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깨달음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시간, 지금, 여기와 같은 것이 실재하지 않고 깨달음에 이를 '나'도 실재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이라는 게 어떻게 성립될 수 있습니까?
답 : 깨달음이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면,
그것은 실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깨달음이라는 상태는이미 실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상태가 확연히 실현되도록 혀용해 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신에게 모든 것을 완전히 내맡길 때 진리는 드러납니다.
감춰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에고만이 까막눈일 따름입니다.
실상은 마음 바로 너머에 있습니다.
의식은 무가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바로 모든 것이라는 진실을,
자신이 바로 존재 자체가 생겨나는 무한하고 영원한 전부임이라는 실상을
부정합니다.
거짓을 버릴 때 진실은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거짓을 버리려면 대단한 헌신과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길 때
그에 대한 응답으로 신성한 영감이 그런 것들을 제공해줍니다.
의지의 동의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문: 언제 어디서 신을 깨달을 수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수 있는지요?
답 : 신성에 이르는 문은 두 생각 사이에 존재하는 '지금'이라는 찰나적인 순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순간의 직접적인 체험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입장에서는 이런 순간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 일어남과 사라짐 사이는 ,
의식이 항상 존재하고 무한하며 영원한 실상을 깨닫도록 허용해 주는
구멍이나 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순간의 드러남은 창조로서의 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주는 신의 창조의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지금'의 '있다(is)'가 그 다음 순간의 '있었다(was)'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창조자와 창조되는 것, 주체와 객체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이자 같은 것입니다.
'새로운'이나 '낡은'이라는 단어는
'지금'이나 '그때'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관점일 뿐입니다.
우리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창조를 끊임없이 목격하는 증인들입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체험으로서의 신의 손(Hand of God)입니다.
앎은 '눈(Eye)' 혹은 증인이며 창조는 무한한 참나의 작품(handiwork)입니다.
창조가 현재진행형인 지속적인 펼쳐짐이라는 진실은
믿음, 지각, 인과관계라는 환상의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창조의 기적은 끊임없이 지속되며 불꽃이나 섬광처럼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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