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2 - 말씀을 자녀의 마음에 새기는 방법(신 6:4-9)
2026.5.10, 어버이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어버이날이나 어버이 주일을 생각하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 중의 하나가 “효(孝)”일 것이다. 오래 전에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식당에서 일할 때, 주방에서 함께 일하던 40대 후반의 주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자주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효란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목회를 하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경험적으로 깨달은 효’에 대한 가장 심플한 정의는 이것이다.
“효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그러면 어느 때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 질까? 자녀들은 넉넉한 용돈이나 맛있는 음식 또는 좋은 선물을 드릴 때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것들을 받으면 기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자녀의 형편에 따라서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앞설 수 도 있다.
사실 부모의 마음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을 느낄 때는 다른 어떤 것 보다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아주고, 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이다. 특히 믿음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까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안심하며 기뻐한다. 이것이 부모의 진짜 마음이다. 그렇기에 다른 것은 다 잘하면서도 정작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신앙생활을 멀리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부모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있는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효(孝)라는 것은 육신적인 부모와 자녀 사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나)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큰 헌금이나 거창한 일을 했을 때만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가장 기뻐하신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하나님이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는 효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새 계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쉐마(Shema)라는 불리는 이스라엘의 교육강령이자 신앙의 본질인 오늘 본문 말씀도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지난 어린이주일에는 4-5절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의 본질,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지만, 이와 함께 우리(나)의 사랑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한 진정성 있는 사랑을 받으실 때, 가장 행복해 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효(孝)이며, 예(禮)이다.
그런데 계속되어지는 6-9절 말씀은 이처럼 신앙과 교육의 본질이고, 하나님에 대한 효인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고 전수할 것인지를 말씀한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할 것이다. 다같이 6-9절 말씀을 읽어보자.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오늘 설교말씀을 위해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가장 눈에 띠게 하시고, 감동을 주신 부분은 “너는”이라는 말씀이다(“너는 마음에 새기고”,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묵상 중에 “너는”이라는 말씀이 ‘너부터’라는 표현으로 읽혀졌다. 한국어 중에 ‘너부터 잘하세요’라는 말도 있듯이 부모 자신부터(또는 교사, 먼저 믿은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라는 강력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와 함께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반복하여 가르쳐야 한다. 쉽게 말하면, 자녀들에게만 ‘잘하라’고 잔소리 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신도 “이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반복하여 배우고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심지어 잊지 않기 위해서 손목과 미간과 문설주와 바깥문에까지 시청각적으로 기록하라고 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가르치고 전수하는 방법은 ‘나 부터’, ‘반복하여’, ‘보여줌(시청각)으로’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슨 공부든지 어떤 내용이든지 계속해서 반복하면 잊지 않고, 눈에 보이면 잊지 않는다. 반대로 반복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힘쓴다. 이 말씀대로 양피지에 말씀(쉐마)을 기록한 후 가죽 박스에 담아 이마와 손목에 묶는데, 이 도구를 ‘테필린’이라고 부른다. ‘테필린’을 미간과 손목에 부착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집이든지 문지방에 말씀이 적혀있는 조그만 나무상자를 붙여 놓았는데, 이를 ‘메주자’라고 한다.
현재 세계 인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0.2%이다. 그런데 역대 노벨상 전체 수상자들 중에 유대인이 25%에 이르고, 경제학 부분에서는 무려 40%가 유대인들이다. 이러한 원인이 쉐마를 중심으로 한 교육 방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부터’와 ‘반복’ 그리고 ‘시청각’이라는 방법을 지금 우리(나)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단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는 말씀처럼, 우리들 자신이 먼저 나의 마음에, 나의 시간 속에, 나의 생각 속에 그리고 나의 생활 속에 반복하여 새겨야 한다. 이렇게 잊지 않고 새길 때, 반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 그 행동 자체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테필린과 메주자같은 시청각이 될 수 있다.
지난 주중에 사모님이 어버이날 행사를 앞두고 최정예권사님(1930년생)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권사님은 거실 한쪽에서 혼자 성경을 읽고, 중보기도하며 또 찬송을 부르는 것을 반복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 장면에 감동을 받으면서 동영상을 찍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도 반복적으로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다.
평소의 이런 모습이 ‘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아마 그때 찍힌 동영상은 자녀손들에게는 삶으로 보여주는 테필라과 메주자가 될 것이다. 이런 복음적인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과 언행을 바로함)의 모습들은 우리교회의 연세가 지긋하신 다른 성도님들도 유사하다.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효의 모습이고, 노인이 아닌 어른들의 모습이며, 구원의 방주 밑창에서 말없이 중보기도의 노를 젓는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문구나 작품을 붙여놓고, 시각적으로 잊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자신과 자녀들을 위한 또 하나의 시청각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어느 선배 목사님의 사무실에 “농심목회(農心牧會)”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 선배 목사님은 그 문구를 볼 때 마다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고 하셨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런 실례를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은혜 받고 결단한 성구, 설교내용, 또는 결심한 내용이나 각오 등). 심지어 AI시대에 맞게 날마다 자녀들과 신앙의 소통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 주님의 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후대에 가르치고 전수하자.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효이다. 그리고 쉐마가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수하는 방법은 ‘나부터’, ‘반복하여’, ‘시청각통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우리들도 나 자신부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복하여 가르치자.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시청각을 동원하자. 이를 위해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생각지 못했던 지혜를 주시고, 계기를 주실 것으로 확신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지금 신앙적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는 마음을 바꾸시기를 권면 드린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부모님과 하나님의 마음이 행복해 지는 것이 효(孝)라면, 우리가 그것을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죄지으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고 축복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