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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 (Khandha-vagga)
제22주제 무더기(존재의 다발)[蘊] 상윳따 제8장 희생물(삼켜버림) 품
걸식 경(S22:80)
Piṇḍolya-sutta
1. 한 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비구 승가를 해산하신 뒤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걸식을 위해서 까삘라왓투로 들어가셨다. 까삘라왓투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오셔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큰 숲[大林]으로 가셨다. 큰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작은 웰루와 나무 아래 앉으셨다. 그때 세존께서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마음에 일어났다.
3. ‘나는 비구 승가를 해산하였다.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만일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뀔 것이다. 예를 들면 막 태어난 어린 송아지가 어미를 보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뀌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만일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뀌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그러니 내가 전에 비구 승가를 보호하였듯이 지금도 비구 승가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4.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이 마음으로 세존이 마음에 일으킨 생각을 알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서 세존의 앞에 나타났다.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해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세존을 뵙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막 태어난 어린 송아지가 어미를 보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세존을 뵙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세존을 뵙지 못하면 변질되고 바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비구 승가를 보호하셨듯이 지금도 비구 승가를 보호해 주소서.”
5.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6.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에 삼매에서 깨어나 일어나셔서 니그로다 원림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이 혼자서나 둘씩 뉘우치는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기를’이라고 신통의 행을 나투셨다. 그러자 비구들은 혼자서나 둘씩 뉘우치는 모습으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비구들이여, 걸식이라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 가장 미천한 수단이다. 세상에서 ‘그대는 손에 그릇을 들고 걸식하러 돌아다니는구나.’라는 것은 욕하는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어서 바른 목적을 위하여 이러한 걸식하는 삶을 산다. 왕에게 이끌려서도 아니고 도둑에게 이끌려서도 아니며, 빚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드러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다.”
8.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와 같이 출가하였지만 그는 아직 욕심이 많고 감각적 쾌락들에 깊이 탐닉하고 악의에 찬 마음을 가졌고 타락한 생각을 품었으며 마음 새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되지 못하며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화장터에서 사용된 나무토막이 있어 양끝은 불타고 중간은 악취가 난다면 마을에서도 그것을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숲에서도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은 그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그는 재가의 쾌락과 욕망을 버렸지만 사문 생활의 결실을 성취하지는 못하였다.”
9. “비구들이여, 세 가지 해로운 생각이 있나니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과 악의에 대한 생각과 남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디서 이러한 세 가지 해로운 생각이 남김없이 소멸되는가? 네 가지 마음 새김의 확립에 마음이 견고하게 머물거나 표상 없는 삼매를 닦을 때 그렇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표상 없는 삼매를 닦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이다. 표상 없는 삼매를 닦고 많이 수행하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10.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가 있나니 존재에 대한 견해[有見]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견해[無有見]이다.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 경우에 대해서 이렇게 숙고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내가 비난 받지 않고 취착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라고.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내가 비난 받지 않고 취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물질을 취착할 것이고 느낌을 취착할 것이고 인식을 취착할 것이고 형성을 취착할 것이고 의식을 취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길 것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11.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형성은 …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2.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1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Saṃyutta Nikāya 22
8. Khajjanīyavagga
80. Piṇḍolyasutta
Ekaṃ samayaṃ bhagavā sakkesu viharati kapilavatthusmiṃ nigrodhārāme. Atha kho bhagavā kismiñcideva pakaraṇe bhikkhusaṅghaṃ paṇāmet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kapilavatthuṃ piṇḍāya pāvisi. Kapilavatthusmi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yena mahāvanaṃ tenupasaṅkami divāvihārāya. Mahāvanaṃ ajjhogāhetvā beluvalaṭṭhikāya mūle divāvihāraṃ nisīdi.
Atha kho bhagavato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mayā kho bhikkhusaṅgho pabāḷho. Santettha bhikkhū navā acirapabbajitā adhunāgatā imaṃ dhammavinayaṃ. Tesaṃ mamaṃ apassantānaṃ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Seyyathāpi nāma vacchassa taruṇassa mātaraṃ apassantassa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evameva santettha bhikkhū navā acirapabbajitā adhunāgatā imaṃ dhammavinayaṃ tesaṃ mamaṃ apassantānaṃ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Seyyathāpi nāma bījānaṃ taruṇānaṃ udakaṃ alabhantānaṃ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evameva santettha … pe … tesaṃ mamaṃ alabhantānaṃ dassanāya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Yannūnāhaṃ yatheva mayā pubbe bhikkhusaṅgho anuggahito, evameva etarahi anuggaṇheyyaṃ bhikkhusaṅghan”ti.
Atha kho brahmā sahampati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brahmaloke antarahito bhagavato purato pāturahosi. Atha kho brahmā sahampati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 yena bhagavā tenañjaliṃ paṇāmetvā bhagavantaṃ etadavoca: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 Bhagavatā, bhante, bhikkhusaṃgho pabāḷho. Santettha bhikkhū navā acirapabbajitā adhunāgatā imaṃ dhammavinayaṃ. Tesaṃ bhagavantaṃ apassantānaṃ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Seyyathāpi nāma vacchassa taruṇassa mātaraṃ apassantassa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evameva santettha bhikkhū navā acirapabbajitā adhunāgatā imaṃ dhammavinayaṃ tesaṃ bhagavantaṃ apassantānaṃ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Seyyathāpi nāma bījānaṃ taruṇānaṃ udakaṃ alabhantānaṃ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evameva santettha bhikkhū navā acirapabbajitā adhunāgatā imaṃ dhammavinayaṃ, tesaṃ bhagavantaṃ alabhantānaṃ dassanāya siyā aññathattaṃ siyā vipariṇāmo. Abhinandatu, bhante, bhagavā bhikkhusaṃghaṃ; abhivadatu, bhante, bhagavā bhikkhusaṃghaṃ. Yatheva bhagavatā pubbe bhikkhusaṃgho anuggahito, evameva etarahi anuggaṇhātu bhikkhusaṃghan”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Atha kho brahmā sahampati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ntaradhāyi.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nigrodhārām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tathārūpaṃ iddhābhisaṅkhāraṃ abhisaṅkhāsi yathā te bhikkhū ekadvīhikāya sārajjamānarūpā yenāhaṃ tenupasaṅkameyyuṃ. Tepi bhikkhū ekadvīhikāya sārajjamānarūp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Ekamantaṃ nisinne kho te bhikkhū bhagavā etadavoca:
“Antamidaṃ, bhikkhave, jīvikānaṃ yadidaṃ piṇḍolyaṃ. Abhisāpoyaṃ, bhikkhave, lokasmiṃ piṇḍolo vicarasi pattapāṇīti. Tañca kho etaṃ, bhikkhave, kulaputtā upenti atthavasikā, atthavasaṃ paṭicca; neva rājābhinītā, na corābhinītā, na iṇaṭṭā, na bhayaṭṭā, na ājīvikāpakatā; api ca kho otiṇṇāmha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ā dukkhaparetā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Evaṃ pabbajito cāyaṃ, bhikkhave, kulaputto. So ca hoti abhijjhālu kāmesu tibbasārāgo byāpannacitto paduṭṭhamanasaṅkappo muṭṭhassati asampajāno asamāhito vibbhantacitto pākatindriyo. Seyyathāpi, bhikkhave, chavālātaṃ ubhatopadittaṃ majjhe gūthagataṃ, neva gāme kaṭṭhatthaṃ pharati, nāraññe kaṭṭhatthaṃ pharati. Tathūpamāhaṃ, bhikkhave, imaṃ puggalaṃ vadāmi gihibhogā ca parihīno, sāmaññatthañca na paripūreti.
Tayome, bhikkhave, akusalavitakkā—kāmavitakko, byāpādavitakko, vihiṃsāvitakko. Ime ca bhikkhave, tayo akusalavitakkā kva aparisesā nirujjhanti? Catūsu vā satipaṭṭhānesu suppatiṭṭhitacittassa viharato animittaṃ vā samādhiṃ bhāvayato. Yāvañcidaṃ, bhikkhave, alameva animitto samādhi bhāvetuṃ. Animitto, bhikkhave, samādhi bhāvito bahulīkato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Dvemā, bhikkhave, diṭṭhiyo—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Tatra kho,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atthi nu kho taṃ kiñci lokasmiṃ yamahaṃ upādiyamāno na vajjavā assan’ti? So evaṃ pajānāti: ‘natthi nu kho taṃ kiñci lokasmiṃ yamahaṃ upādiyamāno na vajjavā assaṃ. Ahañhi rūpaññeva upādiyamāno upādiyeyyaṃ vedanaññeva … saññaññeva … saṅkhāreyeva viññāṇaññeva upādiyamāno upādiyeyyaṃ. Tassa me assa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eyyuṃ.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assā’ti.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Anicc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Dukkh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ṃ, bhante”. “Vedanā … saññā … saṅkhārā … viññāṇaṃ … pe … tasmātiha, bhikkhave, evaṃ passaṃ …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Saṃyutta Nikāya 22
Connected Discourses on the Aggregates
80. Alms-Gatherer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mong the Sakyans at Kapilavatthu in Nigrodha’s Park.
Then the Blessed One, having dismissed the bhikkhus for a particular reason, dressed in the morning and, taking bowl and robe, entered Kapilavatthu for alms. When he had walked for alms in Kapilavatthu and had returned from the alms round, after his meal he went to the Great Wood for the day’s abiding. Having plunged into the Great Wood, he sat down at the foot of a beluva sapling for the day’s abiding.
Then, while the Blessed One was alone in seclusion, a reflection arose in his mind thus: “The Saṅgha of bhikkhus has been dismissed by me. There are bhikkhus here who are newly ordained, not long gone forth, recently come to this Dhamma and Discipline. If they do not see me there may take place in them some alteration or change. Just as when a young calf does not see its mother there may take place in it some alteration or change, so too there are bhikkhus here who are newly ordained, not long gone forth, recently come to this Dhamma and Discipline. If they do not see me there may take place in them some alteration or change. Just as when young seedlings do not get water there may take place in them some alteration or change, so too there are bhikkhus here who are newly ordained, not long gone forth, recently come to this Dhamma and Discipline. If they do not see me there may take place in them some alteration or change. Let me assist the Saṅgha of bhikkhus now just as I have assisted it in the past.”
Then Brahma Sahampati, having known with his own mind the reflection in the Blessed One’s mind, just as quickly as a strong man might extend his drawn-in arm or draw in his extended arm, disappeared from the brahma world and reappeared before the Blessed One. He arranged his upper robe over one shoulder, raised his joined hands in reverential salutation towards the Blessed One, and said to him: “So it is, Blessed One! So it is, Fortunate One! The Saṅgha of bhikkhus has been dismissed by the Blessed One. There are bhikkhus here who are newly ordained … as above, including the similes … If they do not see the Blessed One there may take place in them some alteration or change. Venerable sir, let the Blessed One take delight in the Saṅgha of bhikkhus! Let the Blessed One welcome the Saṅgha of bhikkhus! Let the Blessed One assist the Saṅgha of bhikkhus now just as he has assisted it in the past.”
The Blessed One consented by silence. Then Brahma Sahampati, having understood the Blessed One’s consent, paid homage to the Blessed One and, keeping him on his right, he disappeared right there.
Then in the evening the Blessed One emerged from seclusion and went to Nigrodha’s Park. He sat down in the appointed seat and performed such a feat of spiritual power that the bhikkhus would come to him, alone and in pairs, in a timid manner. Then those bhikkhus approached the Blessed One, alone and in pairs, in a timid manner. Having approached, they paid homage to the Blessed One and sat down to one side. The Blessed One then said to them:
“Bhikkhus, this is the lowest form of livelihood, that is, gathering alms. In the world this is a term of abuse: ‘You alms-gatherer; you roam about with a begging bowl in your hand!’ And yet, bhikkhus, clansmen intent on the good take up that way of life for a valid reason. It is not because they have been driven to it by kings that they do so, nor because they have been driven to it by thieves, nor owing to debt, nor from fear, nor to earn a livelihood. But they do so with the thought: ‘I am immersed in birth, aging, and death; in sorrow, lamentation, pain, displeasure, and despair. I am immersed in suffering, oppressed by suffering. Perhaps an ending of this entire mass of suffering might be discerned!’
“It is in such a way, bhikkhus, that this clansman has gone forth. Yet he is covetous, inflamed by lust for sensual pleasures, with a mind full of ill will, with intentions corrupted by hate, muddle-minded, lacking clear comprehension, unconcentrated, scatter-brained, loose in his sense faculties. Just as a brand from a funeral pyre, burning at both ends and smeared with excrement in the middle, cannot be used as timber either in the village or in the forest, in just such a way do I speak about this person: he has missed out on the enjoyments of a householder, yet he does not fulfil the goal of asceticism.
“There are, bhikkhus, these three kinds of unwholesome thoughts: sensual thought, thought of ill will, thought of harming. And where, bhikkhus, do these three unwholesome thoughts cease without remainder? For one who dwells with a mind well established in the four establishments of mindfulness, or for one who develops the signless concentration. This is reason enough, bhikkhus, to develop the signless concentration. When the signless concentration is developed and cultivated, bhikkhus, it is of great fruit and benefit.
“There are, bhikkhus, these two views: the view of existence and the view of extermination. Therein, bhikkhus, the instructed noble disciple reflects thus: ‘Is there anything in the world that I could cling to without being blameworthy?’ He understand thus: ‘There is nothing in the world that I could cling to without being blameworthy. For if I should cling, it is only form that I would be clinging to, only feeling … only perception … only volitional formations … only consciousness that I would be clinging to. With that clinging of mine as condition, there would be existence; with existence as condition, birth; with birth as condition, aging-and-death, sorrow, lamentation, pain, displeasure, and despair would come to be. Such would be the origin of this whole mass of suffering.’
“What do you think, bhikkhus, is form permanent or impermanent? … Is feeling … perception … volitional formations … consciousness permanent or impermanent?”—“Impermanent, venerable sir.”—“Is what is impermanent suffering or happiness?”—“Suffering, venerable sir.”—“Is what is impermanent, suffering, and subject to change fit to be regarded thus: ‘This is mine, this I am, this is my self’?”—“No, venerable sir.”
“Seeing thus … He understands: ‘… there is no more for this state of being.’”
잡아함경 제10권
272. 책제상경(責諸想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대중들 가운데 조그만 다툼이 있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시고 공양을 마치고 성을 나와 가사와 발우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엔, 안타(安陀) 숲으로 들어가 한 나무 밑에 앉아 홀로 고요히 사유하셨다.
'대중들 가운데 사소한 다툼이 있어 나는 대중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그 대중들 중에는 출가한 지 아직 오래지 않은 승랍(僧臘)이 적은 비구들이 많다. 그들은 스승을 보지 못하면 혹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근심하며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모든 비구들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져왔다. 나는 그들을 가엾이 여겨 이제 다시 돌아가 그들을 거두어 바로잡으리라.'
이 때 대범왕(大梵王)이 부처님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마치 역사(力士)가 팔을 굽혔다 펴는 아주 짧은 시간에 범천에서 사라져 부처님 앞에 나타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善逝)시여, 모든 비구들을 꾸짖으신 것은 사소한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중들 중에는 출가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승랍이 적은 비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스승을 뵙지 못하면 혹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근심하며 즐거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으로 대중들을 거두어 받아들이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지금 곧 돌아가시어 모든 비구들을 거두어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이미 마음으로 범천을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잠자코 허락하셨다. 이 때 대범천은 불세존(佛世尊)께서 잠자코 허락하신 것을 알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갑자기 사라졌다. 그 때 세존께서 대범천왕이 돌아간 지 오래지 않아 곧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오셨다. 니사단(尼師檀)을 펴고 몸을 거두어 바르게 앉아, 얼굴빛을 조금 움직여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감히 와서 뵙게 하셨다.
이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처소를 찾아가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세존의 앞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람은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게 생활해야 한다. 머리를 깎고 발우를 가지고 집집마다 걸식하며 혹 천대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렇게 생활하는 까닭은 훌륭한 이치를 구하기 위해서이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건너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모든 선남자(善男子)들아, 너희들은 왕이나 도적이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요, 빚진 사람도 아니며, 두려움 때문도 아니요, 생활이 궁해서 출가한 것도 아니다. 바로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해탈하기 위해서이니, 너희들은 이것 때문에 출가한 것이 아니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이와 같이 훌륭한 이치를 위해 출가하였는데, 어떻게 그 중에 아직도 어리석은 범부가 있어, 탐욕을 일으키고 몹시 물들어 집착하며, 성내고 사나우며, 게으르고 못나서, 바른 기억을 잃어 안정되지 못하고, 모든 감관을 어지럽게 하느냐? 비유하면 어떤 사부가 어둠에서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컴컴한 곳에서 다시 컴컴한 곳으로 들어가며, 뒷간에서 나왔다가 다시 뒷간에 떨어지고, 피로써 피를 씻으며, 모든 악(惡)을 버리고 떠났다가 도로 악을 취하는 경우와 같다. 내가 이 비유를 들어 말하한 것은 어리석은 비구도 또한 이와 같기 때문이니라.
또 비유하면, 시체를 태우는 장작은 화장터에 버려져도 나무하는 사람이 주워가지 않는 것과 같다. 내가 이 비유를 들어 말하였는데도, 어리석은 범부같은 비구는 탐욕을 일으키고 몹시 물들고 그것을 집착하며, 성내고 사나우며, 게으르고 못나서, 바른 기억을 잃어 안정되지 못하고, 모든 감관을 어지럽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지각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탐하는 지각[貪覺]·성내는 지각[?覺]·해치는 지각[害覺]이다. 이 세 가지 지각은 생각[想]에서 일어난다. 어떤 것이 생각인가? 생각에는 한량없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탐하는 생각[貪想]·성내는 생각[?想]·해치는 생각[害想]이 그것이다. 모든 착하지 않은 지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비구들아, 탐하는 생각·성내는 생각·해치는 생각과 탐하는 지각·성내는 지각·해치는 지각 및 한량없는 갖가지 착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해야 완전하게 소멸하여 다 없앨 수 있는가? 4념처(念處)에 마음을 잡아매고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머물러 닦고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이로 인해 다 소멸하고 남김없이 영원히 다할 것이다. 바로 이 법으로써 선남자와 선여인은 믿음을 내어 즐겁게 출가하여 무상삼매를 닦고 익히며,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게 되면 감로문(甘露門)에 머물고 나아가 마침내는 감로열반(甘露涅槃)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감로열반에 대해서 세 가지 소견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명(命)이 곧 몸[身]이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는 일종의 소견을 가진 이도 있고, 또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이도 있으며, 또 '색(色)이 곧 나로서 둘도 아니고 다름도 없으며 영원히 존재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다음과 같이 사유한다.
'이 세상에 취할 만하면서도 죄나 허물이 없는 법이 하나라도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뒤에, 취할 만하면서도 죄나 허물이 없는 법을 하나도 보지 못한다.
'내가 만일 색(色)에 집착하면 곧 죄와 허물이 된다. 만일 수·상·행·식을 집착하면 곧 죄와 허물이 된다.'
이렇게 알고 난 뒤에는 곧 세상에 대해서 취할만한 것이 없게 되고, 취할만한 것이 없게 되면 곧 스스로 열반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므로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응설(應說)과 소토단(小土)과
포말(泡沫)과 두 가지 무지경(無知經)과
하류(河流)와 기림(祇林)과 수(樹)와
저사(低舍)와 책제상(責諸想)에 대해 설하셨다.
雜阿含經
SA 272 (二七二) 諸想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眾中有少諍事,世尊責諸比丘故,晨朝著衣持鉢,入城乞食。食已,出,攝舉衣鉢,洗足,入安陀林,坐一樹下,獨靜思惟,作是念:「眾中有少諍事,我責諸比丘,然彼眾中多年少比丘,出家未久,不見大師,或起悔心,愁憂不樂。我已長夜於諸比丘生哀愍心,今當復還,攝取彼眾,以哀愍故。」
時,大梵王知佛心念,如力士屈伸臂頃,從梵天沒,住於佛前,而白佛言:「如是,世尊!如是,善逝!責諸比丘,以少諍事故。於彼眾中多有年少比丘,出家未久,不見大師,或起悔心,愁憂不樂。世尊長夜哀愍,攝受眾僧。善哉!世尊!願今當還攝諸比丘。」
爾時,世尊心已垂愍梵天故,默然而許。時,大梵天知佛世尊默然已許,為佛作禮,右遶三匝,忽然不現。
爾時世尊,大梵天王還去未久,即還祇樹給孤獨園。敷尼師檀,歛身正坐,表現微相,令諸比丘敢來奉見。時,諸比丘來詣佛所,懷慚愧色,前禮佛足,却坐一面。
爾時,世尊告諸比丘:「出家之人,卑下活命,剃髮持鉢,家家乞食,如被噤呪。所以然者,為求勝義故,為度生、老、病、死、憂、悲、惱、苦、究竟苦邊故。諸善男子!汝不為王賊所使、非負債人、不為恐怖、不為失命而出家,正為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汝等不為此而出家耶?」
比丘白佛:「實爾。世尊!」
佛告比丘:「汝等比丘為如是勝義而出家。云何於中猶復有一愚癡凡夫,而起貪欲,極生染著,瞋恚兇暴,懈怠下劣,失念不定,諸根迷亂?譬如士夫從闇而入闇,從冥入冥,從糞廁出復墮糞廁,以血洗血,捨離諸惡還復取惡。我說此譬,凡愚比丘亦復如是。又復譬如焚尸火[木*(暴-(日/共)+夭)],捐棄塜間,不為樵伐之所採拾。我說此譬,愚癡凡夫比丘而起貪欲,極生染著,瞋恚兇暴,懈怠下劣,失念不定,諸根散亂,亦復如是。
「比丘!有三不善覺法。何等為三?貪覺、恚覺、害覺,此三覺由想而起。云何想?想有無量種種,貪想、恚想、害想,諸不善覺從此而生。比丘!貪想、恚想、害想、貪覺、恚覺、害覺,及無量種種不善。云何究竟滅盡?於四念處繫心,住無相三昧,修習多修習,惡不善法從是而滅,無餘永盡,正以此法。
「善男子、善女人信樂出家,修習無相三昧,修習多修習已,住甘露門,乃至究竟甘露涅槃。我不說此甘露涅槃,依三見者。何等為三?有一種見如是如是說:『命則是身。』復有如是見:『命異身異。』又作是說:『色是我,無二無異,長存不變。』多聞聖弟子作是思惟:『世間頗有一法可取而無罪過者?』思惟已,都不見一法可取而無罪過者。我若取色,即有罪過;若取受、想、行、識,則有罪過。作是知已,於諸世間,則無所取,無所取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佛說此經已。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應說、小土摶 泡沫、二無知
河流、祇林、樹 低舍責、諸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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