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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은 김문수 목사 글입니다. <교단교회의 신자들에게 전도할때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종교적 관습들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관행들이 성경의 진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잘못된 관습이나 전통을 따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종교적 관습에 매인 교인입니까, 아니면 거듭난 성도입니까?
아마 교회에 다녀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아래에 열거하는 종교적 관습 중 몇 가지는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왜, 언제부터 이런 관례들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섬기는 행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의미하며(골2:23),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나 명령을 교리로 삼아 지키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마15:9).
-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는 목사님의 축도로, 그외는 주기도문 암송으로 예배를 마친다. 교회 헌법에 의하면 축복 기도는 목사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예배당에 처음 들어오면 먼저 앉아서 기도하거나 혹은 기도하는 척부터 한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에 따라서 하는 행위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도 인사를 나누기 전에 먼저 앉아서 기도부터 한다. 집 주인도 가만히 있자니 멋쩍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기도하는 척 해야 한다.
- 성경책을 엉덩이로 깔고 앉거나 그 위로 넘어다녀서는 안 된다.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책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성경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 어떤 사람은 밤에 악령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 전에 성경책을 창가에 갖다두기도 한다. 드라큘라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인데 악령이 왜 꼭 창문으로만 출입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마귀가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마4:6)
-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서인지, 장식용인지 자동차에 성경을 비치해 두는 사람들이 많다. 어차피 읽기 위한 성경책이 아니므로 대부분 뒷좌석 유리 쪽에 올려둔다. 그러다가 접촉 사고가 나면 일단 성경책을 치운다. 성경책이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고 막말을 하면서 싸우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 때문에 주님께 누를 끼칠까 염려해서일까?
-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면 무사고 운행을 위해 목사님을 모셔다가 자동차에 안수 기도를 받아야 한다. 돼지 머리와 막걸리 대신에 목사님이 등장할 뿐 주술, 기복 신앙에는 변함이 없다.
-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시키는 일에 토를 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은혜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 "은혜"란 값없이 거저 주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전해지는 뭉클한 감동이나 당회, 공동의회에 제출한 안건이 아무런 반대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것을 말한다.
-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도들을 공격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무기는 "순종이 헌물보다 낫다"라는 구절이다(삼상15:22). 이 구절은 다른 사람들을 제압하는데 있어서 거의 무적이다. 그런데 그 구절이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말씀인지, 사람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인지 직접 성경을 읽어보고 확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그 말씀을 인용하는 사람도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 만약 그분들이 진리의 말씀에 어긋난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성도들은 그들에게 권면이나 책망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일반회원(평신도)이고, 그분들은 특별회원(성직자)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지 확인하려면 벧전2:9을 읽어보면 된다. 둘째로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책망할 자격이 없다. 그분들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그들의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만 해야 한다. 이것 역시 갈6:1을 읽어보고 정말 그런지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J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드러나자 그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도 전에 "비판하지 말자, 용서하자. 간음한 다윗을 쓰신 것처럼 하나님이 앞으로 크게 쓰실 것이다"라는 논리가 먼저 나오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은 하나님의 종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므로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종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들을 섬겨야 한다. 한국 교회에는 이처럼 아들이 종을 섬기는 이상한 관습이 있다.
- 많은 목회자들은 "주의 종"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분들 중 대부분은 실제로 종으로 취급당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집사 안수식, 장로 취임식 등을 하려고 하면 최소한 8명의 목사가 필요하다. 그분들은 각각 한 사람씩 "사회, 기원, 대표기도, 성경 낭독, 설교, 축복기도, 광고, 축도" 등의 순서를 나누어 맡는다. 그리고 각각의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에게 일인당 10-20만원씩 사례금을 드려야 한다.
- 집사나 장로로 임명되려면 임직 예물이라는 명목으로 예배당에 에어콘이나 오르간을 기증하거나 수백만원씩을 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끔 어떤 목회자들은 이에 대한 근거 구절로 민수기 7장을 들기도 하는데 성막이나 성전이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 A 교회 목사님이 교회에서 지급하는 생활비 외에 용돈이 더 필요할 때에는 자기와 친분이 있는 B교회 목사님을 초청해서 헌신예배 설교나 특강을 시킨다. 그리고 재정부에 이야기해서 그분께 사례금으로 50만원 정도 넣어드리라고 한다(금액은 교회 사정에 따라 다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B교회에서 A교회 목사님을 강사로 초빙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둘이서 너무 자주 이렇게 하면 탄로나지만,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목회자 3~5명이 돌아가면서 서로를 강사로 초빙하면 거의 안 들킨다. 다른 목사님을 설교자로 초청하고 사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짜고 교회 재정으로 용돈벌이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 목회자들은 자기 교인이 이웃 동네로 이사를 가면 "다니는 교회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계속 모 교회에 다녀야 한다"며 계속 자기 교회로 나올 것을 권한다. 반대로 다른 동네에서 자기 동네로 이사 온 사람이 있으면 "신앙 생활은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서 해야 한다"며 자기 교회로 오라고 권한다.
- 청년들이 직장이나 진학 문제로 먼 도시로 이사를 하면, 예배는 그 곳 교회에서 드리되 십일조는 본 교회에 납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물론 자기 교회에 새로 나오게 된 타지역 출신 청년들에게는 이와 반대로 가르친다.
-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수확절(초실절,맥추절,칠칠절,오순절), 장막절(초막절)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이 중에서 맥추절만은 꼭 지킨다. 그들은 유월절, 초막절을 지키는 안상홍 증인회를 이단으로 규정했으면서도 맥추절만은 꼭 지키려고 한다. 다른 이유보다는 아마 추수감사절 헌금 이외에 또 한 번 감사헌금을 걷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맥추절 헌금 봉투에는 주로 "맥추절을 지키라"와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그런데 "빈 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구절은 맥추절이 아니라 유월절(무교절)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출23:15-16). 이것들은 다 그림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 실체가 아니다(골2:17).
실체인 예수님이 이미 오셨고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키셨는데 왜 아직도 사람들을 구약의 율법 하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가? 정말 그렇게 지키고 싶으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짐승을 잡아다가 레위인 제사장과 함께 지켜라. 그런데 정작 유대인들도 성전이 없고 제사장이 없어서 각종 절기들을 성경에 기록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 교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단골손님 확보 경쟁 때문에 가끔 교회에서는 좀 서운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꾸 이러면 나 교회 옮긴다"라고 협박을 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교회는 이런 협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매달 내는 헌금 액수가 상당히 많을 경우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 한국 교회에서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하기로 정했는지는 모른다. 이단 시비에 휘말릴 경우,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그대로 믿는다고 주장하면 이단 의혹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성경 말씀에 근거한 바른 교리를 믿고 전해도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안 하면 이단으로 간주된다.
- 한국 교회에서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세력이다. 교인들 숫자가 많고, 돈이 많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으면 이단이라도 아무도 안 건드린다. 모 교회는 이단으로 판명되었으나 세력이 강해지자 다른 교회 목사들이 스스로 이단 시비를 철회하고, 그 교회 목사님 앞에서 무릎꿇고 회개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 현재 세력이 좀 약하더라도 이단 정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교계에서 영향력이 큰 교회 목사를 자기 단체의 고문, 상임 이사 등으로 추대하고 꼬박꼬박 활동비를 지급하면 된다. 가끔 그런 거물급 인사를 자기 교회에 초빙해서 설교도 하게 하고, 밥도 같이 먹고 함께 사진도 찍으면 자기를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바른 교리를 가진 목사님들은 그런 제안에 응해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자기와 비슷한 이단 교리를 가지고 있는 거물 목사를 초대한다.
- 많은 한국 교인들이 의미도 잘 모르면서 주문 외우듯이 사도신경을 외운다. 사도신경 내용 중에는 일부 맞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한국 교회에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는 본래 용도 외에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첫째,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거나 악몽을 꾸거나 무서울 때에는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가르친다. 둘째, 방언을 가르친다면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고속으로 암송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혀가 굳어져서 비정상적인 발음이 나오거나 만트라(짧게 되풀이되는 종교적 진언)를 외우다가 황홀경에 빠져서 헛소리를 하면 그것을 방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바에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보다는 보다 짧고 간단한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 종종 부흥사들 중에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원래 오늘 전할 본문 말씀은 주보에 인쇄된 것처럼 성경구절 몇 장 몇 절인데, 방금 하나님께서 다른 성경구절로 이러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말을 듣고 많은 교인들은 그가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를 나누는 영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음 셋 중의 하나다.
첫째, 원래 설교할 내용이 후자이고, 주보에 있는 구절은 미끼로 던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그는 설교 준비를 전혀 안 했고, 지금 즉흥 연설을 하려고 하고 있다.
셋째,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직통 계시를 주시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정말로 그가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면 그는 지금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 침례교회 목사님들 중 대부분은 일년치 설교 계획을 미리 세워놓고 그 계획에 따라 미리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강론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런 좋은 점은 정말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 찬양 연습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거룩한 옷(찬양대 가운)을 입고 더러운 곳에 갔다며 장로님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레6:10-11). 그런데 지금이 구약시대인가? 여기가 이스라엘인가?
- 예배당 앞에 나와서 찬양을 하는데 인원이 좀 많아서 작은 강대상을 약간 뒤로 밀었는데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옮긴다며 야단을 치는 장로님도 있다. 이스라엘의 회당에서는 그 자리를 "모세의 자리(Moses' seat)"라고 하지만, 그것을 법궤라고 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
- 한국 교회에서는 주일 성수를 가르친다.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처럼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날들을 거룩한 주일과 속된 평일 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로 나누지 않는다. 왜 일주일 중에 하루만 하나님께 드리고, 엿새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탄에게 바치려고 하는가? 우리는 일주일 모두를 거룩하게 살아야하며, 그 중에서도 일요일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교제하는 일에 드려야 한다. 일요일이라는 요일 자체에 어떤 주술적인 효험이 있다거나 그 날이 본질적인 면에서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한 날이라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다.
- 교인들에게 어린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데려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애를 택하셨다면 언젠가는 불러주시겠지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칼빈주의 운명론을 열심히 가르친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교인 중 누군가가 병들었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희도 기도할께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것은 "수고하셨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God bless you."와 같이 서로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관례적 표현일 뿐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목사님이 교회에서 필요한 일을 맡아달라고 하면 "한 번 기도하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기가 모든 일을 기도로 결정하는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비쳐지기를 원할 뿐 실제로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기도는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자기의 체면도 세우고 상대방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그 제안을 잘 거절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은 많이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언제 어느 식당에서 만나자고 연락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한 번 기도해 봅시다"라고 말해놓고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리고 그 일을 놓고 기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도 응답 결과는 대부분 자기에게 편리한 쪽으로 판가름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 계속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쓴 글이지만, 이 글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꼬집고 비판하는 것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없으면 그 자리를 사람이 만든 관습과 전통이 대신 차지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가 이런 잘못된 관행과 율법적인 요소를 버리고 새롭게 변화를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필요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