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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돋보기 - 생명을 위한 선택, 탈GMO] GMO 개발과 그 위험성
지엠오(GMO)는 세계인에게 상당히 익숙한 용어이지만 우리말로 선뜻 번역해 부르기가 쉽지 않다. 1996년 사람이 먹는 지엠오가 상업화된 이후 현재까지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들리는 ‘유전자 변형 식품’, 그리고 뭔가 나쁜 음모가 느껴지는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 동시에 불리고 있다. 이미 세계인이 먹어온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찬반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탁에 매일 오르는 지엠오, 왜 만들었을까
지엠오(GMO)는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약자로, 이전에 비해 유전자가 변형(조작)된 생명체라는 뜻이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온갖 생리 기능을 관장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지엠오는 이전에 비해 새로운 기능을 발휘하는 단백질을 가진 생명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 가운데 무엇이 지엠오일까? 예를 들어 방울토마토는 지엠오일까? 말 뜻대로 해석하면 그렇다. 본디 토마토는 방울만 한 크기가 아니었다. 크기가 작아지려면 토마토에서 크기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어떤 변화가 생겨야 한다. 곧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고서는 토마토가 방울처럼 작아질 수 없다.
하지만 방울토마토를 지엠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방울토마토는 전통 육종의 산물이다. 전통 육종은 같은 종(種)끼리 교배하는 일을 뜻한다. 곧 농가에서 토마토끼리 교배한 끝에 방울만 한 크기를 얻은 것이다. 이에 비해 지엠오는 전통 육종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생명체이다. 가령 배추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를 넣은 토마토가 바로 지엠오이다. 토마토와 배추는 서로 다른 종이기 때문에 자연에서 절대 교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일반적으로 지엠오는 미생물, 식물, 동물, 심지어 인간의 특정 유전자를 넣어 만들어진 생명체를 가리킨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된 지엠오는 콩, 옥수수, 면화, 유채(카놀라)이다. 이들은 대부분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가공 식품의 형태로 우리 식탁에 오른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GM 콩’은 99% 이상이 콩기름 제조에 이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장류와 두유, 이유식, 환자용 회복식, 그리고 소시지, 햄, 맛살 같은 육류 가공품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GM 옥수수’는 대부분 전분(녹말), 그리고 전분으로 만든 감미료의 총칭인 전분당(과당, 물엿, 올리고당 등)으로 사용된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상품으로 따져 보면 그 종류가 상당히 많다. 빵, 과자, 음료, 빙과, 소스, 유제품 등이다.
지엠오 하나를 만들려면 무려 1천억 원 이상의 비용과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웬만한 규모의 기업에서는 개발이 불가능하다. 몬산토, 신젠타, 듀폰, 바이엘 등 다국적 기업들이 지엠오를 만들어 왔다. 이전부터 농산물 종자와 농약을 독점적으로 개발해 오다 첨단 생명 공학의 기법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린 기업들이다.
이들이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은 식량 문제의 해결이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대비해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콩이나 옥수수에 집어넣은 유전자가 무슨 기능을 발휘하기에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지엠오가 재배되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지엠오는 두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제초제에 견디는 기능과 살충 기능이 그것이다.
농사지을 때 한 가지 골칫거리는 잡초이다. 예를 들어 콩을 수확할 때 잡초가 뒤섞여 있으면 제대로 골라내기 어렵다.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한 가지 해결책이지만 제초제에 콩도 함께 죽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초제를 뿌릴 때 콩은 살리고 잡초만 없애도록 개발된 것이 지엠오이다. 곧 특정 미생물에서 제초제 성분을 분해하는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골라내고, 이 유전자를 콩 종자의 유전자에 집어넣으면 이 콩은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다. 주변의 무성한 잡초만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적당한 양의 제초제를 뿌려도 콩의 수확량을 늘릴 수 있다.
농사에서 또 하나의 골칫거리는 벌레가 콩을 갉아먹는 일이다. 미생물 가운데에는 벌레의 소화 기관을 마비시켜 굶어 죽게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종류가 있다. 이 유전자를 골라내 콩 종자의 유전자에 집어넣으면, 벌레가 콩을 갉아먹다가 죽어 버린다. 그 결과 콩의 수확량이 늘어날 수 있다.
위해성 논란은 진행 중
현재 세계인이 먹고 있는 지엠오는 당연히 인체에 독성이 없다고 과학적으로 판단되는 품목들이다. 개발사들은 독성 시험 결과를 포함한 다양한 자료를 학계에 논문 형태로 보고한다. 지난 20여 년간 안전성이 확인되었다고 보고된 논문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긍정적 입장만 제시되어 온 것은 아니다.
지엠오의 독성을 판단할 때 동물에게 해당 지엠오를 직접 먹여 보며 관찰하는 실험이 중요하다. 외래 유전자가 작물의 유전자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지, 작물의 기존 유전자에 변형이 생겨 새로운 종류의 독성 물질이 만들어지지 않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실험동물에게 어느 정도의 강도로 식품을 투여하는지에 따라 실험은 크게 ‘단회 투여’ 독성 시험과 ‘반복 투여’ 독성 시험으로 구분된다. 단회 투여는 말 그대로 지엠오를 한 번 투여하고 14일이라는 단기간 내에 나타나는 급성 독성을 관찰하고자 하는 경우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웬만큼 강한 독성이 아니라면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비해 반복 투여는 1-3개월(아급성), 3-6개월(아만성), 6개월(만성) 등의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지엠오를 먹여 보는 경우이다.
지엠오는 사람이 평생 먹게 될 작물이다. 그렇다면 단회 투여가 아닌 반복 투여를 통해, 그리고 반복 투여 가운데에서도 최대 6개월 정도 실험동물의 상태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의아한 점은 국가별로 이들 실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엠오의 안전성 기준을 가장 엄격히 설정했다는 유럽 연합(EU)의 경우 3개월 실험을 선택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사춘기 정도까지 계속 지엠오를 먹여 보는 셈이다.
2012년 9월 프랑스 칸대학의 연구진은 이 기간에 문제를 제기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몬산토의 옥수수(NK603)와 제초제를 쥐에게 먹이면서 신체 기능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유선 종양, 간과 신장의 손상이 크게 늘어난 점을 발견했다. 특히 암컷이 수컷에 비해 이상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충격을 던졌다. 첫째, 연구진의 논문이 미국의 전문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이 학술지에는 2004년 ‘NK603’이 안전하다는 요지의 논문이 게재된 적이 있고, 이후 몬산토는 이 논문을 안전성의 주요 근거로 제시해 오곤 했다. 하지만 동일한 학술지에 반대의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둘째, 연구진은 지난날 실험들과 달리 쥐의 상태를 전 생애에 걸쳐 관찰했다. 보통 지엠오의 쥐 실험은 최대 3개월을 넘지 않지만 연구진은 쥐의 평균 수명 기간인 2년 동안 관찰한 것이다. 이 논문은 주류 과학계의 대대적인 비판 속에 취소되고 다른 학술지에 다시 게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엠오의 안전성 검사가 현재보다 엄격하게 진행될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 지엠오의 환경 위해성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계에서 인정되고 있다. 그 내용은 슈퍼 잡초의 등장과, 이를 없애려는 농약 사용의 증가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제초제에 잘 견디는 지엠오를 떠올려 보자. 기대대로라면 밭에 제초제를 뿌렸을 때 지엠오는 살아남고 주변 잡초만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주변 잡초가 제초제에 내성을 가질 수 있다. 이를 흔히 슈퍼 잡초라고 부른다. 슈퍼 잡초를 없애려면 당연히 더 많은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
2015년 3월에는 제초제의 위해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소는 한 의학 학술지를 통해 글리포세이트가 높은 수준의 발암성 물질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글리포세이트는 지엠오를 재배할 때 주로 살포되고 있으며, 바로 지엠오 때문에 그 사용량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제초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해 11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정반대의 결론을 발표했다. 글리포세이트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 논란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한편 지엠오는 유기농 농가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유기농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 주자이다. 동시에 지엠오의 재배와 수출에서 최강국이다. 지엠오를 꺼리는 미국인들은 농무부가 인정한 유기 표시가 붙은 제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정작 유기농을 재배하는 미국의 농가에서는 지엠오의 ‘오염’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오염은 왜 발생할까? 인근 경작지로 지엠오 꽃가루가 날아가거나 아예 종자가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오염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유기농 농가에서 정부의 유기 인증을 상실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유기 인증 표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유기농은 항상 비지엠오인가? 아니다. 대개 그렇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는지도 의문
최근에는 지엠오가 농업 생산량을 별달리 증가시키지 못했다는 보고들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여 년간 옥수수의 생산량을 비교해 보니, 지엠오의 재배가 활발한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지엠오를 수입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보다 별로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대대로라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두 배 이상 많이 생산되어야 했는데 말이다.
농가의 소득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개발사들은 제초제에 견디고 벌레 잡는 기능을 갖춘 지엠오를 재배함으로써 농민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 농민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이 주어졌는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지엠오로 개발된 모든 종자에는 특허가 등록되어 있다. 특허의 소유권은 지엠오를 개발한 다국적 기업이 가지고 있다. 농민은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종자를 구입하면서 별도로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종자의 사용은 1회로 한정된다. 곧 농민이 종자를 뿌려 수확을 한 뒤, 자신의 농산물에서 종자를 얻어 사용하면 안 된다. 수확을 마친 뒤에는 번번이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다시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
한편 농민은 종자와 함께 제초제를 한 회사로부터 사야 한다. 제초제에 잘 견디는 종자를 심는다면 당연히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 만일 다른 회사의 제초제를 뿌리면 그 종자는 죽어 버린다. 종자의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도 다국적 기업이다. 결국 농민은 종자를 구입한 시기부터 계속해서 다국적 기업에 종속되는 상황에 빠진다. 따라서 지엠오의 등장 이후 결국 개발사만 큰 이익을 보게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다국적 기업들은 합병을 통해 그 몸집을 키우면서 새로운 지엠오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바이엘과 몬산토, 중국화공 그룹과 신젠타, 다우케미칼과 듀폰의 합병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둘러싼 논란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임에도 이대로라면 세계인의 식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지엠오가 대거 등장할 것이다.
[경향 돋보기 - 생명을 위한 선택, 탈GMO] GMO 천국 한국에서 살아남기
정부 주도의 GM 작물 개발을 중단하라
지난 4월 22일 전북 전주시에 있는 농촌진흥청 동문, 300여 명의 농민과 소비자들이 ‘GM 작물 파종 저지와 GM작물개발사업단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 기관인 농촌진흥청이 주도적으로 국민의 주식인 쌀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현실을 항의하는 행사였다.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제대로 된 안전망조차 없이 시험 재배를 하는 농촌진흥청 재배포장까지 함께 행진하며, GM 작물의 상용화 시도 중단을 촉구했다.
2011년에 설립된 농촌진흥청 ‘GM작물개발사업단’은 지엠오(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려는 사업을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민간 기업과 연구소에 지엠오 개발을 위해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국내용 육종 소재 GM 작물 5종 확보’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도 식용 지엠오 수입량 214만 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16년에 수입한 지엠오는 약 214만 톤으로 GM 농산물이 211만 톤, 가공식품이 3만 톤에 이른다. 이러한 양은 1년 동안 국민 1인당 40kg 넘게 지엠오를 소비하는 것으로, 연 65kg인 쌀 소비량과 비교하면 참으로 엄청난 양의 지엠오를 먹고 있는 셈이다.
수입이 허용된 식용 지엠오는 콩과 옥수수, 감자, 면화, 카놀라, 알팔파, 사탕무 등 7개 작물이다. 최근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수입되는 콩의 75%, 옥수수의 50% 이상이 지엠오이며,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액상 과당은 지엠오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지엠오가 수입되지만 우리는 어디에서도 지엠오 물품이라는 표시를 쉽게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수입된 지엠오는 식용유, 간장, 당류 등을 만드는 가공 원료로 사용되어 지엠오라는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식품 위생법상 지엠오 표시
지엠오의 표기는 식품 위생법 제12조 2항(유전자 변형 식품 등의 표시)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 “생명 공학 기술을 활용하여 재배 · 육성된 농산물 · 축산물 · 수산물 등을 원재료로 하여 제조 · 가공한 식품 또는 식품 첨가물(이하 ‘유전자 변형 식품 등’이라 한다.)은 유전자 변형 식품임을 표시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 조항에는 “다만, 제조 · 가공 후에 유전자 변형 디엔에이(DNA)또는 유전자 변형 단백질이 남아 있는 유전자 변형 식품 등에 한정한다.”라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다. 표기의 예외를 규정한 이 단서 조항으로 우리나라에서 주로 가공 원료로 사용되는 지엠오는 디엔에이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아 최종 물품에 지엠오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유럽 연합(EU)이나 중국 등은 잔류 여부와 관계없이 지엠오 원료를 사용하면 표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현 식품 위생법의 규정으로 연 214만 톤이나 수입되는 지엠오가 어느 식품에 얼마만큼 사용되었는지 국민이 알 수가 없다.
철저히 무시되는 소비자의 알 권리
지엠오의 안전성에 대한 찬반 논란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확보되었으니 특별히 지엠오라는 표시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식품 업계와 지엠오 개발을 찬성하는 측은 지엠오 표기를 하면 소비자들은 더 혼란스러울 것이며, 지엠오 검사 비용의 추가 등으로 물품 가격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엠오의 안전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논란 중이기에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개발된 지 20년밖에 되지 않은 지엠오는 전통적으로 우수한 작물을 만들려고 하는 전통 교잡 육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지엠오가 안전할 수 있다 해도, 내가 먹는 식품이 지엠오인지 아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소비자로서 당연히 누릴 권리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법령과 국가 기관이 앞장서서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엠오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Non-GMO, GMO-free’ 표시에 관한 기준을 지난 2월에 발표했다. 고시는 지엠오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로서, 표시 대상 원재료 함량이 50% 이상, 또는 해당 원재료 함량 1순위로 사용한 경우 ‘비유전자 변형 식품, 무유전자 변형 식품, Non-GMO, GMO-free’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표시 대상 원재료는 수입이 허가된 7개 품목으로 제한하고 있어, 다른 국내산 농산물이나 국내산 사료로 키운 축산물과 가공품에도 표기할 수 없다. 또한 지엠오를 표시할 때 허용되었던 비의도적 혼입치 3%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
지엠오로 안전한 세상 만들기: 식품 위생법 개정
무엇보다 먼저 허울뿐인 식품 위생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가톨릭농민회를 비롯한 35개 농업, 소비자, 지역 단체들은 ‘원료 기반 지엠오 완전표시제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시행’, ‘지엠오 없는 학교 급식과 공공 급식 실현’, ‘국내 지엠오 상용화 중단, GM작물개발사업단 해체’를 목표로 지난해 10월 ‘GMO반대전국행동’을 결성했다.
GMO반대전국행동은 반쪽짜리 지엠오 표시 관련 규정인 식품위생법의 제12조 단서조항을 삭제하려고 100만 명 서명 운동과 기자회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식품 위생법을 담당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몇몇 의원이 지엠오의 안전성을 확신하며 식품 위생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어 개정 운동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료 기반 지엠오 완전 표시제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시행은 국민의 건강과 알 권리를 위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GMO반대전국행동 누리집(http://antigmo.tistory.com)이나 우리농 매장 등 온·오프 라인으로 식품 위생법 서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지엠오를 피하는 첫걸음이다.
꼼꼼한 원재료 확인하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2013년부터 2016년 3월까지 지엠오 가공식품 수입 10대 국내 기업 가운데 1위는 코스트코 코리아이고, 2위는 버거킹을 운영하는 BKR, 3위는 일본산 미소 된장 수입 업체인 은화식품이다.
코스트코 코리아는 11개 품목 1만 1,074톤의 지엠오 식품을 수입했고, BKR은 4,643톤, 은화식품은 2,182톤을 수입했다. 대형 마트인 이마트도 995톤, 애슐리 등 이랜드 파크 외식 사업부가 988톤을 수입했다. 코스트코 코리아와 은화식품은 ‘유전자 변형 식재료 포함 가능성’을 표시하지만, 버거킹이나 식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가족의 건강과 안전한 밥상을 지키려면 번거롭더라도 구매하는 식품의 원산지 표기와 지엠오 표기를 꼭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수입 식품이나 지엠오 우려가 있는 가공식품의 경우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생활 협동조합이나 유기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단체의 물품을 이용하는 것이 지엠오의 위험성을 피하는 방법이다.
지엠오 없는 안전한 학교와 공공 급식 실현
성장기 아이들에게 하루 한 끼 제공되는 학교 급식의 안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완전한 표시제로 말미암아 단체 급식의 경우 지엠오에 노출될 위험은 더욱 크다.
건강하고 안전한 급식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에 학교 급식 재료의 기준에서 지엠오를 제외해 줄 것과 국가 책임의 친환경 무상 급식을 모든 학교에 확대해 시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이웃 나라 대만은 2016년 학교 위생법 개정을 통해 학교 급식에서 지엠오를 제외하도록 했다. 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는 조례를 통해 지엠오 없는 학교 급식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먹는 급식에 관심과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초중고뿐 아니라 공공으로 진행되는 집단 급식의 재료와 안전한 급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만이 지엠오 없는 안전한 학교 급식과 공공 급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엠오를 피하는 근본적인 방안: 토종 종자 확대 운동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3%이고, 콩 자급률은 1% 이하다. 농업과 농촌은 농민의 고령화, 수입 농산물의 범람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어 많은 양의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를 식량 수입으로 해결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줄을 외국에 맡기는 위험천만한 판단이다.
농민의 생계가 보장되고, 농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정부 정책이 먼저이어야 하지만,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확보하려면 소비자들이 우리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엠오에 대한 근본적이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토종 종자 농산물의 적극적인 이용이다. 전통적인 토종 종자 농산물의 이용은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씨앗을 지키고 외국계 종자 회사의 씨앗 독점을 극복하는 방안이다.
또한 토종 종자로 기른 안전하고 건강한 농작물의 이용이 늘어나게 된다면 이 땅에는 지엠오가 발붙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식량 안보를 핑계로 무분별하게 지엠오를 개발하려는 정부의 그릇된 정책을 막는 근본적인 방안임이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희망은 다양하겠지만, 지엠오가 넘쳐 나는 현실에서 국민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 그 희망은 똑똑한 소비자가 함께할 때 가능하기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경향 돋보기 - 생명을 위한 선택, 탈GMO] 생명의 밥상을 차리자
바벨탑의 벽돌과 역청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기술과 과학이 발전해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기묘하고 창의적인 생각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은 새로움이 우리가 걸려 넘어지게도 하며, 우리 주변의 많은 것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과 같아질 수 있다거나 스스로 뛰어나다고 자만한 이유는 벽돌과 역청을 다루는 기술 때문이었습니다(창세 11,1-4 참조). 지난날의 한 파편처럼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역사는 이를 반복해 왔습니다. 스스로의 기술로 생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거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은 유전자 조작을 통한 농산물, 곧 ‘유전자 변형 식품’(GMO)을 만들어 내는 데서도 깊이 드러납니다.
교회는 인간이 과학적 기술을 사용하는 데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함께 세심한 배려와 스스로의 한계를 기억하라고 당부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417항; 「사회적 관심」 28항 참조).
우리가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소유이자 종임을 자처하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시도는 생명에 대한 권리가 바로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생명을 마구 약탈할 권리도 지녔다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기술로 말미암은 생명의 죽음을 목격한 뒤에 많은 과학자들이 뒤늦게 했던 말이 ‘당시의 기술로는 그것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백하기에는, 다시 말해 이미 많은 것이 지나고 난 뒤에 알게 된 깨달음은 너무 늦어 버린 것입니다. 더욱 세밀하고도 생태적인 시각으로 성찰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 그리고 우리 인간을 만드신 이유를 곰곰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찾지 않으면, 우리가 갈 곳을 잃은 채 파국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신 이유는 세상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보시니 좋은’(창세 1장 참조)세상이 제대로 지켜지며 보전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거기에 달려 있고, 우리 인생의 목적도 거기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 만물이 하느님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창세 1,22.28 참조)도 기억해야 합니다. 창조물은 저마다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며, 만물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만물은 필요하고, 또한 각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생태적 통공
교회는 그 시작부터 인간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히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라는 것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던 형제자매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형제자매의 관계로 확장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자신들과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통공’(通功)은 모든 공이 서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곧, 모든 공로와 선행을 서로 나누고 공유함을 뜻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러한 통공의 결과이며, 우리는 또 다른 통공의 존재가 되려고 투신하겠다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 만물의 생명을 통해 생명의 통공을 주고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따라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먼저 이 땅의 만물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통공의 결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통공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거나 묻지 않는 가운데 하나의 효용만을 보게 됩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이들은 각각의 생명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또한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바라볼 뿐입니다. 생태적 통공은 우리 생명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있어야
많은 대중 매체에 요리와 음식은 넘쳐 나지만 농민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의 시작을 묻지 않습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통한 농업에는 결국 거대한 자본과 기술만 남게 마련입니다. 이제껏 해 왔던 농업은 무너지고, 농토는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복잡한 생태계의 연결을 망가뜨리고, 효용성 있는 작물만 재배하는 나머지 다양성을 감소시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존성을 증가시켜 농민들은 그저 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노동을 착취당할 뿐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소수의 자본을 소유한 인간이 중심이 됩니다.
생명이 아닌 그저 하나의 상품만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많은 것이 얼마나 싸고 맛있으며 양이 많은지에만 관심을 돌립니다.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빠진 채 우리가 먹고자 하는 목적에만 맞추며 다른 생명을 바라봅니다.
인간 중심적인 선택주의는 인간들마저도 나에게 쓸모없는 존재는 대상화되어 결국 소비되는 물건이 될 뿐입니다. 또한 소용을 상실한 존재는 버려지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인간 중심주의가 결국 인간을 버리는 꼴이 됩니다. 하지만 세상 만물은 어떤 기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좋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그저 머물다 떠날 이방인일 따름입니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또 굶주리는 많은 이를 구제할 것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 버려지는 음식을 보며, 수많은 사람의 고통에 우리가 동조자로 서 있고,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이용될 따름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결국 유전자 변형 농산물로 만든 식품은 소비 시대가 낳은 괴물일 뿐입니다.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시장 만능주의에 편승해 자연과 생명체를 조작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이며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누구인지가 어찌 보면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생태적 통공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당부하신 ‘생태적 회개’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합니다. 곧, 유전자 조작에 대한 생태적인 성찰을 통해 그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깊이 반성하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교회, 생명의 밥상을 차려야
대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밥상 차리는 법을 배워 오라고 방학숙제를 내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사제가 되고자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양식, 생명의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양식과 생명으로 차리는 밥상을 모른다면, 생명의 양식과 밥상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양식을 차릴 줄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생명의 밥상을 알 수 있다거나 차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짜일 겁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처음으로 하신 행위가 제자들에게 밥상을 차리시는 일이었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얻은 이들은 생명의 밥상을 차릴 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생명의 미사를 봉헌하면서 생명의 밥상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사도 2,46).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효용성과 이익 때문에 이 밥상 공동체가 깨져 버렸습니다.
우리 교회의 밥상을 다시 한번 들여다봅니다. 본당에서의 식사 나눔을 비롯해 사제관이나 수녀원, 신자들끼리의 밥상을 말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모신 뒤에 많은 이가 비용과 효용으로 밥상을 차립니다. 생명을 함께 나누지만 정작 자신이나 교회 공동체의 식탁은 생명의 밥상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먹는 이들입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식탁을 차립니다. 단순히 미사 전례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생명의 식탁을 차리고 나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삶과 신앙이 분리될 때 그 신앙은 허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생명의 밥상을 차리고 나눕니다. 수많은 이의 정성과 통공이 모여 잔치를 이룹니다. 또한 파견된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 안의 제대에서 생명의 밥상을 차리고 또한 나누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밥상을 차려 주시는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
첫 번째, 구체적인 식사 기도입니다. 먹는 것이 가장 일차적이며, 중요한 관계를 맺고 나누는 일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또 다른 생명의 통공입니다. 그래서 이 밥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기도에 창조주 하느님과 세상 만물을 초대해야 합니다. 햇볕, 바람, 별빛, 그리고 농부와 수많은 사람의 정성을 말입니다. 그렇게 밥을 먹는 이는 홀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과 수많은 생명과 밥상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밥상이 소박하더라도 생명의 식탁이 될 수 있습니다. 밥상에 담긴 하나하나의 의미와 이것이 어디에서 시작해 자신에게로 오고 흘러가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그저 주린 배만을 채울 따름입니다.
두 번째, ‘우리농’ 이용입니다. ‘생명 농업’으로 키운 농산물을 이용해야 합니다. 나 자신과 생명을 살리는 데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신앙적인 소비와 거리가 있습니다. 교회의 운동인 우리농촌살리기운동과 가톨릭농민회의 생명 농산물을 이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제철 음식 이용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만물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먹을거리를 주십니다. 우리의 욕심으로 그것을 거스르며 먹거리를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생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네 번째, 스스로 길러 먹기입니다. 곧, 생명에 대한 묵상과 감수성을 키우고자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이 키워서 먹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길러 먹을 때,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농부이신 하느님을 묵상하고, 밥상의 귀함도 알며, 죽음의 밥상이 아닌 생명의 밥상에 가까이 가는 가운데 창조주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 집밥 늘리기입니다.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밥을 먹을 때 그것이 어떻게 자신에게 오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새길 수 있는 식사는 바로 자신의 집에서 나누는 식사입니다.
여섯 번째, 깨어 있기입니다. 소비주의와 세상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 생명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애써 노력하고 찾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공부하며 깨어 함께 나누는 일을 통해 반생명의 문화를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길을 잃은 채 반생명의 길로 치닫는 오늘의 현실에 그리스도인들의 영성과 성찰과 시선이 필요합니다. 세상 만물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며, 우리를 내신 하느님의 뜻과 생명의 이유를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