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 간 숨소리
장옥희 브랜디나/글무늬문학사랑회
나는 일상이 시들해지고 메마른 느낌이 들면 사람 냄새가 나는 드라마를 찾는다. 그들의 세상에 섞여서 살아본다. 좋아하는 탤런트도 있다. 옆에 서면 숨이 쉬어지는, 결이 선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이선균이다. 배우 이선균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돌연히 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했다. 애석함에 그가 남긴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떠올린다.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21살 어린 여성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서로의 아픈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주연인 이선균은 퇴근길에 자주 아내에게 전화하여 “뭐 사 가?”냐고 묻는다. 애정이 식은 아내는 그 말을 싫어했다. 그녀에겐 매일 듣는 식상한 말이었다.
내 친구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았다고 한다. 친구는 드라마를 보며 자신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뭐 사 가?”냐는 말에 울어버렸다고 했다. 나도 남편에게서 자주 들어서 흘려버린 말이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도록 정겹고 사랑이 담긴 말이었구나 깨닫는다. 일상 안에 숨어 빼꼼이 내다보는 소중한 순간과 눈 마주친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사하며 소중히 받아 안고 누군가는 그저 일상 안에 던져 버리고 묻어둔다.
드라마에서 좋은 어른을 만나고 도움을 받으며 자기를 짓누르던 세상의 무게를 떨쳐낸 어린 여성의 가벼운 행복을 보았다. 소년의 순수성과 타성에 물들지 않는 날카로움과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을 지닌 젊은 아저씨도 만났다.
북적이는 세상은 저편에 두고 맑은 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그들의 세상에서 살아보았다. 크고 긴 울림을 준 배우를 잃은 안타까움에 드라마의 OST '어른'을 반복하여 듣는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로 향해 가는 걸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 줄까.
노래를 계속 들으며 이선균 배우를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한다.
드라마 속의 그는 불우한 어린 여성에게 아저씨, 어른이 되어 주었다. 실생활에서도 배려심 있고 따뜻한,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현실에서 누구도 그에게는 아저씨가 되어주지 못한 부족한 어른들에게 경각심을 던진다. 곁에 한 사람의 어른이 있었더라면 다음 작품에서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고유명사 같은 목소리와 미소를 남긴 이선균. 이제 평안함에 이르렀는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애석하다.
무거운 하늘을 덮고 있던 재색 구름이 산산이 조각나 떨어진다.
축축하게 젖은 남자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멀어져 간다.
가쁜 숨소리도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