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만리장성) 여행기
* 일 정 : 08' 3/14(金)~3/17(月)
* 인 원 : 15명(본인부부外 男7,女6)
* 여 행 사 : 여행매니아
* 가 이 드 : 兪 虎 (조선족 3世, 30세 男, 가이드경력 9년차)
* 1일차 (3/14) :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려 불안했으나 다행히도 예보와 같이 밤 늦게 비가 말끔히
개인 하늘이다.인천공항 집결시각이 09시 이므로 07시5분 집앞 보정역에서 공항 리무진을 타고
08시 30분경 공항에 도착, 3층 A와 B 카운터 사이 3번 테이블에 찾아가니 여행사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중 맨먼저 우리 부부가 도착한 후 10여분 후에 타 일행들이 속속 도착했다.
인원이 적은관계로 동행하는 인솔자는 따로 없었다.11시 정각에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OZ327)
에 올라 天津공항에 도착한것은 현지시각(한국보다 1시간 늦음) 15시 15분,가이드 미팅후 일행
15명이 37인승 중형버스에 올라 北京으로 이동(120Km,2h 소요)하였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北京/萬里長城 임으로 항공편이 北京 직항편도 있으나 저렴한 여행사를 택하다보니 天津을 경유,
버스로 이동케 된것이다. 기내에서 간단한 식사가 나왔으나, 北京에 입성하여 중식후 明淸代 하늘
에 풍요와 풍년을 빌며 제사를 지내던 "天壇公園"(세계문화유산)을 둘러 보았는데 "天心石" 이라고
하여 주위로 9개의 원이 둘러 쌓여 있으며 각 원은 9의 倍數의 돌로 구성돼 있었다.(9,18,27개..)
이 돌 위에서 말을 하면 神과 대화를 하는것처럼 강한 소리의 반사효과가 난다. 손뼉을 치며 울림
효과가 있는지 시도해 보았으나 워낙 많은 인파때문인지 울림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두번째
간곳이 明나라 황제들의 지하궁전인 明13능(定陵), 가이드는 일일이 설명을 가했으나 귀에 담기
에는 놓진것이 많다. 석식 후에는 서커스(기예쇼)를 약 1시간에 걸쳐 관람하고 호텔투숙.(9,788步)
이보다 앞서 天津에서 北京까지 버스로 이동하는동안 가이드는 자기소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먼저 ...,... 중국은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다음 8개의 단어를 외우라는것. 즉 1.니하오(안녕
하십니까? 2.시에시에(고맙습니다) 3.자이지엔(또 뵙겠습니다) 4.칠팔러마(식사 하셨어요?) 5.샤
우제(아가씨,언니) 6.따꺼(큰 형님) 7.신콜라(고맙습니다) 8.샹년(참 보고싶다) 이상 8마디만 외워
둔다면 아쉰대로 의사소통이 가능 하다는것이다. 이어서 중국을 관광하려면 역사와 문화를 우선
알고 투어에 임해야 한다면서 중국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중국은 고대를 거쳐 夏나라,殷나라,周
나라,春秋戰國,秦나라(始皇帝는 兇奴族을 토벌키 위해 만리장성의 大役事를 개시),漢나라,魏晋,南
北朝,隋나라,唐나라,五代十國(後梁,後唐,後晋,後漢,後周의 5王朝):907~979,宋나라(960~1277),
元나라(1271~1368),明나라(1368~1644) : 漢族에 앞서 몽골족이 元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統一
王朝,淸나라(1636~1912) : 明나라 이후 滿州族 "누루하치"가 세운 征服王朝, 중국의 근대사는 이 王
朝末期부터 시작된다고 소개한다. 앞서 도착했던 天津은 수도 北京으로 들어가는 바다나루로서 인구
900만명,해상무역과 운송의 집산지로서 농업과 공업의 결합,동양과 서양의 공존,전통과 현대문화가
결합돼 있는곳 이라고 소개하면서 중국 국가개요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하였다. 정식 국가명칭은 中華
人民共和國(인구: 약 13억명),수도는 北京(베이징 : 인구 1,400만명),국토면적은 동서 5,200Km,국경
선의 총 길이는 20,280Km에 이른다. 중국 또는 중화라는 국명은 3,000년전 西周에서부터 사용해 왔는
데 中은 중심이라는 뜻이고 華는 문화의 뜻으로 즉,세계의 중심,또는 문화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또한
중국은 하나의 국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다양성을 지닌 나라이다. 중국인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는 56개의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민족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5,0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 속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거쳐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만리장성이나 자금성,병마용 등은 이러한 유서깊은
역사의 빛나는 유적들 인것이다. 러시아,카나다에 이어 3번째로 광대한 국토에는 다양한 기후(-35도
~+41도C)와 자연의 모습들을 지니고 있다.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은 공산국가로 대표되는 구시
대적 이미지를 벗고있다.이제 그들은 세계 최대최강의 국가를 꿈꾸고 있으며 1972년에는 漢字 간소
화시책을 펴 그후로는 약식한자를 전용코 있다. 중국의 모든 간판이나 선전물에는 붉은글씨가 많은데
이는 福이 오고 吉하다는걸 나타내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중국에는 석유,석탄,목재의 3대 자원이 있
으며 향후 180년을 쓸 수 있는 분량이 매장돼 있다고 한다. 내일 투어스케쥴이 있는 만리장성과 모레
있을 천안문에 대해 계속 설명을 가한다.
[萬里長城]
중국본토 북쪽에 축조된 성벽으로 그 길이는 중복된 성까지 합쳐 약 6,350Km에 이른다고 한다. 秦
始皇帝는 중국통일 (BC221) 후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대공사를 시작하여 長城이 현재의 규모로
된것은 明나라 시대로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서 였으며 오늘날 관광대상이 되고있는 바다링(八達嶺)
근처의 장성은 높이 8.5m, 두께는 5.7~6.5m라고 한다. 淸나라때 이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몽골
과의 정치적 경계에 불과하게 됐다고 한다.
[天安門廣場]
북경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로서 동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 되었으며 1958년에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깔고 4배나 넓은 현재의 규모(약 14만평)로
확장 시켰으며 동시에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중의 하나이다.광장을 중심
으로 북쪽은 紫禁城에 들어가는 입구인 天安門,동쪽은 중국 역사박물관(말이 박물관이지 내용은 없다
고 함. 이유? : 蔣介石이 본토에서 대만으로 갈때 수천톤의 소장품을 군함에 실어 운반해 감으로써
겉으로만의 박물관이라고 함), 서쪽은 인민대회당,그리고 남쪽에는 毛澤東기념관이 있디.한편 광장의
한 복판에는 중국인민영웅기념탑이 있다. 천안문광장은 예로부터 대규모 군중시위,집회행렬,경축행사
등이 열리는곳이다. 천안문은 明나라때(1417년)지어졌으며 옛날에는 황제가 기거하는 城의 정문이었
으며 당시에는 承天門이라 불렀다가 淸代에 개조된 후부터는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天安門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33.7m 높이의 천안문은 황제의 대형 의식이나 새 군대파견을 위한 행사
를 위해 이용됐다고 함. 그리고 주홍색의 웅장한 기둥들은 하늘의 평화와 황제의 권력을 상징 한다고
한다.
[天安門事態]
천안문 하면 지금으로부터 19년전인 1989년 천안문사태를 간과할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이 이
어진다. 그해 4월 수천명의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정부부패를 종식시키고 개혁할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됐고, 북경시내는 시위의 열기속에 달아오르고 있었으며 그해 6/3일 밤 늦게 천안문
광장에는 예상치 못한 군대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이 행렬은 광장내의 군중에게 총부리를 겨누
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천안문사태의 시작 이었으며 현대 중국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의미있는 사건 이었다. 당시 軍은 북경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작전을 개시했으나 1백만 시민의
육탄저지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10시부터 탱크(장갑차)를 앞세워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는 무력진압을 강행하여 6/4일 오전 5시 계엄군은 천안문광장을 완전히 장악 하였다. 이 과정에서
1,400여명의 사망자와 1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태의 결과 중국은 서방측과의 관계가 악화
되고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강경보수파의 권력 장악으로 자유 개방정책이 후
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北京 (베이징)의 역사]
북경이 최초에 수도로 등장한것은 거란족이 세운 "요기남경"이란 이름으로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서부터
이다. 南京이란 이름은 1019년 燕京으로 바뀌었으며 금나라때 중도로,元나라때는 대도로 또한 明淸의
오랜 기간을 거쳐 1928년 국민당정부가 수도를 남경으로 옮기고, 북경을 북평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일본군에 의해 점령 되었다가 1949년 10/1일 毛澤東은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총 면적중 62%는 산지이고 나머지는 평지이다. 해마다 12월~4월 까지는
황사현상이 이어진다. 오는 8/8일에는 올림픽 경기가 이곳에서 치러진다.
* 2일차 (3/15) : 6 :30 기상, 7 : 00 조식, 7 :40 승차
오늘은 만리장성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중 하나) 을 투어하는 날이다. 글자 그대로 만리라면 10리
가 4Km이므로 4,000Km 가 될것이나, 성곽이 겹친부분까지 합치면 6,350Km가 된다는것임. 북경도심
에서 약 9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케이블카가 설치되기 전에는 관광기저점으로 부터 직접 계단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했으나 케이블카로는 八達嶺까지 겨우 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45도 정도로 가파르다. 외국인(주로 서양인)과 중국 본토인, 한국인등 으
로 들끓었다. 누구랄것 없이 모두가 디카로 자기 일행들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없다. 계단을 밟고
약 100m정도를 왕복 했으며 그곳에서 30분여의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아
래 기저점 까지 내려왔다. 현지식으로 중식 후에는 부국 해저터널로 이동하여 마치 바다 한가운데
에 와 있는것과 같은 느낌으로 갖가지 바다고기들의 노는모습(游泳)을 만끽하였다. 이곳은 지하
4층중 3층이며 콘베어벨트에 선채로 걷지않고 順路코스를 따라 서서히 좌우와 머리위로 보이는 물
길속에서 약 30분에 걸쳐 망중한을 보냈다. 상어와 넙치등 이름모를 고기들의 노는 모습을을 디카
에 담긴 했으나 잘 나왔는지 아직 확인해 보진 않았다. 오늘은 걸음을 많이 걸었을뿐 아니라 스케쥴
상에 발 맛사지가 들어있어 석식후 15명이서 두 방으로 나뉘어 들어가 약 1시간걸쳐 맛사지를 시
원하게 받았다.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하는 말 .... 1.중국의 4대 명 요리로는 원숭이
骨,삭스핀,제비집 요리,곰 발바닥 2.중국의 4대 미인중 한사람인 楊貴妃의 본명은 양태진(唐 태종
의 妃) 3.1980년대에 개혁개방 정치를 실현 : 등소평,강택민 4.중국은 한국보다 크게 후진국으로
그들의 주 농산물인 마늘과 우리의 전자제품 간에 밀고 당기는 무역전쟁(압력행사)을 공공연하게
벌였었다. 5.한중 수교는 1992년에 맺어졌다. 6.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포청천은 宋나라때 사람
이다. 이제 숙소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근접거리에 있는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새 둥지모양으로 강
철을 구부려 만듦 : 냐오차오(鳥巢) : 91,000석 규모)을 차창을 통해 보면서 지나갔다. 차안에 표시
되고 있는 외부온도는 18~21도를시시각각 나타내고 있었다. (7,825步)
* 3일차 (3/16) : 6 : 00 기상 6 :40 조식 7 : 40 승차
사실상의 여행 마지막 날이다. 호텔에서 천안문광장 까지 가는데 2시간 이상이 걸렸다. 천안문광장
은 약 14만평 규모로 마치 우리나라 여의도광장과 흡사하나 훨씬 넓다. 수양버들이 보기좋게 굽어
내린 보도에는 공안원(경찰)들이 20m 간격으로 촘촘이 일렬 횡대를 취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동정
을 살피고 있었다. 세계 도처에서 찾은 관광인파는 일요일 임에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광장 중
심부에 毛澤東의 초상화와 함께 양 옆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만세"의 현판이 걸려있었다. TV나 신문을
통해 봐왔던 바로 그 장면이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손에 쥐어진 태극깃발을 따라 서서히 紫禁城
내부로 이동 하였다. 발길 닿는곳 마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자국민 투성이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일본
인은 단 한명도 보지못함). 자금성 입구에 다달으니 뒤에 멀리 보이는 景山公園 까지는 약 2.3Km 떨
어져 있으며 2시간에 걸쳐 이곳저곳 황제의 거소(집무실,결혼청)를 둘러보면서 웅장함을 실감했다.
간혹 건물을 수리차 휘장으로 가리워진 곳도 여러채 눈에 띄었다. 자금성을 통과하여 가고자하는 최종
목적지는 景山公園 인데 이곳은 지표면보다 60m정도 높아 그곳 누각에 올라서면 자금성 전체와 주변
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때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금성을 우리나라에 비교해
본다면 경복궁의 광화문을 거쳐 그 안쪽의 勤政殿에 가는 직선통로와 똑같다고나 할까 .... 수많은 왕
조를 거치며 현재는 故宮박물관(古宮이 아님)이 되어 관광객이 들끓는다. 그런데 그 넓은 자금성 전체
가 水路(물길)로 둘러 쌓여있어 마치 일본의 오사카성(大阪城)을 연상케 했다. 중식후 이화원으로 이동,
이곳은 淸나라 황후인 西太后의 여름별장이 있는곳으로 인위적으로 호수를 만들고, 그 안에 인공섬을
만들어 섬까지 연결되는 약 70m의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서태후는 처음 후궁으로서 황제나
영웅호걸 등 권력을 손아귀에 쥔 여장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140만평 규모의 湖水에는 유람선과
돛단배 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위해 참고로 .... 140만평 이라함은 우리나라 여의
도 면적이 89만평, 더 실감나게 하기위해 18홀 골프장이 약 30만평 이므로 여의도 면적은 골프장 3곳
과 면적이 거의 같다. 따라서 이화원은 그보다 57%정도 더 넓은 호수인것이다. 어느나라고 번화가의
뒷골목 에는 옛날 재래식 집들이 있기 마련인데 역시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치 미국(LA)에도 번
화가의 뒷골목에 거지떼들이 거리에 누워 있는것처럼 말이다. 가이드가 이 골목에 들어서 안내한 곳은
스케쥴에 나와있는 인력거투어 때문이었다. 자전거에 바퀴 두개의 수레를 붙이고 적당히 포장을 친
그런 인력거를 페달을 밟아 자전거처럼 움직여 좁은 골목길을 한바퀴 도는것 이다. 우리 일행은 6대에
나누어 타고 어린 아이들처럼 20여분간 골목길 투어를 했다. 현지식으로 석식을 마친 후 왕부정 거리로
향해 그 길목을 거닐었는데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모두가 역겨운 형상의 튀김요리로 전갈,뱀,불가
사리,지네,귀뚜라미,메뚜기 등 알 수 없는 요리 일색 이었으나 우리 일행중 어느 한 사람도 시식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소름 끼치는 튀김요리를 현지인들이 호기심을 갖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북새통을
이룬 그 거리를 통과 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선택관광으로 1인당 30달러씩을 내고 "北京之夜"(북경의 밤)
를 관람 했는데 이는 중국의 왕조가 바뀔때 마다 전설을 담은 무언극으로 여인들의 춤과 남자 장수들의
싸우는 장면 연출이 전부었으나 작년 3월 上海/蘇州/杭州 방문시 항주에서 본 "宋城歌舞쇼" 만 훨씬
못했다. 돈이 아까울 정도였으며 실망하였다. ....이어서 호텔투숙.(12,005步)
* 4일차 (3/17) : 6 : 00 기상 6 : 40 조식 7 : 30 승차
사실상의 투어일정은 어제로 모두 끝났고, 오늘은 天津공항 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OZ328) 을
타야함으로 늦어도 10시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단체비자를 받아 떠났으므로 귀로에도 마찬가
지로 동 단체비자를 제시코 탑승권을 발급 받는데(이는 가이드의 역할) 그만 항공사의 실수로 다른팀
여행객의 탑승권이 나온것. 약 20여분에 걸쳐 티켓(탑승권)을 재발급 받았다. 사실 3박4일은 너무 짧은
일정 이었으나 내 경우 적당했다고 여겨진다. 1월초에 허리수술(디스크: 추간판 탈출증+척추관 협착증)
받은 후 두달남짓 지난 터였고, 더구나 출발 며칠전부터 감기끼 까지 있어 집사람은 크게 염려 했으나
그런대로 무난한 여행이었다. 이 기회에 허리 수술이 완벽했음을 확인한 계기도 돼서 이제 안심이며, 앞
으로 등산도 전혀 문제될것 같지 않다. 인천공항에 15시 30분 도착하여 짐을 찾고 각자 해산,리무진을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18시가 다 되었다. (3,520步)
[天壇公園內 : 祈年殿]
[서커스의 한 장면]
[萬里長城]
[萬里長城 : 八達嶺]
[八達嶺의 觀光코스 終点]
[富國海底터널 入口]
[海底터널內 左右上部]
[天安門廣場 : 右便에 있는 人民大會堂]
[天安門 : 毛澤東의 肖像畵 左右로 口號가 보임]
[天安門廣場에 堵列해있는 公安員 모습]
[紫禁城內 皇帝 執務室]
[紫禁城內 補修中인 建物모습]
[紫禁城이 水路로 둘러쌓인 모습]
[景山公園
[이和園] : 이字는 신하臣옆에 조개貝를 붙인 글자인데 컴에 登載되지 아니함]
* 이화원의 섬으로 通來하는 다리(橋梁)
[이화원의 游覽船]
[가이드와 함께]
[人力車 투어모습]
[北京의 밤 : 한장면]
[北京의 밤 : 주요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