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2] 김성모 (金成模) - 레바론의 백향목을 옮겨 심어라 10. 한국군으로 전출 1 카투사에서의 근무기간이 끝나면 한국군으로 전출이 되었다. 전출을 앞두고 각자 가고 싶은 부대가 있으면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었다. 1차로 내가 지명한 곳은 원주의 361부대였다.
2 이 부대의 선임 상사 조희인씨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평택 식구 조순선씨의 오빠인데 가끔 교회도 나왔고 이웃에 살아 부모님도 서로 잘 아는 분들로 가까운 형님 같은 분이었다. 3 한국군으로 전출되면서 먼저 강원도 홍천 근교에 있는 한국군 보충대로 가서 일주일간 지내다 원주 단구동에 있는 361부대로 가게 됐다. 이 부대에서 중대장보다 고참인 선임 상사와 형님 아우 같은 사이라는 것을 안 중대장이 잘 하라고 하면서 부서 배치 등 모든 것을 선임 상사에게 일임했다. 4 361부대는 군용차의 부품을 각 부대에 보급해 주는 독립 부대였다. 모든 부품명이 숫자로 명기되어 있어 그 모든 고유번호를 다 알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있을 뿐 처음이라 부품 하나를 찾는데 이리저리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5 그러자 숙달된 일등병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가서 쉬라고 했다. 하지만 부대 사무실에 늘 앉아 있는 것도 부대원들 눈치가 보여서 위병조장을 자원했다. 그야말로 소위 군대에서 말하는 고문관인 셈이었다. 그리고 부대 내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원주교회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6 사회가 어수선한데도 나는 부대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원주교회는 물론 서울 수원 평택으로 다녔다. 36가정 축복을 앞두고 이요한 목사님이 평택에 오셨을 때 내가 마침 평택 집에 잠깐 갔다가 목사님을 안내하여 원심희씨 집으로 갔었다.
7 원심희씨 가족과는 성결교회에 다닐 때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이 목사님을 안내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불심 검문을 받고 평택경찰서 헌병 파견대 사무실로 잡혀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헌병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야, 너 오래간만이다.” 하기에 자세히 보니 입대하던 날 만난 김학영이라는 친구였다.
8 그는 학생 때 통학 열차에서 주먹이 세기로 소문난 친구였다. 논산훈련소의 같은 소대에서 향도로 평택에서 같이 입대한 6명에게 선심을 가졌던 그와는 훈련소 연병장에서 헤어지고 처음 만난 것이다.
9 평택경찰서에 임시로 파견된 헌병 고참 선임자였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었다. 그 친구에게 “야, 나 간다. 수고해라.” 하고 나왔는데 어느 누구 하나 말을 못 했다. 10 원주 부대로 돌아온 후 하루는 조희인 형님에게 내가 부대에 있으나 없으나 같으니 협회 수련이나 받으러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조희인 형님이 그저 씩 웃었다.
11 그래서 다음날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협회 제6회 40일 수련에 참석했다. 40일 수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온 뒤 3일 후에 5·16군사혁명이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