하는 법을 책으로 내도되겠다”고 할 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0개에서 5개 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오래 매달리기 ▲인버티드 로우 ▲보조 풀업, 그리고 GTG였다. 풀업 레볼루션이나 정글짐 XT 같은 보조 도구 활용하는 것, 추천한다(간접 광고비 받고 싶습니다).
19.
2013년 1월. 여전히 스내치는 실패, 실패, 실패했다. 한 번에 80개에서 120개 정도를 주 3회 했다. 남들은 딱 두 번 하고 합격 했다던데. 평소 회복이 잘되는 편이라 생각해 조금 무리수를 뒀다. 아니나 다를까 1월 중순 이후로는 ‘까시같이 말랐던 시절’ 걸린 대상포진 냄새도 맡았다. 위험이 고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90개 벽은 못 뚫었을 거다. 일반적인 조언대로 충분히 쉬어도 봤지만, 시간만 흐르고 개수는 늘지 않아 초조했다. 그래도 계획대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1월 25일이 D-데이였는데, 실패했다. 집에 가는 길에 ‘이만큼 했으니 됐다’며 포기할 마음도 적당히 먹고 있었다. 그만큼 스내치는 정말 멘탈의 밑바닥까지 내리 꽂아줬다. 혼란스러웠지만(겉으론 태연한 척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6일, 어쨌거나 100개를 했다. 아, 턱걸이 5개도 완벽히 아슬아슬 통과했고. 아침에 코피 터질 때만해도 ‘오늘은 무리다’라고 했는데, 어리바리 하긴 했다. 100개를.
20.
지금 내 책상 책꽂이에 RKC 레벨 1 인스트럭터 자격증이 있다. 스캔 뜨려고 가져다 놓은 건데 여태 치우지 않았다. 흥, 그렇게 갖고 싶어 아등바등 했으면서… 막상 손에 쥐니 감흥이 덜하다. 누굴 가르치려고 딴 게 아니라 더 그렇고, 또 함께한 친구들이 다 통과한 게 아니라서 기쁘지도 않은 것도 있다. 그래서 시험 끝나고 한두 달은 마음 갈피를 못 잡아 방황했다. 내일 모레면 마흔인데(…).
21.
사실 후기를 적을까 말까 고민한 제일 큰 이유는 아직 내가 수련생이라서 그랬다. 수련 중이고, 수련할 것이고, 해야 할 사람이다. 때문에 누굴 가르친다는 건 어불성설. 그저 훈수나 참견 정도가 어울린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다른 선생님들이나 인스트럭터들처럼 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여전히 뱃살도 두툼하고(…) 여전히 등은 닫혀 있다. 햄스트링은 뻣뻣하며, 기술들은 더 다듬어야 한다. 티칭 스킬, 아유. 이건 말을 말자.
그래서 이 글을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다 적고 나니 좀 길긴 하네…….
22.
RKC나 SFG에 도전하실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입니다.
“SOM 선생님들을 믿으세요.”
농담 같죠? 진짜라니까요. 절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
22-1.
thanks to 는 생략.
첫댓글 일요일 아침 카톡으로 합격 소식을 전해주셨을 때의 감동이...
남자 둘이서 눈가 촉촉해져서... ...그러는거 아닙니다 흠흠
감동 하셨으면 엄지 꾸~욱 눌러주세요! ㅋㅋ
아... 좋아요.
그런데 비쥬얼이 조금 아쉬움... 사진 좀 추가해서 그림일지로 만들어 주세요
통증없는 그날을 기대하며.. 저도 그런 날이 오겠죠?ㅜㅜ
고민하고 있었는데 5월이 되기전에 얼른 질러야겠습니다.ㅋㅋ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사진 후기 기대합니다....? ^^*
저두요~사진 후기 기대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댓글이 부족해 답글했습니다.
다 읽고 다시 보니 꽤 긴 글이군요.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더욱 멋진 모습 기대하겠습니다.홧팅! (지금도 충분히 멋있으시지만 ㅋㅋ)
멋지세욧~~스내치 100개 성공했다 하셨을 때 "정말이요?"를 10x100 을 물어본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빠르네요..저도 앞으로 더 멋지실 모습에 기대해보며, 사진에 손 하나 듭니다~~ ㅎㅎ
신경써주시고 가르쳐주셔서 매번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황용중+손지영]
^^ 많이 배웁니다.
우와.. 저 지금 턱걸이 0개인데 써주신거 보고 희망얻고갑니다ㅋㅋ 열심히 수련해야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글쟁이 맞으시군요? 완전 잼나요.
글 읽다가 등허리 편 1인입니다.^^
17 . 어디론가 숨고싶었다.. 저는 고마운 핑계들 덕에 잘 숨을수있었지요오. 공감되고 목에서 뜨거운 뭔가를 꿀꺽 삼키게 하는데요오;;
SOM을 믿으세요. ㅋㅑㅇㅏ
정말 힘이 되는 글이네요. 우와~ :-)
멋찌고도 감동적인 후기다~! 이 글이 큰 가르침을 주는구나!!
멋지십니다 형님 !
잘봤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ㅋ
첨에 이성주 씨는 바르게 서면 흉곽이 딸려서 들려지고 견갑골은 어디 있지? 찾을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요추에 곡선이 없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 지금 다시 보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속으로 무척 놀랐는데 표정은 관리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브레인 이성우 씨도 마찬가지로 요추에 곡선이 전혀 없었는데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