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에 고등학교 동기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한국영화를 보면 슬프다라고 내가 말하니 친구도 공감하는 듯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국영화가 슬프다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인다.한국의 역사가 굴곡이 많고 우리의 경제가 발전하여
삶이 윤택해진 것도 몇 십년 되지 않으니 우리민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슬플 것이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감수성에 말하는 한국영화가 슬프다라는 것은 그런 설명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염두에 둔 영화는 그 당시 이상아 하희라 등의 하이틴 스타들이 출연한 말괄량이 대행진이란
작품이었다.하도 오래되어 지금 그 슬펐던 감정의 세세함까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영화의 스토리에서 어떤 삶의 한계와
어쩔 수 없는 한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어려운 이유는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접어두더라도 우리의 삶에 한스러운 기억을 가지는 이유는 나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닌 어쩔수 없는
삶의 한계 같은 것이다.
촬영 완료된 영화라서 이리 저리 돌려 보면서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지된 그림 같은 것이라서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져 흘러가는 그대로의 삶인 우리의 모습은 슬픔도 기쁨도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 밖에 없는
순수한 감정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젊은 20대 시절에 영화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그토록 우울해지고 슬펐던 것처럼 나이 먹고 젊음이 지나가 버린
다꺼진 열정의 가슴일지도 모르는 나에게 건축학 개론의 엔딩 장면은 북받치는 감정에 오열하게 했다.
내가 극중에 등장인물이라면 아니 그게 아니잖아 하면서 간섭을 하고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오해와 불운의 연속인
것이 그 주인공들의 운명이었고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였다.
2015년 5월 28일 정용석(crystalpo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