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조창환
그 개 눈, 측은하고 애틋하고 애처로워 마주 볼 수 없었다.
1951년 초, 중공군 밀고 내려온 일사후퇴 때 피란길 나선 우리 가족 뒤에 기르던 개가 자꾸 따라왔다. 여섯 살 난 어린 내 생각에도 개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저리 가. 따라 오지 마."하고 소리쳐도 개는 계속 따라왔다.
아버지가 개를 앞에 세워놓고 눈 똑바로 뜨고 타일렀다. "따라오지 마라. 너는 네 갈 길 가라." 개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슬픈 눈빛을 하고 뒤돌아섰다. 갈 곳 없는 개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했을 터이다.
그 개 어떻게 되었을까? 굶어 죽었을까? 잡혀 먹혔을까? 난리 통에 개죽음 면치 못했으리라. 개는 가도 시선은 남아 나를 평생 괴롭힌다. 그런 시선 가슴에 못 박아둔 채 한세상 산다는 일은 아프고 쓰리고 아린 일이다.
이 이야기 들은 선배 한 사람이 말했다. "배부른 소리 말게. 육이오 때 폭격 피해 식구들 방공호에 웅크리고 있는데, 기르던 개도 곁에 웅크려 앉아 기총소사 소리 들릴 때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주인 바라보는데, 그 눈빛, 이 세상 것이 아니었네."
곁에서 듣고 있던 시골출신 친구가 말했다. 개 때려잡는 거 본 사람은 그런 한가한 소리 못할 거라고. 개울가에 큰 솥 걸어 물 끓이면서 나무에 매단 개 몽둥이로 쳐 죽이는데 깨갱거리는 개소리도 끔찍하지만 몽둥이질하는 사람 눈빛이 더 끔찍했다고 한다.
개 같은 아픔, 개 같은 상처, 개 같은 눈빛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시 쓴다는 일은 헛수작이다. 가슴 속에 아프고 쓰리고 아린 상처, 못 박아두지 않은 사람이 시 쓴다고 행세하는 일은 헛수작이다. 그런 시인은 알통 없는 일꾼, 그런 시인이 쓰는 시는 꼭지 없는 젖통이다.
―『건들거리네』, 동학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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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환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73년 월간 《현대시학》지 추천으로 등단.
시집 『나비와 은하』, 『저 눈빛, 헛것을 만난』, 『허공으로의 도약』, 『벚나무 아래, 키스 자국』외.
시선집 『활량한 황홀』, 『황금빛 재』, 『신의 날』 등. 산문집 『시간의 두께』, 『2악장에 관한 명상』, 『여행 의 인문학』 등. 학술서 『한국현대시의 분석과 전망』, 『한국시의 넓이와 깊이』, 『한국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 등. 박인환상, 편운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