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별처럼 빛나시길..
어머니가 틀니를 사용하지 않았다.
치과에서 몇 번 손을 봤는데 도로 묵이었다.
그 치과를 불신해 ‘믿음 치과’로 모셨다.
여 의사의 자상한 관심에 흡족한 표정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 치아 스케일링과 땜질을 했다.
어머니 어깨 통증이 도졌다.
대학병원 진료는 엄두도 못내 센트럴 병원에 알아봤다.
엠아르아이 지참을 원해 점심 먹고 보훈병원 들려 복사해 갔다.
끊어진 회전 근개를 초음파 유도 하에 주사 치료했다.
처방전 들고 약국에서 1주일 분 약을 탔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세 병원 다녔더니 하루해가 저물었다.
그래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어머니 집 밥 먹은 지가 꽤 됐다.
하루는 먼 길을 다녀왔다.
평소 목소리는 화통을 삶아 드신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는데
저녁 먹을 시간, 전화 음성에 히마리가 없었다.
어머니 집으로 가서 몸을 살폈다.
밥맛을 잃고 누워 계셨다.
비상등을 켜고 응급실로 모셨다.
영양제 맞고 혈액 검사, 엑스레이 촬영에 시티 검사를 추가시켰다.
결과는 한 시간 후 나왔다.
‘8개월 전과 비교한 폐 사진에 검정 물체가 배로 자랐네요.
조만간 내원하여 의사 소견서 받아 대학 병원 가서 정밀 진단해 보세요.’
일주일 간격을 두고 소화기내과,
호흡기 내과, 가정의학과를 차례로 들렀다.
‘선생님, 밥맛 나는 약 처방 좀 해 주세요.’
‘암 환자만 가능합니다.’
‘영양제는요?’ ‘처방할게요. 1층 주사실에서 맞으세요.’
90분을 기다리며 ‘강바람’ 시 보낸 친구에게
‘서정적인 시 정감 넘치고 따숩네.
벌교 갈대밭 지나 강바람 맞으러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병원이네..
어머니, 기력이 쇠하신 분,
밥맛 잃어 힘없는 울 엄마,
장대비 뚫고 나선 길에 쌍굴 다리 경찰이 통제,
기다린 어머니에게 급한 마음 거두고 계시라고 전화..
휠체어 트렁크에 넣고 뒷자리에 어머니 모심..
아들 밥 못 먹고 온 줄 알고 세 개의 고구마 내민 손,
분비는 병원 원무과 접수하고 발 빠르게 움직임..
멀리 주사실 침대 향해 온전한 회복 기다리며 친구에게 폰 질..’
‘마음고생 많겠네.
응급 상황을 일상에 두고 사는 친구에게 위로할 말이 없네.
내 마음도 무겁네..’
마지막 호흡기 내과 젊은 의사 앞에 섰다.
‘폐의 악성 신생물이 보여 화순 전대에서 추가 진료’
받도록 의뢰서를 써 줬다.
마음이 무너져 발걸음이 무거웠다.
가슴에 궂은 비가 내려 담양으로 가다 멈춰 뚝배기를 시켰다.
건더기는 다 덜어 주셨다.
국물을 식사라에 덜어 밥을 조금씩 드셨다.
입맛이 맞는지 나머지 국물은 포장해 왔다.
약한 분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여동생이 모셨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법인데
큰 며느리의 경력에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어머니의 엄마가 되었다.
휴가 계획 취소하고 보성, 순천, 구례 섬진강 변의
맛집에서 식사한 사진을 보내왔다.
건강 회복 위해 마음 담은 여행이 고마워 여비를 보탰다.
어머니 목소리가 커졌다.
‘많이 좋아졌어. 이제 괜찮아!’ 마음이 놓였다.
동생이 밥맛 들게 여수 게장까지 배달시켰다.
주일 아침에 교회로 직접 모시고 왔다.
하지만 온전치 못한 모습이었다.
예배 마치고 가신 걸음이 느렸다.
정 권사님이 만든 반찬을 실어 드렸다.
‘목사님, 어머니를 저대로 두면 안 되겠는데요.’
우려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사님, 사모님 두 어르신 모시느라 고생 많으시네요.’
차남으로 어머니를 4년간 모셔본 경험자,
조 집사님의 격려에 코끝이 시큰했다.
뒤따라 어머니 집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 숨만 쉬었다.
배가 등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임 권사님과 김영임 성도님이 곁에서 눈물을 훔치셨다.
말할 기력 없는 어머니를 일으켜 휠체어에 앉혀 응급실로 갔다.
담당 간호사가 상황 설명을 듣더니 시큰둥한 자세였다.
영양제 안 되고 입원 불가란다.
열 체크하더니 격리실 문을 열어 줬다.
환복 하는데 근육은 사라지고
앙상한 뼈만 남아 팔은 가늘고 등은 굽었다.
간호사가 차트를 보고 포도당 주사를 놨다.
바늘이 커서 혈관 통이 심했다.
수액을 느리게 떨궜다.
에어컨 바람이 강해 담요를 덮어 드렸다.
배가 고팠다.
지난번 요기한 편의점 샌드위치는 다시 먹을 것 아니었다.
간식으로 챙긴 옥수수와 단 호박으로 배를 채웠다.
5시간 맞아도 4분의 1도 안 들어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자리 지킴도 고역이었다.
심신이 약한 상태라 자식들이 서운한 모양이다.
‘손자들 낳을 때 뼈가 오그라들도록 수발해도 소용없더라.
어디 가! 그런 공을 모르더라!’
임대 아파트 보증금 문제에 얽혀 주택보증 공사에서 받아야
할 상황이라 개인 채무 관계가 막힌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다 잊고 정리하시라’ 해도 속상할 때면 들춰내셨다.
간호사가 ‘포도당 주사! 효험 없다’는 말에 바늘을 뺐다.
저녁 8시, 동생 집으로 갔다.
허기진 뱃속인데 ‘굴비에 밥 한 공기 드셨다’기에 걱정을 덜었다.
이틀 뒤 어머니 혈압 약 대리 처방 위해 다시 갔다.
약국 가는 길, 땡볕에 살이 익을 것 같았다.
3개월 치가 한 보따리였다.
수요 예배 나오셔서 전해 드렸다.
예배 마치고 동생이 또 모셨다.
집 그리워하셔도 어쨌든 혼자 둘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갸륵한 정성과 곱고 깊은 심성을 가진 동생이 보배였다.
진정한 사랑은 가까운 자를 돌봄에서 시작되었다.
폭염의 연속에 동생의 섬김 받고 백세까지 여물어 가길 원했다.
17살 시집와서 최선을 다한 어머니요,
하나님 영광 위해 이웃 사랑하여 덕을 세운 권사님이요,
내 목회 버팀목인 동역자!
어릴 때 멍석 마당에 누워 함께 봤던
별처럼 빛나길 바라며 새벽 기도 마치면 전화부터 드렸다.
2023. 8. 4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첫댓글 저는 제목만 보고 어머님 소천하신 줄 알았습니다.
목사님께 생명을 이어주셨던 어머님과 함께
마당에 깔린 멍석에 누워 바라보았던 하늘의 별들은 아직도 반짝이건만,
그 어머님의 별은 이제 유성이 되려 하려는군요.
모든 인생이 가는 길이지만,
유독 어머님을 보내는 것은 마음이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어머님의 마지막을 돌보느라 애쓰시는 동생분께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래 봅니다.
인생의 발자취를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강 목사님!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여름 밤 하늘의 반짝반짝 빛 나던
별처럼 어머니가 힘 있게 회복되길 바라는 뜻으로
제목을 정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독자들 생각에 별세하여
하늘의 별이 된 의미로 받겠다는 고민을 했네요.
어머니가 심하게 아프시면
아들은 별로 쓸 일이 없더구만요
딸이 나서서 요래저래 손을 쓰지..
그래 미안한 마음만 들지
실제 도움이 안 되어
안타까운 심정 뿐이네요
몸이 성치 못한 상황에서
딸과 돌아다니다 봉숭아 줄기 꺾어
내려 놓고 식초 두 병 붓고
두 시간 동안 발을 담궈라니
그 사랑에 할 말이 읍네요
담갔는지 전화로 계속 독촉해
오전에 글 쓰면서 3시간 담궜네요
티없이 깨끗한 발인데 순종 했어요
연일 찜통 더위에 건강 챙기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요.
더위 이기시라고 시 한편 선물합니다.
멈추지 마라 –양광모-
비가 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눈이 쌓여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을 오른다
길이 멀어도
가야 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길이 막혀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연어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인생이란 작은 배
그대, 가야 할 곳이 있다면
태풍 불어도 거친 바다로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