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목)-4일째: 담양
1.5.18묘지
담양에 가는 길에 광주에 들러 5.18묘지에 다녀왔다.
묘비들 앞에서 묵념을 하고, 희생자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짧은 기도를 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5.18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던 것 같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진 것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소름이 돋는다.
(이 모든 일을 주도했던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도..)
지금이야 내가 그때 있었어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을 것이라 말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 내가 광주에 있었다면
아마 나는 무서워서 다른 지역으로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나의 안전을 위해 전두환을 칭송하는 척을 했을 것이다.
엄청 무서웠을 텐데, 그리고 진짜 진짜 하기 싫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민주화를 위해 싸워주신 이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성적 같은 것이나 팔자 좋게 걱정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분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 나도 그들의 5.18정신을 본받아야겠다.
2. 담양 소쇄원
담양에는 대나무 숲들이 많다. 우리는 그 중에 소쇄원에 갔다.(어른 입장료 2000원)
소쇄원은 조선시대 때 조광조의 제자가 만든 정원이라고 한다.
민간정원이라 그런지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고,
그래서 금세 다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사실 대나무들이 이렇게 멋진지 몰랐다.
옛날에 우리 집 앞에도 대나무가 4그루 정도 있었는데,
나는 동화책에서 대나무에 귀신이 산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아빠를 졸라 바로 대나무를 뽑아서 버렸었다.
그래서 대나무는 내게 항상 으스스하고 음침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대나무들이 푸릇푸릇하고 꽤나 멋졌다.
소쇄원을 통해 대나무의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변한 듯싶다.
*사실 담양은 ‘메타세콰이어 길’도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옛날에 그곳에 가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안갔다.
‘메타세콰이어 길’도 걸어볼 만 하다.
3. 관방제림
관방제림은 관방천의 제방 둘레에 나무를 심어놓은 곳인데
산책하고 쉬기에 좋았다. 우리는 약 20분간 이렇게 평상 위에 누워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도 이렇게 평상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집이 답답할 때 거기서 낮잠도 자고, 책도 읽을 수 있도록 말이다.
평상 설치를 파주시청에 건의해 봐야겠다.
4. 담양 국수 거리
국수거리에서 멸치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맛은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5. 신식당
신식당에서 떡갈비 정식과 대나무 밥을 먹었다.
일인당 거의 35000원 정도가 들었는데, 맛은 그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나 직원 분은 아주 착했다)
이곳은 비추다. 만약 담양에 간다면 직접 다른 맛집을 찾아보시길.
6. 담양 프로방스
담양 프로방스. 분위기는 파주 프로방스와 비슷했다.
건물들이 알록달록했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모여있었다.
아직 공사 중이라 완성되진 않은 상태였다.
진짜 프랑스의 프로방스에 직접 한번 가봐야,
한국의 이 짝퉁 프로방스들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릴 수 있을 듯 하다.
7. 호시담
호시담은 모던하고 세련된 ‘신식 펜션’이다.
건물 외부도 내부도 아주 깔끔하고 예뻤다.
어쩌면 우리가 알던 펜션보다는 호텔과 조금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단 호텔은 한 방에 성인 4명이 숙박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비가 와서 아침에 산책을 못한 것이 아쉽다.
아침 조식으로는 바게트빵과 헤쉬포테이토가 나왔다.
8/30(금)-5일째: 태안
1.소소펜션
담양에서 바로 태안 소소펜션으로 이동했다.
소소펜션 역시 신식 펜션이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오실 것을 대비해 가장 큰 방인 6인실을 예약했다.
수영장은 예쁘긴 했으나 너무 얕았다.
애기들이나 초등학생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한 깊이였다.
(*어른 자녀를 둔 가족들이 오면 좋을 것 같다)
나와 오빠는 이렇게 튜브(수영장에 원래 구비되어 있었다)에 올라타서
약 30분간 썬텐을 했다.
2. 토담집
토담집은 아빠가 태안에 사시는 지인분께 직접 추천 받으신 태안 맛집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간장게장과 우럭젓국을 먹었다.
우리 가족들의 반응은 일제히-‘최고다’였다.
여행 중에, 아니 어쩌면 이제껏 살면서 가봤던 식당 중에 가장 맛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이때 우리가 배고픈 상태이기는 했다ㅎ)
어쨌든 이곳은, 입맛이 까다로워 왠만한 음식은 인정하지 않는 우리 엄마까지
인정한 ‘진짜 맛집’이었다.
이은재 가이드가 있다면(미쉘린 가이드 말고) 투스타 정도를 받았을 것이다.
이곳은 간장게장과 우럭젓국 뿐만 아니라, 밑반찬들도 맛있었다. 특히 젓갈이 아주 맛깔났다.
친절하신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우리의 반응을 보시고는,
반찬들을 담아서 따로 챙겨주시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들은 감동에 젖어, 식당을 나온 후에도 계속 입맛을 다셨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실제 로컬 사람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꼭 가보시기를 추천드린다.
3. 청포대 해수욕장
저녁을 먹은 후, 바다 산책을 했다.
소소펜션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청포대 해수욕장이 있었다.
청포대 해수욕장은 내가 이제껏 가봤던 바다 중에 가장 넓었다
저~~ 쪽 끝에서 이~~ 쪽 끝까지 쭉 해안선이 이어졌다.
파도는 잔잔하고, 바다 깊이가 깊지 않아서 마치 호수 같았다.
물론 바다색이야 이집트에서 봤던 에메랄드 빛 바다에 비하면 많이 흐렸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우리나라 바다만의 매력이 있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외국 바다는 굉장히 세련돼 보이는 스테이크 같은 느낌?
반면 한국 바다는 마시면 시원하고 속이 뻥 뚫리는 갈비탕, 설렁탕 같은 느낌?
어쨌든 바다마다도 각자 다른 매력이 있는 듯 하다)
나는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기분 좋은 것이 4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음식이고,
둘째는 책이고,
셋째는 도시 야경이고,
넷째가 바로 (해질녘이나 너무 깜깜해지기 전, 하늘색이 감청색일 때 즈음에) 바다이다.
(다섯째는 사막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것들을 볼때면 종종 새로운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세상을 극적으로 긍정적이게 바라보기도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나는 희망 충전 만땅인 상태가 되었다.
막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은..
그런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충전 상태의 지속 기간이 너무 짧아서,
멀어지는 즉시 모든 희망과 기쁨이 싹 가시고,
금새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나는 나의 행복 자극제와 가까이에,
즉 바다 앞이면서, 도시 야경이 멋지고,
맛있는 음식점과 디저트집, 카페가 많으면서,
책 구경을 할만한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이 있는 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야 겠다.
9/1(토)-6일째: 태안(이틀째)
우리 가족이 마지막 여행지로 태안을 잡은 것은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의 대학 동창 낚시 모임에 동반하기 위해.
그래서 낚싯대를 잡아본 적도, 고기를 낚아본 적도 없는,
우리 가족은 낚시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태안 앞바다로 향했다.
이 날은 금어기가 풀리는 첫날이라 적어도 각자 쭈꾸미 200마리씩은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아빠가 말했다.
우리는 쭈꾸미를 담기 위한 아이스박스를 투 통씩이나 챙기며
어떻게 그 많은 쭈꾸미를 먹어치울 것인지에 대해 미리 논의했다.
꼭두새벽부터 낚시를 하기 위해 나온 부지런한 배들이 많았다.
몰려오는 배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현장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작은 배에서 자그마치 9시간 동안 낚시를 했다.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우리 가족 4명은 각자 낚싯대를 하나씩 쥐고 성실하게 낚시에 임했으나,
오빠가 한 마리 잡고, 얼마 후에 엄마가 한 마리를 잡은 후에는 별
소식이 없었다.
처음 한 시간 동안에는 ‘분명 잡힐 것’이며
‘어쩌면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고,
세 시간 후에는 아직 처음이기에 조금만 더 연습하다 보면 고기가 잡힐 것이라 믿었고,
다섯 시간 후에는 아직 쭈꾸미들이 활발히 활동할 시간이 아니어서 적정한 때를 기다리면
될 것이라 위안했고,
일곱 시간 후에는 포기했다.
나는 한 마리의 쭈꾸미도(물론 다른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신 상태가 혼미해졌고,
결국은 낚싯대를 제쳐놓고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배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아빠 옆에서 낚시를 하던 아저씨가 혼자서 100마리 이상의 고기를
잡는 동안,
아빠는 2마리, 엄마와
오빠는 4마리의 쭈꾸미를 잡았다.
각자 200마리씩, 총
800마리였어야 했을 우리의 쭈꾸미 수확량은
10마리에서 끝이 났다. 나머지
790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각자 낚싯대 대여비 10만원씩에, 오빠가
낚싯대 하나를 부러뜨려서
플러스 10만원. 총 50만원.
거기에 온 가족이 새벽부터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으니
그것까지 계산하면
거의 100만원에 쭈꾸미 10마리를
가져왔다고 봐야겠다.
우리는 귀여운 쭈꾸미들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한 마리당 10만원쯤 되는 아주 귀한 녀석을 입에 넣으려니
좀 아까웠다.
가져간 아이스박스는 빈 채로 가지고 돌아왔고,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그 많은 쭈꾸미들을 먹어치울 것인가’하는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은 안해도 됐다.
짐도 안 늘어나서 이동하기에는 훨씬 편했다.
이번 낚시를 통해 얻은 교훈은 ‘생선은 시장에서 사먹자’이다.
낚시는 낚시를 정말 잘하고, 즐기는 사람한테 맡겨야
그 사람도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고, 우리 같은 소질 없는 사람들도
소외되지 않고 생선을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나 다 낚시를 하면, 어부들이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절대는 낚시를 하지 않겠다.
9/2(일)-다시 집으로
우리는 펜션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대한 나의 평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 화담
여관(‘게스트 하우스 파티’라는 것이 아주 재밌고 신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저녁
7시 쯤에 갔던 청포대 해수욕장
-가장 맛있었던 음식: 토담집, 아미정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낚시
-아쉬운 일: 한 지역에
하루씩 밖에 머물지 않아 이동이 너무 잦았다./나는 국내 여행을 가면 전통시장을 구경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장 구경을 못했다.
여행 총 점수: 10점 만점에 8점
첫댓글 담양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사진을 보며 아 여기도 준우랑 갔던곳 저기 준우랑 국수 먹던곳 생각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은재야..태안 그 광활한 해변은 천리포가 아닌 청포대 해수욕장이었을거야. 정말 정말 멋진 해질녘 바닷가였지^^
은재가 소개해준 맛집에 꼭 한 번 가보리라 다짐합니다.
약은 약사에게, 생선은 어부에게
은재의 조언 감사합니다^^
- 준휘 엄마 -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편씩 은재 보고서 읽기~~
5.18 묘역까지 찾은 은재의 기행 수필 잘 읽었어 고마워~~~~!!! <준형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